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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외로운 눈빛과 앙상한 마음 읽어주는 ‘약사’손현순교수의 원고에서 약사의 미래가치 미리 읽었다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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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2  11: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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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순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차의과학대학교 약학대학(임상약학대학원 겸직) 조교수, 사회약학 전공

 

(학력)

숙명여자대학교 약학사, 사회약학석사, 약학박사

 

(주요 경력)

미국럿거스대학교 약학대학 Post Doc.

숙명여자대학교 의약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BMS/Upjohn/Zeneca Korea QA/허가등록/임상연구

 

(현재 주요 활동)

한국보건사회약료경영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약사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DUR 분과위원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마약퇴치연구소 운영위원

사회약학박사로  약사사회에 애정이 많은 손현순 교수에게 '고령시대 최악의 질병은 외로움'이라는 주제로 원고를 청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의사중심인 사회에 살지만 손교수의 원고 행간행간을 천천히 읽으면서 2070년 약사약국이 어떠한 '철학'으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작은 해답을 보는 듯 했다. 독자여러분의 일독을 권한다 귀한 원고 주신 손교수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약국신문 주간 이상우>

노인과 약국

오래 사는 삶, 피할 수 없는 외로움

   
▲미래약사인 후학들을 사랑과 애정으로 대하는 손현순 차의과학대학교 약대 교수(사진)

불로초를 찾아 헤맸다는 진시황도 일찍 죽었듯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은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평균수명을 계속 연장시켜왔고, 특히 의과학분야에서는 오래 살고자 하는 인간욕망의 실현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흔들림 없는 목표가 되었다. ‘오래 사는 일이 걱정이 아니라 기대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약회사 라디오 광고는, 100살 넘게 살아야 한다는 수명연장에 대한 현대인들의 우려와 희망이 뒤섞인 표현이다. 평균수명이 건강수명은 아니기에 오래 사는 삶이 정녕 축복이 아닐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내가 아닌 부모의 선택으로 세상에 태어나 한 세기를 살다 소멸하는 생명체로서, 노화가 진행된 사람을 ‘노인’이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노인’을 정의하는 기준은, 사회활동 은퇴나 연금지급과 같은 정부정책과 연계하여 인위적으로 정한 65세 연령이다. 따라서, 노화 진행정도와는 무관하게 65세가 되는 순간 노인집단에 속하게 되며 개인보다는 집단적으로 해석되곤 한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노인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접어들었다거나 연간 의료비 지출 총액 중 노인의료비가 40%를 넘고 앞으로 노인인구 증가율을 고려하면 건강보험재원 적자가 예상된다는 등 우리 사회가 노인증가를 ‘문제적’ 현상으로 제시하는 통계지표들을 많이 본다. 노인은 자원분배구조에서 생산가능 연령의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인식되고 때론 무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한 시대의 역사를 써가며 축적한 경륜과 삶의 지혜는 인류발전에 매우 소중하지만, 시장자본주의 체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른 현상들처럼 너무 많아진 노인들은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그 희소성을 상실해 버렸다.

인구고령화를 환경오염과 함께 현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 말한다. 인구고령화를 중대한 사회문제로 보는 건데, 이는 사회적으로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는 어감을 풍긴다. ‘노인’이 되는 순간 뭔가 사회적 부담문제를 해결해야 할 대책이 필요한 고령인구집단에 자동 편입되면서, 한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사회적 위축으로, 충격으로 이어진다. 연장된 수명이 마냥 기쁨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세상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고 사회적 가치없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잉여인이 되어버린 상황이 만들어낸 무력감과 소외감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매우 치명적인 외로움마저 끌어들인다. 인간은 군중 속에서도 고독함을 느끼는 존재라고 하지만, 노인의 외로움은 그 결이 조금 다르다.

노인의 외로움의 부정적 측면을 보고한 연구들이 많다.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을 감소시키고 우울과 사망을 증가시킨다는 의학적 결과가 아니라도, 노인에게 남아있는 삶이 심리적, 신체적 아픔을 주는 외로움과의 싸움이라면 그건 고통이자 삶의 의욕을 지탱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외로움은 그 자체가 위험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사회문제로, 공중보건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개인적 상황이나 심적 상태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적 역할을 상실한 노인의 경우 상황을 변화시킬 동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외로움을 극복할 방법이 많지 않아 보인다. 결국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인 당사자 개인의 몫도 있다. 노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기에 노화에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화가 노인의 위치를 더 낮게 만들었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걸 소외라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교육을 해서라도 그럴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할 일은, 노인을 부양집단으로 보는 경제적 관점의 해석에 집중하기 보다는, 우리 존재의 근원으로서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소통의 틈을 열어놓는 것이다. 국가의 노인복지 방향 또한 노화에 따른 신체적 활동의 보조와 보건의료서비스 제공만이 아니라, 사회심리적 상태를 살피고 외로움을 줄이는 것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사람들 접촉이 어려운 독거노인에게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을 키우게 한다거나 AI 스피커가 말벗이 되어 노인의 외로움과 우울감을 해소해 주려는 여러 가지 복지활동이 시도되고 있어서 다행이다.

 

노인 곁의 약사, 따뜻한 이웃

대부분 노인의 사회적 활동 반경은 주거지를 중심으로 그리 넓지 않다. 누군가와 소통하는 기회가 적다는 의미이다. ‘노인=복합만성질환+다제복용’ 공식은 틀리지 않을 거고, 제한적인 노인의 활동 동선에도 병의원과 약국은 반드시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약 먹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된 노인들에게 병의원과 약국은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과 몸짓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공공연히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창구이다.

그러나, 제한적인 소통 대상인 의사와 약사에게 노인들은 속 후련하게 이것저것 말하고 궁금한 것들을 다 묻고 있는 것일까? 대기환자들 눈치 보여서, 바쁜 선생님 시간 뺏는 게 미안해서, 더뎌진 행동이나 세상 감각 때문에 자신감이 없어서, 분위기에 주눅 들어서, 그냥 쭈뼛거리다가 한 마디 말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배운다. 약사는 돌봄자(carer)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역약국(community pharmacy)에서의 돌봄 대상 중 노인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더 많이 증가할 것이다. ‘노인약료’라는 말이 등장하고 교육과정이 생긴 건 바로 그런 시대흐름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쩌면 약사들은 이제 모두 ‘노인(약료)전문가’가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노인(약료)전문가’에게 필요한 소양 내지 역량은 무엇일까? 생물학적 노화와 그로 인한 질병의 발생기전, 최적의 약물요법 등 관련 전문지식을 갖추는 건 기본이고, 여기에 노인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이해가 추가되어야 한다. 약물요법이 약사의 돌봄과정에 핵심이 되겠지만, 왜 어디가 아픈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히 판단했을 때 최선의 돌봄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론 노인의 삶이 외롭지 않게 하는 일이 노인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약국에서 마주하고 앉은 노인은, 자신이 걸어온 삶의 희노애락, 후회 그리고 쓸쓸함까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상태일 것이다. 산티아고 노인이 바다에서 힘겹게 잡은 청새치를 끌고 항구로 되돌아왔을 때 비록 앙상한 가시만 남아있을지라도, 단 한번 사는 인생의 바다에서 온 힘을 다해 애쓰며 살며 이뤘던 일들이 가치 없거나 헛된 것은 아니었다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낸 것이었다고, 헤밍웨이는 마지막 작품 ‘노인과 바다’에서 자신의 삶을 그렇게 평가했다. 삶의 가치를, 인간의 존엄성을 그렇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약국에서 마주하고 앉은 노인을, 한 생애를 온 힘을 다해 당당히 살아낸 또 다른 산티아고 노인이고 또 다른 헤밍웨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려면, 그래서 그가 외롭지 않게 하려면, 끊임없는 경제성장만을 갈망하는 정신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가치관이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많은 비용을 투입해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들을 만들어도, 인간 존중의 마음과 행동이 작동되는 방식이 아니면 노인집단에게도 비노인집단에게도 환영받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약사의 노인 돌봄 또한 마음을 읽고 마음을 담는 방식이어야 한다. 신체적 질병과 함께 외로움과 우울이 응축되어 있는 노인에게 ‘약’의 의미는 치료효과를 나타내기를 기대하는 물질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나 지금 아프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 나 좀 바라봐 달라.’는 노인의 몸짓이자 신호에 대하여 의사와 약사가 응답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꼬박꼬박 약을 받아가는 건, 약을 잘 먹어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지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련의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의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약국에 오는 노인에게 정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대학원에서 [노인사회약학] 강의를 개설한 건, 약사들에게 노인 건강지킴이로서의 역량을 키워보자는 실용적 동기에서이다. 다양한 노화과정(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과 노화에 따른 변화(개인적, 가족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노인약료 전문지식과 기술이 잘 접목된 최적의 노인 친화적 약사서비스를 제공해서, 궁극적으로 노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돌봄자 역할의 미래방향성을 학생들과 함께 탐색하고 있다.

노인의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의료적 돌봄 과정에서, 약사의 역할은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할까? 그저 ‘처방에 따라 약을 조제하는’ 수동적 행위자 이상의 역할을 기대한다. 65세가 그리 멀지 않은 나는, 노인들의 외로운 눈빛과 앙상한 마음 속 이야기를, 읽어주고 들어주는 따뜻한 약사가 있는 약국이 우리 동네에도 하나쯤 있다면 좋겠다. 참으로 고마운 약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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