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인터뷰의 주인공인 김영희 약사가 중앙대 1년 선후배 사이로, 한약투쟁 시절부터 남다른 동지애를 쌓아왔던 최병태 약사의 안부를 물어왔다. 약국 정보화의 선두주자로, 개혁성 강한 약사들의 리더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최약사지만 한동안 외부활동이 뜸했던 탓에 근황을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을 듯 하다.

이미 지난 세기의 과거사가 돼버렸지만, 수많은 약사들이 ‘직능수호’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 기꺼이 투사로 변신했던 시절이 있었다. 93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한약투쟁의 선봉에 나섰던 세대. 위기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보이지 않는 연대감으로 인해 눈빛만 봐도 통하는 ‘절실함’이 존재했다.

최병태 약사는 90년대 약사개혁집단의 모체인 약사통신과 청년약사회를 태동시킨 주인공이다. 컴퓨터 통신에 관심있는 젊은 약사 몇몇이 모여 소규모 동호회로 시작했던 약사통신은 한약투쟁의 급류를 타고 회원수 1천명이 넘는 메머드급 커뮤니티로 급성장했다.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속한 정보교류와 의견교환은 한약투쟁의 기폭제가 됐음이 분명하다. 최약사는 소리소문없이 하나둘 모여든 동지들이 밤새 약사회 강당을 가득 메웠던 일명 ‘6. 9집회’를 잊을 수가 없다. 약대생도 아닌 개국약사들이 그처럼 ‘한약사수’를 위해 단합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건이었다.

지금은 경기도 광명시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서 아담한 약국을 가꾸며 ‘야인(野人)’으로 돌아가 살고 있는 최약사. 막 40줄에 접어들어 넉넉한 중년의 모습이 엿보이지만 가운 아래 붉은 악마 티셔츠를 받쳐입을만큼 여전히 젊은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한때는 ‘애드팜’이라는 약국관리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는 등 약사사회 안팎에서 많은 일을 해왔으나 자칫 ‘정치적 인물’로 비쳐지는게 싫어서 평범한 개국약사로 돌아왔다.

“크고 작은 약사 동호회는 약사 조직을 더욱 단단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동호회 운영에 정치적 색채가 가미되면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게 되죠. 임원들의 독단적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비판이 끊이지 않아야 약사 동호회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최약사는 약사회에 대한 쓴소리 한마디도 아끼지 않는다. 약사회는 말 그대로 약사사회의 리더로서 회원들의 참여를 원하기 이전에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것. 회원 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동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회무가 조금은 아쉽다는 지적이다.

최약사가 운영하는 다나약국은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처방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눈팔지않고 꿋꿋하게 조제실을 지키는 것이 유일한 경영비결. 약국에 신경을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자연히 수입은 늘어난다. 약국일을 제외하고는 얼마전에 시작한 마라톤에 흠뻑 빠져있다. 스스로도 몰랐던 능력과 인내심을 확인시켜주는 마라톤은 요즘 최약사를 가장 들뜨게 하는 취미라고.

“과거의 동지 들이 지금은 흩어져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모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그때가 되면 정치적 참여 보다는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동호회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같이 뛰면서 건강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마라톤 동호회도 좋겠지요.”

과거의 투사, 최병태 약사는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을 만큼 안정된 분업상황이 하루빨리 실현됐으면 하는 바램을 덧붙인다. “10년 전처럼 또다시 약권을 위협하는 위기가 닥쳐오면 그때는 언제든 다시 봉기할 준비가 돼있지만 그런 일은 부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아름다운 386세대 최병태 약사의 소망이다.

최윤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