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 수원농산물검사소 최옥경 소장이 다음 인터뷰 대상자로 의약품시험연구소 생동성연구부에서 활동중인 권영이 박사(숙대약대80)를 추천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의아스럽다. 생동성시험 적합 기관으로 지난 2008년 12월 식약청으로부터 승인받은 의약품시험연구소(KDTL)의 생동성연구부를 총괄하고 있는 권영이 박사의 삶의 방식에 농담 섞인 표현이다.

숙대약대를 졸업한 후 구로구 개봉동에서 8년간 약국을 운영했다던 권영이 박사. 당시 약국은 근무약사를 두고 운영할 정도로 매우 잘 됐다고 한다.

항암·치매치료제 특허 8건 등록
권 박사의 말을 빌면 약국을 계속 운영했다면 지금쯤 빌딩 정도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단다. 그러나 권 박사는 숙대 대학원에서 의약품 화학공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잘 됐다던 약국을 접었다.

연구에 집중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3명의 아이들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 권 박사는 재치 있게 한마디 덧붙인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권 박사는 서울의대 송영욱 류마티스 내과교수의 연구교수로 지내면서 식약청 연구기획조정실 의약품분야 전문위원을 거쳐 우석대에서 약학과 부교수를 3년간 역임해왔다. 그러나 출퇴근 문제와 아이들의 문제로 지난 2008년 지금의 KDTL에 자리를 잡았다.

권 박사는 KDTL에 오기 전까지 신약 후보물질에 개발에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항암제, 치매치료제 등 국내외 물질특허 8건을 등록했으며, SCI·국제학술지에 등재된 논문 13편을 비롯해 국내에 11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권 박사는 “신약개발 연구수준은 많이 높아졌으며, 여러 연구자들이 의미 있는 논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제약사와의 공동연구가 활발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제약사들이 자선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신약개발을 위해 무작정 투자할 수는 없다. 신약개발은 확실한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의 규모에 따라 투자 규모가 결정될 수밖에 없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규모에 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편이다”

이처럼 신약개발에 단초가 되는 신약 후보물질의 국내외 특허를 등록하는 등 끊임없는 연구활동을 해오면서 도대체 뭐가 아무 생각 없이 산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바로 현재 자신의 일에 대한 집중이다. 밥 먹을 때 밥 먹는 것만 생각하고, 잠잘 때는 잠자는 것만 생각한다. 쉽지가 않은 일이다. 보통 밥 먹을 때 생각을 먹고 잠 잘 때 온갖 잡념이 우리를 괴롭힌다. 오죽하면 불교에서는 밥 한 그릇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면 그는 이미 깨달은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참고로 권 박사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자칭 나일론 기독교 신자란다.

실수는 자기 발전의 계기
그래서 약국을 그만뒀다. 연구만을 생각하기 위해서. 가정에 가면 가정만을 생각한다는 게 권 박사의 말이다. 이쯤하면 우리 같은 범인이 넘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 것은 아닐까.

권 박사는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항상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구원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원인을 파악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다”

사람은 오직 실천적 활동을 통해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수정해 발전시켜 나간다는 유명한 명제도 있다. “실천은 진리의 기준”이라고.

KDTL에서 권 박사는 늘 그래왔듯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약국을 그만두고 박사과정을 거치는 동안 숱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울기도 많이 했다고 털어놓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남편의 지원과 이왕 시작한 것 그 끝을 보고 싶었다. 또다시 도전이다. 다시 한번 권 박사는 말한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현재 KDTL은 1건당 샘플 숫자가 약1,000여 넘는 생동성시험을 매달 2~3건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생동성시험 결과의 질을 고려하기 위해 연간 신규 생동성시험을 30건으로 한정해 엄격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권 박사는 개인 맞춤약 개발에도 열중이다. 사람마다 유전적 특질이 달라 질환에 따른 약물 투여량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에게 최적화된 용량 등을 찾아내는 것.

부작용이나 중독성이 심한 약물일수록 개인 맞춤약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게 권 박사의 설명이다.

자, 아무 생각 없는 우리 박사님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과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40여편의 논문은 약국을 계속했으면 구입했을지 모른다는 빌딩 몇 채보다 더욱 값어치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