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 약사 도덕성 회복 선행돼야”

하성주 약사, 지난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인 신광식 약사 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온 많은 동지약사 들이 한결같이 궁금해하는 이름이다. 약사사회 민주화단체의 일원으로, 건강공동체 상근약사로 전국을 누비면서 누구보다 현장에 가까이 있었기에 분업의 가파른 소용돌이와 함께 뜸해진 그의 안부가 더욱 궁금했는지 모른다.

성남시 분당구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하성주 약사(중앙약대 79학번)는 요즘 자기계발과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같은 건물 2층과 5층에 생겨난 경쟁약국, 고압적인 태도의 주변 의원 등 골칫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사로운 일 들에 초연하기로 한 탓인지 표정이 아기처럼 해맑다.

하성주 약사에게 지난 90년대는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한약분쟁과 전문카운터 추방운동, 약사회 직선제 개정을 위한 투쟁이 거듭 되면서 자신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려났으며 힘겨운 투옥생활 까지 경험했다. 두 딸과 아내에게는 더없이 죄스러운 시간 들이었고 그 흔한 책 한 줄, 영화 한 편 볼 여유도 갖지 못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하 약사는 목적없이 훌쩍 떠나는 여행과 책읽기에 무엇보다 열심이다. 수도승 틱낫한에서 불꽃같은 페미니스트 현경에 이르기까지, 종교와 사상의 장벽을 넘나드는 그의 정신적 스승 들은 모두 최근의 독서를 통해 얻은 소중한 선물이다.

이제 하 약사는 보다 멀리 보고, 큰 것을 위해 움직인다. 북한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를 통해 항생제 천만캅셀 보내기에 앞장서면서 성남시민모임에서도 지역사회 민주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의 비리를 파헤친 것도 성남시민모임의 활동성과. 케냐 여행 도중 만난 아프리카 주민 들을 위해 교사를 파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케냐에서 만난 아이 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교육을 받는다는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그들을 보니 그동안 힘들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지인들과 뜻을 모아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적극 앞장설 생각입니다.”

하 약사는 요즘 마약퇴치운동본부 경기도지부 약물오남용 지도교사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화끈한 성격의 그답게 설교보다는 ‘머리로 살지 마라’는 외침으로 강의를 대신할 때가 많다. 그 자신이 획일적이고 딱딱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기에 ‘가슴뛰는 삶을 살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하 약사의 평화로운 생활을 지켜보며 지난날 투사로서의 정신을 잊은 것은 아닐까라는 노파심도 생겼다. 그러나 하 약사의 대답은 결연했다. “약사 직능을 인정받기 위해 가장 선행돼야 할 일은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몰래 면허를 대여하고 전문카운터를 고용하는 사람이 약사회장이 돼서는 안 되겠죠. 직선제는 민초들의 뜻을 반영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인만큼 낙천·낙선 운동 등 적극적 형태의 참여가 꼭 필요합니다.”

‘명대위(약사명예회복을 위한 대책위원회)’나 ‘전직추(‘전문카운터 추방과 직선제 정관개정 추진본부)’ 등 지난날 그가 몸바쳐 일했던 조직은 이름조차 희미하지만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해왔던 일이 오늘날 약사회 민주화에 조그만 도움이 됐다는 자부심만은 잃지 않고 있다. 투옥생활 동안 그를 위해 날아든 5천장의 석방탄원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하 약사는 얼마전 가까운 동료약사 들과 곤지암에 자그마한 텃밭을 마련하고 평생 꿈인 ‘농부’가 되기 위해 첫발을 내딛었다. 하 약사의 동료약사 들은 좋은 일, 즐거운 일에는 항상 발벗고 나서는 유쾌한 사람 들이다.

“10% 일 덜 하기 운동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에 종속되는 일 없이 즐기면서 살자는 거죠. 충분한 재충전과 자기계발,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