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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권리, 안락사를 들여다 본다13가지 죽음: 어느 법학자의 죽음에 관한 사유(2)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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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2.11  11: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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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준일 교수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응급환자, 다시 말해 “즉시 필요한 응급처치를 받지 아니하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해 응급처치나 진료 같은 응급의료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의사는 응급환자가 있으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할 의무를 지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없다(동법 제6조 제2항). 또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중단할 수도 없다(동법 제10조).

소극적 안락사가 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투입되는 치료, 즉 연명치료의 중단이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생명 연장장치를 설치하고 영양분이나 약물을 공급하는 것은 치료 행위의 일환이다. 따라서 비록 불치의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라 할지라도 치료를 중단했을 때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면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 하지만 안락사의 차원에서는 현실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인정되는 사례도 엄연히 존재한다.

A는 기관지 내시경을 통한 폐종양조직검사를 받던 중예기치 못한 사고로 과다출혈이 발생해 심정지에 이르렀다. 저산소증으로 심한 뇌손상을 입은 A는 뇌기능과 신체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A의 뇌는 전반적으로 심하게 위축돼 있었고, 대뇌피질 역시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저핵 시상, 뇌간 및 소뇌도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A의 담당주치의는 A에게 자발호흡은 없지만 뇌사 상태는 아니며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5% 미만으로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 진료기록 감정의는 진료기록을 토대로 A가 뇌사 상태에 가까우며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혔으며, 신체감정의들도 A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봤다.

한편 A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입은 상처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 여름에도 긴 옷을 입을 정도로 정갈한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 했다. 또 텔레비전에서 병석에 누워 간호를 받는 사람을 보고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이생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3년 전 남편의 임종 당시에는 며칠 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하며 “내가 병원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겨 소생하기 힘들 때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 기계에 의하여 연명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

   
 

대법원은 A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해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보고, 또 비록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전 의료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대화나 현재 상태 등을 종합하여 연명치료 중단을 구하는 환자의 의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9. 5. 21. 선고 2009다17417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법원은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이미 의식의 회복가능성을 상실하여 더 이상 인격체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고 자연적으로는 이미 죽음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는,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되므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논증의 핵심적인 문구로 반복되는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란 의학적으로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를 말한다.

‘사망의 단계’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법원은 사망을 일정한 시점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단계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죽음이 시작되는 시점과 끝나는 시점이 따로 있다는 논리다. 물론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죽음을 과정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 대법원의 고민을 이해할 수는 있다. 연명치료 중단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어가기 시작한 사람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죽음은 특정한 순간이다. 죽음을 시간의 흐름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살아있지만 죽어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에게 이미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의 이러한 논리는 일반적인 상식에 반하고,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켜 남용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연명치료 중단은 명백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안락사에 포함된다. 바꿔 말해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의 생명이 중단되는 시점을 앞당기는 행위라는 의미다. 연명치료 중단이 죽음의 문제인 것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단축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 자체를 단축시켰다는 데 있다. 따라서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을 안락사의 문제로 논증했어야 한다. 또 그 논증에서 안락사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의 문제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안락사 인정의 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의 요건으로 환자의 의사, 곧 “자기결정권”을 들고 있다. 자기결정권은 헌법에서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기본권이다. 의사가 진료를 할 때에는 이 권리에 입각해 환자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법원은 연명치료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판단할 때 역시 이런 원칙에 입각해 사전의료지시나 그것을 추정할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사전의료지시는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대비하여 미리 의료인에게 연명치료의 거부 내지 중단에 관한 의사를 밝힌 경우를 말한다. 법원은 사전의료지시의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진정한 자기결정권 행사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즉,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환자가 의료인으로부터 직접 충분한 의학적 정보를 제공받은 후 그 의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에 따라 진지하게 구체적인 진료행위에 관한 의사를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 같은 의사를 확인할 때에는 환자 자신이 작성한 서면이나 의료인의 진료기록 등에 의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사실이 명확하게 입증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처럼 ‘추정적 의사’만으로 본인의 의사를 인정 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의 판결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없는 상태에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진입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으므로 더 이상 환자 자신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진료행위의 내용 변경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의사를 표시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대법원의 주장처럼 추정적 의사에 대한 확인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환자 본인의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의사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추정적 의사에 입각한 연명치료 중단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어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사회상규에 부합된다.

이러한 환자의 의사 추정은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참고하여야 하고, 환자가 평소 일상생활을 통하여 가족, 친구 등에 대하여 한 의사표현, 타인에 대한 치료를 보고 환자가 보인 반응, 환자의 종교, 평소의 생활 태도 등을 환자의 나이, 치료의 부작용, 환자가 고통을 겪을 가능성,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치료 과정, 질병의 정도, 현재의 환자 상태 등 객관적인 사정과 종합하여, 환자가 현재의 신체상태에서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 연명치료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경우라야 그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소수의 반대 의견은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했을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것이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다. 사람의 정신과 뇌의 기능은 오묘한 것이어서 단순히 물리적으로 또는 의학적으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10여 년 이상의 장기간이 지난 후에 의식이 회복된 예도 있고, 자발호흡이 없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면 곧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였으나 수년간을 더 생존한 예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추정적 의사’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반대 의견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법원의 사후적 평가에 따라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혐의로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의료인의 입장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데 있어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의료인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환자 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연명치료 중단에 소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소수의견은 이런 문제가 “절차적 요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체적 요건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대법원의 판결은 오히려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입법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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