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평생을 걸을 수 있는 운동’. 지난호의 주인공 하성주 약사가 10% 일 덜하기로 삶을 재충전을 노리고 있다면 최인순 약사는 평생 꿈꾸고 있는 보건의료운동과 지역운동의 실천을 위해 잠시 약국 일에서의 ‘탈출’을 생각하고 있다. 삶의 여유를 찾아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을 준비중인 최인순 약사를 찾아갔다.

부산대 약대 80학번인 최 약사는 지난 91년에야 학교를 졸업했다. 시집 ‘꽃들’로 알려진 문부식 시인 등과 함께 지난 82년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4년 간 투옥된 후 직업 운동가의 갈림길에서 다시 약사의 길로 되돌아 온지 10년. 최약사는 경제적인 자립을 실천해 느린 걸음으로 평생을 갈 수 있는 운동 즉, 보건의료운동의 길을 선택했다. 90년도에 결혼한 최 약사는 졸업 후 곧바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에 뛰어들었다. 지난 98∼99년에는 건약 회장을 맡았고 현재는 글리벡 공대위 일 등에 관여하고 있다.

그녀에게 약국에서의 근무와 사회단체에서의 활동은 동격이다. 한번은 둘째를 가졌을 때 회의를 하러 갔을 때인데 친정 어머니가 “남산만한 배를 해서 어디를 가냐”고 물었을 때 최 약사는 “이 배를 해 가지고 약국은 운영하고 있다”며 응수했다고.

최인순 약사는 처음 인천에서 약국을 열다가 현재의 위치에서 동료 3명과 함께 동업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약국을 지역운동의 중심지로 꾸려나가겠다는 소신으로 동업약국을 시작했다는 최 약사. 환자 복약지도와 상담, 소신 있는 투약을 통해 운동을 실천하겠다는 포부였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소식지를 펴내는 것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더 큰일을 구상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기 위해 잠시 약국에서 손을 뗄 생각이다.

98∼99년 건약 회장을 맡으면서 보건의료운동의 가장 큰 과제로 추진했던 의약분업에 대해 그녀는 현재 낙제점이라고 표현한다. 처방전 감사는 현실적인 힘의 지배상태에 놓여 있는 의·약사간의 관계 때문에 어렵다고 말한다. 의사들의 처방오류에 대해 분업 초기에는 수정을 요구한 적이 많았지만 지금은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외부 세계와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인식하지만 지금 그녀는 자신과의 싸움이 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최 약사는 “건약의 기존 회원들조차 현장에서 떨어져 약국이라는 좁은 공간으로만 되돌아가려는 움직임은 先公後私의 정신이 개별화되어 가는 것”이라면서 “현실에서 안주하고 싶은 내 자신을 추슬러 흔들림 없는 보건의료운동을 하기 위해 잠시 약국에서 떠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보다 큰 걸음을 나아가기 위해 잠시 ‘쉼’을 선택한 최 약사. 이런 여유는 그녀의 일화속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번은 약국에 강도가 든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날 수입 중 일부인 50여 만원을 내놓은 다음 기침을 하는 도둑과 ‘건강상담’을 나눴다. 그러면서 그녀는 도둑에게 그중 감기 약 1천5백원은 내놓고 가라면서 여유를 지었다. 도둑은 단지 돈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생각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는 그녀는 안심시킨 도둑이 약국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에 신고해 붙잡았다. 그 후 그녀는 파출소장으로부터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게 됐다.

분업 초기 여러 곳에서 약을 구하지 못한 의료보호환자에게 약을 내주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오히려 고마워하는 환자에게 약을 내놓지 않은 약국들을 보건소에 신고하라고 했다. 약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호환자인 것을 알고 약을 주지 않은 약사들에게 화가 났던 것. 최 약사는 “분업 이후 약사들의 빚도 늘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약사는 빚을 낼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서 약에 대한 환자의 권리를 중시한다. 그녀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 소명의식이 묻혀져서는 안되며 약을 팔더라도 양심을 팔지는 말 것”을 많은 약사들에게 이야기한다.

최소한의 직업적인 소명의식이 전제되지 않는 활동이 없으면 그는 더 이상 약사가 아니다는 그녀의 말처럼 잠시 휴식을 생각하며 보다 큰 보건의료운동을 생각하고 있는 최약사의 큰 바램이 이뤄지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