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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명예교수 韓德龍 박사약학외길 45년, 영원한 師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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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2.03.18  12: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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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분업 이후 약사의 직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들 한다. 점차 옥죄어오는 의료시장개방의 압력과 거대자본의 출몰 속에서 약사의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진정한 원로의 한마디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중앙대 약대 한덕룡 명예교수. 45년간 교단을 지켰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교직자로 남고 싶다는 한덕룡 교수는 말그대로 우리 약학계의 산증인이며 진정한 원로다. 최근에 이사한 용인시 수지읍의 아담한 자택으로 찾아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한 원로의 정문일침을 들어봤다. 그러나 타고난 선한 성품 탓일까. 따끔한 한 마디보다는 다정한 격려가 더 많은 대담이었다.

천연물 연구는 영원한 연구과제

지난 91년 정년퇴임 이후 대학원 강의와 집필활동으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덕룡 교수는 요즘도 ‘자연약의 제제화’에 대해 많은 고민과 관심을 아끼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 토종오갈피 나무의 유효성분을 체계적으로 밝혀낸 연구를 통해 관련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했던 한교수에게 ‘천연활성물질’이란, 天命과도 같은 영원한 연구 테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을 자주 방문하며 자연약 제제화에 대한 최신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독일이나 미국의 경우 마늘, 시베리안 가시오갈피, 에키나시아 등에서 추출한 자연물을 캡슐화하여 OTC로 널리 유통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천연식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토양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연약 활성화의 가능성이 어떤 나라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탕약으로 가공하는 수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국내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스크리닝하고 한약도 캡슐화하는 등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교수는 또 의약분업 이후 더욱 혼란스러워진 우리나라의 보건의료환경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OTC와 Self Medication(경질환에 대한 자가요법)의 확대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한교수가 무엇보다 이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노인양생문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의학발달로 인한 평균수명연장이 곧 건강사회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인양생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루어지지않는다면 불과 10~20년 안에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이른바 ‘Solid Life’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노화를 방지할 수 있는 비타민. 호르몬, DHEA 등이 다양하게 제품화돼있습니다. 기능성 건강보조식품과 OTC를 확대하는 길, 그것만이 국민의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노인양생론’의 핵심입니다.”

인간성 강조하는 대학교육 필요
1955년 중앙대 전임강사로 교직에 첫 발을 들여놓은 한덕룡 교수는 퇴임 후 외부에서 들여다본 우리 교육현실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기 영역을 지키는데 급급한 대학사회의 폐쇄적인 모습이 실망스러웠다는 것이다.

가장 창의적이고 자유로워야 하는 대학이 권위주의에 물들어있는 것이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온 한교수에게는 무엇보다 안타깝게 느껴졌다고.

“돌이켜보면 예전의 학생들은 요즘 학생들보다 훨씬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많은 160~170 학점을 이수했으며 어떤 때는 토요일도 없이 공부하곤 했죠. 지금의 대학교육은 지나치게 약사고시 과목에만 편중돼있어 교양과 지성을 동시에 배양하고자 하는 전인교육의 의미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약사로서 가장 중요한 지성과 도덕성을 배제한채 전문성만 강조하는 교육에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두툼하고 깊이있는 강의가 결여돼있다고나 할까요.” 과거의 향수에 젖은 노교수의 지적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 뼈아픈 지적이다. 더욱이 요즘 약대생들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적 여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하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점점 빠르게만 굴러가는 세상. 인스턴트식 사고와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과거의 소중했던 유산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약사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지금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젊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한마디로 지금 받고 있는 약학교육이 약사로서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좀더 많이 고민하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더불어 공부를 마치고 개국약사로서 사회에 진출했을 때는 그들이 받았던 교육에 얼마나 사회 적응력이 가미돼있었는지도 반드시 재고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몇몇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약사 재교육 과정은 반드시 활성화돼야합니다. 특수대학원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대학원 과정도 과감히 개국약사에 개방해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약사국시를 마치고 이제 갓 사회에 나온 새내기 약사들도 이점을 명심해주기 바랍니다”

약사의 사명은 혜민(惠民)정신 실천
고교시절의 한덕룡 교수는 약사가 아니라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그래서인지 한교수는 연구 뿐 아니라 그 결과를 해박하고 경쾌한 문체로 풀어내는 문필가로도 명성이 드높다. 1985년에 펴낸 그의 에세이 ‘巨人의 願’은 천연약의 역사와 기원에 대한 꼼꼼한 해설은 물론 몬테크리스토 백작에서부터 로미오와 줄리엣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약물 이야기를 흥미롭게 엮어 내어 누구도 하지 못 한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기도 했다.

“해방 직후 서울대 문리대에 가고 싶었던 제 생각과는 달리 주변의 지인들은 약대를 권유했죠. 왜 약사가 돼야하는지 모르고 시작했던 대학생활이었기에 방황도 많이 했지만 결국 약사의 길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병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명감이었습니다. 6.25 직후의 피폐한 상황이라 더 그러했죠. 약사가 되기 위해 남보다 많은 방황을 거쳤던 것이 더 큰 사명감을 짐지워준 것 같습니다.”

어렵게 시작한 만큼 한덕룡 교수에게 약사라는 것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고백(Confession)을 통해 자기성찰로 채워나가야 할 숙명’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같은 숙명은 모든 약사에게도 예외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약사사회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도도하고 거센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은 자명합니다. 시장경제와 강한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개방과 발전의 빠르기는 우리의 적응속도를 앞서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미 없이 기계론적 사고가 우선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사람 한사람의 의지와 사명감입니다. 일본이나 유럽의 경우 투철한 애국심과 검소한 생활로 외세의 침투를 이겨낸바 있습니다.”

한교수는 약사사회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한다. 법인약국 허용이나 외국자본진출 등 약사의 미래를 위협하는 많은 요소들이 있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가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라는 사실. 큰 약국이나 작은 약국이나 다같은 약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지탱해나가지 못 하면 약사직능 자체가 도태되고 말 것이라는 지적이다. 어차피 약사라는 직업은 평생 짊어지고 나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과 고통이 뒤따를 것이 분명하지만 이 위기를 헤쳐나가는 것은 반대로 큰 교훈이 될 거라는 희망어린 전망도 잊지 않는다.

“과거에는 의료기관을 ‘혜민서(惠民署)’라고 불렀다죠. 현대의 약사에게도 바로 이같은 ‘혜민정신’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환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약사의 직능도 되살아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덕룡 교수는 요즘 전원생활을 꿈꾸고 있다. 지금은 비록 베란다 한 귀퉁이에 화분 몇 개를 들여놓은 것이 전부이지만 나중에 넓고 한가로운 전원으로 이주하게 되면 시베리아 가시오갈피 나무니 에키나시아니 하는 식물들을 잔뜩 심어놓고 연구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45년 교직생활, 그러나 아직도 영원한 교직자이자이기를 자처하는 한교수는 공부할 것이 여전히 많고 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꿈도 아직 포기하지않았다고 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식지않은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가 부러웠다.

대담·송진섭 편집국장/ 정리·최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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