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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니즈,'환자관찰'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면 약사도 행복해짐니다
이상우 기자  |  law07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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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7  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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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연 약국장 약력

성균관대 약학대학 졸업

성균관대 임상약학대학원 석사

(전) 한국 Parexel(CRO)-퀸타일즈트랜스내셔널코리아(CRO)

(전) 수원과학대학교 뷰티코디네이션과 외래교수 (피부관리사 국가자격증 과정)

(현) 365신천중앙약국 대표약사

   
▲아버지의 권유로 입은 약사가운은 시간이 갈수록 기쁘다(박채연 약국장 사진)

평범한 약사의 특별한 이야기

섬이 외로워 보이는 건 하루 종일 육지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육지만 바라보느라 자신의 품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른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랍니다. 저 또한 육지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만 바라보느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몰랐던 적이 많았습니다.

제가 별다르게 직책을 맡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하게 활동을 하거나 설명을 해드릴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약사라 오늘은 저의 이야기를 잠시 해 드리고자 합니다.

 

운명적으로 약사가 되다?

수능시험을 보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SKY에 막연하게 지원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IMF를 겪으시며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는지 각박한 세상인데 전문직이 낫지 않냐고 하시며 오랜 시간 새벽에 잠도 안 주무시고 입시 사이트를 찾아보시더군요.

그리고 문과로 지원 가능하고 운좋게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성균관대 약대를 흰 종이에 적어 저에게 쥐어 주셨습니다.

태어나서 가운 입은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적도 없었던 저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날 저는 약대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 와 있었습니다.

 

20대, 꿈을 찾아 좌충우돌하다.

예상대로 대학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강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방학마다 휴학을 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내 삶이 참 힘들다고 생각하던 차에 2학년이 끝날 때쯤 생각을 바꾸어 이왕 이렇게 된 거 공부는 잘 못하더라도 대학에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그 때부터 학생회(어쩌다 보니 성균관대 부총학생회장까지 하게 된), 동아리, 성균관대 홍보알리미 그리고 항상 3개 이상의 과외활동, 봉사활동 등에 전념하며 강의실 안보다는 강의실 밖에 머무르는 시간이 사실 더 많았던 때였습니다.

 

7가지 직업을 가져보다.

졸업 후 약사는 되었지만 저는 여전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육지를 그리워 하며 육지만 바라보고 있는 섬이었습니다. 현실이 무언가 답답했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닌 것만 같아

여동생과 함께 짐을 싸서 1년간 일했던 약국 퇴직금 400만원을 들고 시드니로 떠났습니다.

외딴 섬에서 바라보았을 때 좋아보였던 육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제게는 사막과도 같은 냉혹한 현실이었습니다.

영어를 못해도 취직할 수 있는 스시집에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는 일자리를 구했지만 서빙을 할 정도도 안되었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하여 오후 2시까지 서서 연어 혹은 아보카도를 길게 썰어 와사비를 넣고 김을 싸서 스시롤을 만드는 단순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2달이 지나 혼자서도 3시간만에 초등학생 운동회용 김밥 200줄을 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시점에, 업종을 바꾸어 레스토랑에 취직을 하며 짧은 영어로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여기는 내가 바라는 육지가 아니다. 더 좋은 육지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실은 평일은 레스토랑 그리고 주말에는 시드니 근교에 있는 박람회장에 가서 외국인에게 짧은 영어로 냉온찜질팩을 파는 나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면세점과 건강기능식품 판매점... 저의 또 다른 냉혹한 육지였습니다.

다행히 저의 얄팍한 지식이 도움이 되었던 건강기능식품 판매점에서는 조용히 지하철역 큰나무 앞의 까마귀떼(아직도 무슨 새였는지 모릅니다) 소리를 들으며 저의 타지 생활 최종 목표를 세워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의 품에서도 꽃이 피고 있었는데 왜 나는 몰랐을까요...

여동생이 연말쯤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기에 저 또한 호주약국에서 일을 해보는 것을 저의 최종목표로 삼았습니다. 오피스가 모여있는 지하철역에 백발의 호주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약국 파트타임 구인광고를 보고 3번을 찾아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말도 잘 못하는 한국 젊은이의 무모한 행동이었나 봅니다.... 제가 약사라는 말은 하지 않은채로 첫 번째 두 번째는 퇴짜를 당하고 마침내 3번째로 웃으면서 할아버지를 또 찾아갔을 때 할아버지가 비로소 미소를 지으셨어요.

일을 하고 싶다면 새벽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4시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라고 했어요.

파트타임 반이었지만 게으르고 틈만나면 번갈아가며 결근하는 다른 5명의 호주 직원들 덕분에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저에게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자주 하셨고, 단한번의 지각 결근도 없었던 저는 두 달 뒤부터 마침내 Bradford 약국의 매니져급 풀타임 직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육지만 부러워 하던 사이 저도 모르게 제 섬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울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약국이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판매 박스를 꺼내서 진열해야 하고 평일에는 화장품과 스타킹까지 미용용품의 매출이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여름엔 베로카가 겨울엔 테라플루가 앞쪽에 진열되는 항상 움직이고 있는 약국 이었습니다.

약국이 단순히 약을 제공하는 좁고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손님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건 지금도 제 약사 생활중에 가장 큰 가르침 이었습니다.

그리고 약사 보다는 직원 개개인의 역량으로 큰 유기체와 같은 약국이 운영이 되고 있었기에 약사는 좁은 공간이 아닌 컨트롤 타워에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미래에 제가 만들어 가고 싶은 약국의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약사가운의 보람과 사명을 느끼는 공간 '365 신천중앙약국'(사진)

 

약사라는 직업이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10년이 지나 깨닫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준 할아버지 약사님과 눈물의 이별 후, 귀국하여 CRO에 취업을 해서 모니터링을 다니고, 약국에서 일을 하고 화장품에 관심을 갖고 피부 관리를 배워서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또 못다한 학업도 이어나가고...

내가 잘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이 너무나 많아서 약사라는 직업이 어쩌면 제 천직이라는 생각을 그때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개국 준비를 하면서는 약국장님께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받고 때로는 알바비도 삭감당하면서(손님들께 약을 잘못 드리다가) 시련은 있었지만 드디어 5년전 어르신들이 많은 동네에

저의 약국을 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수년간 좌충우돌 하는 사이 저의 품에서도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의 소신, 나의 기쁨...

약국을 개국한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항상 무슨 일을 하든 두렵고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10여년전 4시간짜리 알바를 하기 위해 백발의 호주 할아버지를 세 번 찾아갔던 그 마음가짐과 다짐을 떠올립니다.

미래의 약국은 각각의 약국이 개성있는 플러스 알파를 가짐으로서 막강한 경쟁력이 있는

‘특화된 약국’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며 매출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고, 의약품 관련 서비스에 더해 플러스 알파를 제공할 수 있는 약국을 만들어가는 것이 약사로써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저의 계획입니다.

 

배우자와 곧 심리상담센터 오픈을 앞두고 있기에 의약품으로 몸의 건강을, 상담을 통한 마음의 건강을 함께 추구해 나가는 것 또한 약사로써 플러스 알파가 될 수 있을 것 같고,

추후 계획하고 있는 건강기능식품과 에스테틱을 결합한 서비스도 개성있는 나만의 플러스 알파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부딪혀 보고 겪어봐야 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나를 찾아주는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일들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수 있는 직업, 저는 제가 약사라서 정말 행복합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약사라서 '행복'하다는 박채연약사가 업무에 몰입하고 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육지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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