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 김양오 약사가 지역 약사회를 기반으로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해온 동작구 효성약국박찬두 전 서울시약사회 부회장을 추천했다.

국내 중국 한의학 박사 1호
장승배기역 4번 출구를 나와 잠시 걷다보면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약국 하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약국 안쪽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금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한약탕기와 매대 뒷벽 전체를 사수하고 있는 한약장, 곳곳에 위치한 일반약들 조차 대부분 한방원리로 제조된 것이라 문외한이라도 단번에 이곳이 한약 전문약국이라는 점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성균관대 약대 졸업 후 1년 가량 중외제약 연구소에서 일한 박 약사는 84년 방배동 인근에서 약국을 시작하면서부터 한약과의 오랜 인연을 맺게 됐다.

“공장에서 생산된 규격화된 의약품으로는 환자의 병을 다스리는데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여러 고민 끝에 그에 대한 대안으로 경희대 대학원을 다니며 체계적으로 한약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분야가 체질에 맞는지 공부를 할수록 흥미가 더해지고 배운 내용으로 실제 환자를 대하면서 임상에 대한 확신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앎이 깊어 갈수록 그것의 빈자리를 실감하게 된 박 약사는 보다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박 약사는 경희대 대학원 학위를 수료한 뒤 한약의 본토인 중국으로 건너가 한방의 근본적인 작용 원리와 체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움을 쌓기 시작했다.

“90년도 중국으로 가 한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빈 시간은 근무약사에게 맡기고 학기가 시작되면 3개월 씩 중국에 머물면서 8년 동안 공부를 계속해 나갔습니다. 혈혈단신으로 홀로 나선 일이라 여러 어려움이 따랐지만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많은 어려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박 약사는 오랜 인내의 시간 끝에 지난 98년 중국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따게 된다. 중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의 유학생이 현지에서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우는 박 약사 이전에는 없었다고 한다. 박 약사 이후 국내에서도 한 때 붐이 일어 한약에 관심이 많은 다수의 약사들이 유학을 떠나 현재 상당수의 약사들이 중국에서 인정한 학위를 따게 된 계기가 됐다.

이처럼 한약과 관련 학문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약사로서의 정체성을 쌓아오던 박 약사는 유학생활을 마친 이듬해부터 후배 약사들을 위해 강단에 서게 된다. 경희대학교를 시작으로 우석대, 성균관대, 서울대, 숙대 등 박 약사는 현재까지 12년 째 한약과 관련해 스스로 이룬 배움을 후배 약대생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한약조제약사회 설립 주역
그 자신이 의욕 넘치는 학생이자 가르치는 선생으로 한약과 더불어 숨을 쉬어 온 박 약사는 약국경영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접목시켜 왔다.

“27년 동안 약국을 경영하며 어림잡아 3만명 이상의 환자들과 한약을 통해 만났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임상적인 효과에 대한 확신을 갖게 돼 한약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더욱 커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한약분쟁을 기점으로 이를 둘러싼 제도 환경이 달라지고 일상문화가 나날이 서구문화화 됨에 따라 한약은 나날이 약사의 영역에서 빗겨간 ‘비과학적인’ 분야로 인식돼 가고 있다는 것이 박 약사의 생각이다. 이는 단순히 일차적인 논리에 따른 인식이 아니라 실제 그가 체감하는 약국 매출에서의 비중을 따져봤을 때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이에 따라 박 약사는 책과 강의실, 약국에서 광장으로 나와 한약을 중심으로 맺은 동료 약사들의 뜻을 한데 모음으로써 약국 한약의 분명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 위한 활동에 나섰다.

그는 이러한 확고한 목표를 품고 2003년 8월 창립한 한약조제약사회 설립 당시 추진위원장을 맡아 약사사회의 여러 우려를 딛고 단체가 정식으로 이름을 내걸 때까지 분명한 소신을 가진 목소리를 내며 앞장서 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출범과 동시에 한약조제약사회 초대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지난 2007년 이범식 차기 회장에게 바통을 넘겨주기 까지 조직의 목표와 기반을 세운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렇듯 내외적으로 박 약사의 한약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능력이 입소문을 타 그는 지난 2007년 구성된 조찬휘 전 서울시약사회 회장의 집행부에 한약 담당 부회장으로 합류해 약국 한약의 여러 활로를 모색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강좌를 개최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이 같은 여러 활동을 바탕으로 현재 박 약사는 그동안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여러 후배들이 약국 한약의 활성화를 위해 뜻을 키워가는 데 목소리를 더할 예정이다.

“현재 한약사라는 개념이 생긴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정부는 이들을 세상에 던져 놨을 뿐 어떤 책임도 지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현재 그들이 실정법상으로 다룰 수 있는 약도 다룰 수 없는 약도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죠. 의사들이 심심찮게 임의분업을 얘기하고 한약사들이 사실상 한약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같은 약사라는 동질감으로 이기심을 버리고 큰 뜻을 펼칠 단위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양우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