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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50)高僧의 얼 ‘강물에 비친 달’처럼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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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4.16  16:2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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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②

참배할 목적이 아니라면, 신륵사를 찾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찰의 경내에 들어가기에 앞서 남쪽 강변으로 발길을 옮기는 경우가 많다. 멋들어진 정자와 바위가 어우러진 강변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여강의 물줄기가 휘감아 흐르고 있는 강변에는 거대한 기암으로 절벽이 이루어져 있고 그 위에는 8각 지붕의 亭子와 소박하고 작은 3층짜리 석탑이 서 있다. 정자는 그렇다 치고, 작은 석탑을 법당 앞이 아닌 강변의 바위 위에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우선 정자의 현판을 주목해 보자. 정자의 이름은 ‘江月軒’이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강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는 집’ 정도가 될 것이니 강변에 있는 정자의 이름으로는 썩 어울리는 보통 이름인 것 같다. 그러나 이 이름은 신륵사의 이름을 드높인 고승 나옹화상의 또 다른 別號이다. 나옹은 나옹이라는 호 이외에 강월헌이라는 호도 사용을 했다. 그 정자는 나옹화상과 관계가 있는 건물인 것이다. 이 곳 강변은 나옹화상이 입적한 후 그의 다비(화장)가 이루어진 곳이다. 이를테면 이곳에서 그의 다비식을 거행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3층의 작은 탑과 정자를 세운 것이다.

다비처에 기념탑을 세우는 것은 신라시대부터 있어왔던 전통이다. 신라의 고도 경주의 ‘낭산’ 기슭에는 ‘능지탑’이라는 거대한 탑의 일부분이 복원되어 있는데, 이 탑은 문무왕의 시신을 화장한 곳에 세운 기념탑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강변의 3층탑도 이런 의미에서 세워진 탑일 것이다.
3층탑은 고려나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 남아있는 정자는 지난 1974년, 홍수로 유실된 옛 건물을 대신해 콘크리트 재질로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여강의 물줄기를 그윽하게 굽어볼 수 있는 이곳 강변은 신륵사의 경관에서 하이라이트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한편 바위 뒤쪽, 숲이 우거진 언덕에는 바위 위의 작은 탑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우람하고 당당한 자태의 탑이 우뚝 서 있다. 신륵사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이 탑은, 그러나 흔히 볼 수 있는 석탑이 아니라 벽돌로 쌓아올린 塼塔이다.

앞서 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잠깐 언급했듯이, 우리나라 불탑의 전통은 목조탑에서 시작돼 석탑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벽돌탑이 많은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벽돌탑이 매우 드물다. 이 탑을 포함에 전국적으로 겨우 십수기 정도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전탑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경주 분황사에 있는 ‘모전석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름 그대로 분황사모전석탑은 진짜 전탑이 아니라 ‘전탑을 모방(模塼)’한 탑이다. 안산암이라는 돌을 벽돌 모양으로 잘라 쌓은 탑인 것이다.

이 탑은 최초의 석조탑으로 추정되는 익산의 미륵사지 탑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테면 비슷한 시기에 신라와 백제 땅에서 탑에 대한 서로 다른 시도가 이루어졌던 셈이다. 결국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로 인해 신라의 전탑(모전탑)과 백제의 석탑이 양식상으로 절충되어 불국사의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탑의 전형이 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탑의 전형이 석탑으로 완성된 뒤에도 전탑은 과거 신라 땅의 일부 지역에서 계속 만들어졌다. 현재 전탑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경상북도 안동 지역이다. ‘신세동 전탑’을 비롯한 안동지역의 전탑들은 분황사탑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라의 전탑이 이후 어떤 식으로 변화 발전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그런데 신륵사에 서 있는 이 우람한 전탑은 안동 지역에 남아있는 여러 전탑들과도 사뭇 다른 양식일뿐더러 지역적으로도 대단히 의외의 곳에 서 있는 전탑이다. 우선 신륵사의 전탑은 크기는 대단하지만 양식적으로는 퇴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우람한 탑신에 비해 지붕과 처마에 해당되는 옥개부분이 매우 빈약하고 각 층의 체감비율도 적절치 못하다. 아마 본래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는데 고려 초에 세워진 이래 조선 후기 까지 여러 차례 수리를 거듭하면서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은 법당 앞에 매우 뛰어난 탑이 있는데도 이곳에 그보다 훨씬 큰 탑, 그것도 그다지 일반화 되지 않았던 전탑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한가지 주목할 만한 중요한 가설이 있다. 최근 안동지역의 여러 전탑들을 면밀히 살핀 한 연구에 따르면 전탑이 세워진 곳은 대체로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근처에 강이나 내 등이 있는 곳에 전탑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런 가설이 옳다면 이 강변에 다른 탑이 아닌 ‘전탑’이 세워진 까닭 또한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강변에서의 풍경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찰 답사에 나설 차례다. 전탑이 있는 언덕에서 내려와 경내로 들어서자. (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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