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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팝스 오성식이 말하는 '아버지자리'세상의 가장 축복은 자녀성장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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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6  08: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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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영어교육의 대중화로 사랑받았던 오성식국제학교 이사장은 유튜브 오성식의 아침방송(oss tv)에서 만날 수 있다. 그는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1.우면산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2.부지런함과 긍정의 힘 3.무조건 시작하세요 4.근심 질병은 우리 삶에 동반자예요 5.혼자가 되는 연습을 하면 더 행복해짐니다6.성공도 행복도 독창성이 있을 때 배가 됩니다 7.생각을 바꾸니 희망이 보입니다 8.다 탓이지요 9.행복해지기도 습관입니다 오성식 이사장의 방송을 찾게 되는 것은 굿모닝팝스 진행자시절 전해주었던 인생의 ‘긍정성’을 여전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한 것은 약국신문이 진행하는 ‘가장 심각한 국가현안문제 저출산대응원고’를 통해 아버지로 살아온 경험을 전해주셨다. 그의 원고를 여러번 읽으면 배우게 되는 것은 저출산의 역설은 부모가 되어봐야 그 진면목을 알게 된다는 점이었다.

오성식 이사장이 oss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건강한 생각을 계속적으로 방송해 주시길 기대한다. 귀한 원고 주신 오성식 이사장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약국신문 주간 이상우>

 

오성식 이사장 소개

   
▲90년대 영어교육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오성식 이사장(사진)

한국외대포르투갈어학과를 학사 학위 취득, 1987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에서 TESOL 전공으로 1년간 수학 후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미 한국외대 포르투갈어학과 4학년 때인 1984년에 《오성식 생활영어 5400》을 출간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1988년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1989년에는 한양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였고, 1990년에서 1994년까지는 한국교육방송공사에서 중학교 영어를 진행하였으며, 1990년 10월부터 2000년 6월까지는 한국방송공사 라디오 프로그램인 굿모닝 팝스를 10년 가까이 진행 했다. 2002년 9월부터 2004년 9월까지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초빙연구원을 역임했으며, 2006년 3월 6일부터 원음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오성식 쇼의 진행자로 발탁되어 2009년 2월 27일까지 진행하였다.

 

현재는 오성식국제학교 이사장, 유튜브 OSS TV를 방송중이다.

   
▲우면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오성식 이사장

 

일만 바라보았던 30대 시절

아픈 날 빼놓고 일만 했던 30대......

설날연휴도 없고 추석연휴도 없고, 그렇게 일에 빠져 바쁜 30대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거의 울먹이며 살포시 이야기를 했다.

 

성공을 위해선 일이 1순위였다

“오빠, 난 오빠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근데 난 너무 외로워.

오빠가 열심히 일하는 동안 난 아기를 낳아 동네 놀이터에서 아줌마들이랑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지내면 정말 좋겠는데.....”

 

당시 내 머리에는 오로지 성공을 향한 일! 일! 일! 밖에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거의 날마다 새벽 1시에 들어오는 게 다반사였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아니었기에 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향해 뭐라고 말도 못하는 불쌍한(?) 아내였다.

 

아내가 느꼈던 외로움에 지금도 미안하다

더욱이 아내는 서울에 친구도 거의 없는 제주도 출신이기에 그 외로움은 생각보다 컸을 것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짐작이 간다.

그 때만 해도 열심히 일하는 남편을 향해 뭔가 투정을 한다는 것은 한낱 배부른 사람의 투정이라고 단칼에 입막음을 하기에 충분했기에 감히 아내는 내게 더 이상의 말을 하지 못했던 터였다.

 

“여보, 정말 미안해........”

 

다가온 질병은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해서 아기를 갖게 되었고 또 그로부터 6년이라는 세월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날 건강검진에서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C형간염에 걸렸다는 것이다.

지금은 치료제가 개발되어 한 달 정도의 치료만 하면 낫는 병이라고 들었는데 당시로써는 치료제는커녕 원인조차 알 수 없는 희귀병이었다.

 

일은 나의 존재이유였다

주치의는 쉬라고 했다. 간에는 휴식보다 더 나은 치료법이 없다는 것이다.

취미도 없고 오로지 일만 하는 것을 삶의 낙으로 생각했던 나였는데 막상 쉬라고 하니 이 또한 막막했다

   
▲굿모닝팝스표지사진

 

그렇게 해서 겸사겸사 2001년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로 2년간 객원 연구원으로 안식년을 갖게 되었다.

 

자녀성장을 보는 것은 큰 축복이다

보통 남자들은 하루라도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낫지 애 보는 것은 너무 힘들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막상 미국에서 아내가 영어가 부족하고 미국 생활이 처음인지라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도 쇼핑하는 것도 모두가 내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두 어린 아이들(당시 7살, 4살)과 주부역할을 해 보니 세상에 아이들 크는 모습을 함께 보며 생활한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는 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자녀가 주는 행복은 경험해 봐야 안다

당시 어느 선배 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중에 어른이 된 자식이 아무리 속을 썩여도 어린 시절 그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주었던 기쁨을 생각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되더라고요.”

 

정말 맞는 말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하는 그 짜릿한 행복의 기쁨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선진국의 기준은 가정중심 여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는 선진국은 한결같이 가정이 중심이 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가까운 싱가포르 일본만 하더라도 먹고살만한 제대로 된(?) 나라들은 대부분 가족 중심의 밤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밤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관광객이나 독신자와 같은 특별한 계층들을 위한 유흥문화가 존재할 뿐이다.

   
 

 

자녀들과의 추억은 돈으로 셀 수 없는 가치였다

2년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을 때 아이들도 나도 다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가족 중심의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일보다는 가족을 택하는 삶을 살기로 하고 2007년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오성식국제학교라는 유학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학사업가가 된 것은 가족 중심의 생활을 지키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이제 두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자기 일을 하는 성인이 되었다.

지금도 아련한 아이들과의 함께 한 수많은 추억을 떠 올리면 한껏 부자가 된 느낌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생각나는 사람은 ‘가족’

내가 C형간염으로 고생할 때 한 TV프로그램에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가족! 가족! 가족! 모두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외쳤다.

가족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가족들과 보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번의 인생에서 결혼과 부모경험은 포기할 수 없다

아름다운 삶, 성공적인 삶이란 많은 돈을 번 것도 아니고, 큰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가족들과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서로 아껴주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믿는다.

 

딱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우리의 삶이기에 결혼해서 예쁜 아이도 낳고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며 신나게 한번 살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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