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인 손대권 약사가 함께 한약을 공부하며 인연을 맺은 신영철 약사에게 바톤을 건넸다. 그는 겸손한 태도로 매순간 약사의 의미를 되묻는 투철한 직업의식을 지난 사람이었다.

한약 공부하면서 매너리즘 극복

강산이 두 번이 넘게 변하도록 한 가지 것에 매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과 같이 변화와 다양함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신영철 약사(성대·81학번)는 20년 이상 지금의 자리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제 갈 길을 걸어왔다. 굴곡없는 인생이 어딨겠냐만은 신 약사는 그 때마다 직업의 기초적인 역할에 더욱 파고들면서 위기를 넘겨왔다.

약대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친 신 약사는 87년 처음으로 자신의 면허를 내건 약국을 개업하게 된다. 입대 전 얼마간 수원에서 약국장의 보조를 맡아 일한 것을 제외하면 대학 졸업 후 약사로서의 ‘첫 경험’을 개국으로 시작한 셈이다.

“군대 전역 후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끌어 모아 인천 지역에서 폐문한 약국을 이어 받았습니다. 망한 데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제 눈에는 괜찮아 보이기도 했고 수중에 돈도 딱 그 정도 밖에 없었거든요.”

비록 네 평 반짜리 쪽방만한 약국이었지만 신 약사는 어떤 실패도 인생의 거름이 될 만한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당찬 포부를 안고 약국문을 열었다.

하지만 첫날 매출은 6만원. 당시 보통 약국의 1/3에 채 못 미쳤다. 하지만 그는 환자에게서 배운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고 아픈 몸을 치료하며 뚝심있게 버텨냈다.

2년이 지난 후 식구들이 가까운 부천으로 이사를 와 부득이하게 약국을 옮기게 됐지만 그가 자리를 뜰 무렵 여느 약국 못지않은 수익을 올리게 됐다.

또한 남달리 자신의 길을 일찍 개척해 나간 탓이었는지 남들보다 빨리 초짜 약사의 티를 벗게 됐다.

“돌이켜 보면 이 시절이 가장 재밌었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이론으로만 배우던 것을 실제로 적용하고 써먹고 하는 것들이요. 내가 지어 준 약을 먹고 사람들이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약사로서의 직업적 보람에 눈을 뜬 이후 신 약사는 부천과 인천을 몇 차례 오가며 착실한 약사로서의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사이 어느덧 그에게도 매너리즘이 찾아 왔다.

“몇 년간 약을 쓰다 보니 어떤 벽 같은 것이 느껴지더군요. 양약으로는 대증 치료 이상의 것은 기대할 수 없다고 느낀 것이죠. 당시에는 뭔가 허송세월을 한 듯한 느낌이 들어 환자가 약국을 찾아도 의욕을 잃고 텔레비전만 쳐다보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면서도 신 약사는 마음 한 켠으론 의사와 구분되면서도 모험적이고 보다 근본적인 치료가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음속에 떠오른 것이 한방. 당시에는 약사들이 한약을 다루는 것에 제약이 없어서 신 약사는 사상의학을 기초로 여러 약재 다루는 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더더욱 한약의 매력에 빠져든 90년대 초반 인천 주안에서 한약만을 취급하는 약국을 열기도 했다.

“당시 빠져있었던 한약에 대해 더욱 집중하기 위해서 양약을 완전히 배제하고 약국을 운영해 본적이 있습니다. 경영상의 이득을 떠나서 제가 공부한 것을 적용해 보고 보다 가까이에서 환자들을 지켜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동업하던 약사와 문제가 생겨 3년만에 접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지만 당시의 경험은 지금도 환자를 보는 보다 큰 눈을 심어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유식한 약사

약사로서 반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가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면 좋은 약사가 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직업적인 한계와 영향력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냉정하게 말하서 약사들이 고칠 수 있는 병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치료를 도와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같은 약이 다르게 쓰이면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처럼 다가가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이 약을 쓰는 것이 허세는 아닌지 자신이 선무당이 돼서 오히려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늘 되돌아 봐야 합니다.”

신 약사는 환자의 윤곽이 불분명한 물음에 대해서는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약사가 그것도 몰라요’라고 대놓고 핀잔을 주는 환자가 있을 정도라고.

그럴 때면 오히려 약국을 밖을 나서더라도 보다 정확하게 환자가 자신의 증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 준다고 한다. 신 약사는 그것이 보다 약사의 본질에 다가가는 낳은 약사가 되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는 약사들 끼리도 서로간에 지켜야할 직업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난매, 본인부담금 할인 등은 결과적으로는 스스로를 포함한 전체 약사들의 피해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약사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적으로 공정한 룰을 만들어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됩니다. 그 이후에 직능확장이나 사회적인 위상을 구축하는 것을 얘기할 수 있겠죠. 특히 양심껏 역할을 다하는 약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는 하루빨리 약사들의 자각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