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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훈 전국약사문인회 부회장트랜스시대, 의료서비스 중심은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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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2.13  08: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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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시대, 의료서비스 중심은 '환자'

'성분명 처방'은 시대적 요구…"봄날은 온다"

   

▲ 전국약사문인회 부회장
▲ 대한약사회합창단 단장
▲ 소설가

세칭 트랜스(trans) 시대다. 깜빡하는 순간에 어제의 신념은 가차 없이 강판당하고, 세상은 보다 편익한 삶의 가치를 향해 앞으로만 휙휙 내달린다. 관계의 거리도 수렴과 발산이 반복된다.

한 눈 팔면 낙오될 뿐이라고 압박해오는 강퍅한 현실은 ‘적의 적은 동지’라는 등식에 고개 끄덕이게 할 뿐 아니라, 때로는 적과의 동침을 수긍하도록 종용하기까지 한다.

저무는 아날로그의 자리를 냉큼 점령한 디지털의 위력이고, 말 그대로 정보통신기술(IT)의 개방네트워크 세상이다. 창조적 파괴, 지난 세기까지 굳건히 지배해오던 국경·성·계급 등등의 교과서적 경계마저 뭉개가는 이 무적의 디지털문명은 그 거리낌 없는 유동성으로 하여 전 지구를 하나의 그물망으로 통합해냈다.

너 나 없이 지구마을 주민이다. 새로운 인구센서스 분류에 따라 ‘74억 지구촌 인간 중 동북아시아 북위 37.566535 거주 50대 기혼여성’ 등으로 표기된 카테고리를 상상하는 일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두렵지 않느냐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랬다. 짬짬이 이는 멀미로 기우뚱거리는 상황과 맞닥뜨릴 때조차 주저앉고픈 마음은 솟아나지 않는다. 유전자가 서로 다른 원자(atom)로 구성된 아날로그의 정겨움을 포기하는 반대급부로, 광속의 편의를 보상받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계는 기호와 상징의 세계다. 가시적 물질세계와는 달리, 주 활동무대가 ‘0’과 ‘1’의 비트(bit)만으로 구성되는 가상현실이므로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도 자유롭다. 멀미앓이는, 빛이나 전기 등을 활용하여 온-오프(on-off)라는 두 가지 선택만으로 모든 이뤄냄이 가능한 이 첨단과학이 앞으로만 굴러간다는 데서 촉발된다.

매 순간 가열차게 가동되는 업그레이드가 병인이다. 생고생 한다구?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댔다. 자격증을 위한 학원등록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그저 마법처럼 작동되는 새 버전의 업뎃 내용을 열심히 눈팅해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내공을 키우면 된다.

사물에 센서가 부착되면 무생물이던 사물이 깨어난다. 센서를 통해 읽은 데이터를 인터넷을 매개로 실시간 주고받는 상호소통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온라인 검색·소셜 네트워크·전자상거래처럼 사람과 기계 사이를 연결하던 인터넷은, 이제 사물인터넷(IoT)을 너머 만물인터넷(IoE)과 인공지능(AI)이 혼재하는 경이로운 세상 속으로 우리 삶을 이끈다.

가정·기업·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혁신이고 전 지구적 라이프스타일의 트랜스다. 만사IT통. 구글이 내 취향을 알고, 손지갑을 밀쳐낸 애플페이와 삼성페이가 드레스 핏을 날렵하게 세워주는가 하면, ‘셰프 왓슨’을 도우미 삼아 나만의 특수샐러드 레시피를 즐길 수 있다. 어느 지점엔가 신이 강림해 있는 건 아닌지 두리번거려질 만큼 도저한 진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다. 사물인터넷과 만물인터넷의 사이에는 인간이 있다. 뭐야? 뭐지? 버벅거리다가 깜빡 묻힐 뻔했던 사람이 기술 사이로 틈입한 거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하이패스 시스템이나 자동차의 원격 시동처럼 사물과 사물 간 데이터의 주고받음이 사물인터넷의 시작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현실사물과 가상사물, 데이터와 프로세스에 이르는 모든 것을 사람과 연결시켜 위치·공간·센싱정보의 공유가 가능하도록 세팅된 기술이 만물인터넷이다.

사람과 사물들 간의 상호대화가 작동되기 시작한 거다. 대화와 설득은 다르다. 보물이 숨겨진 동굴 문을 열기 위해 『알리바바와 사십 인의 도둑들』이 지시하는 비밀번호 “열려라 참깨!”도 업뎃 되어야 개연성이 산다. 디지털 양식에 부합되도록 ‘열려라 참깨’ 배열에 음성파형을 덧입히는 암호의 코드화가 필요하다. 문을 열까 아니면 침묵으로 버틸까, 명령의 정오 식별에 관한 전권을 넘겨받을 수 있을 만큼의 센싱데이터를 동굴 문에 탑재해놓는 것, 그것이 음성인식 시스템의 환경설정작업이다.

해킹 리스크마저 제압한다는 홍채인식도 마찬가지다. 빛의 양에 따라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는 홍채는 생후 1~2년 내에 고유한 패턴이 형성되어 평생 변하지 않는다. 이 홍채의 패턴을 코드화한 후 영상신호로 바꿔 2초 내에 신분을 판별해내도록 장치해둔 바이오시스템이 홍채인식이다. 기술패러다임의 인문학적 혁신! 제아무리 날고뛰어도 종국에 수렴되어 갈 곳은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이 쌓이면 질의 변화가 뒤따른다. 인류의 탄생 지점부터 사람과 뒤섞여 살아가는 질병에 대한 대응체계도 유사한 경로로 진행되고 있다. ‘J00’ ‘K21.0’ 등은 각각 ‘급성 비인두염’ ‘식도염을 동반한 위-식도 역류병’에 대응되는 기호들이다.

이들 질병분류기호는 세계보건기구에서 발표한 국제질병사인분류 체계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제정 고시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소속 의료전산시스템의 핵심 소스들이며, 여기에는 각각 ‘646900690(타이레놀650mg)’ ‘650700080(넥시움40mg)’ 이라는 약품코드가 자주 호응된다. 이 고유의 약품보험코드번호 역시 병원이나 약국·한의원 등의 요양기관에 지정된 요양기관번호, 그리고 기존의 주민등록번호로 대신하는 환자고유식별기호와 함께 의료서비스의 핵심 소스가 된다.

이러한 기호들의 급부상은 건강보험제도와 그 궤를 같이한다.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등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건강 향상을 도모할 수 있도록, 그 강제 적용을 법으로 적시해 놓은 사회보장제도다.

강제 적용이라니, 소피스트식 궤변 아니냐구? 전체는 부분에 우선하는 거랬다. 내일의 수혜를 전제로 한 오늘의 투자고, 의료복지시스템을 위한 공공재 키우기다. 생로병사의 전권이 아직 하늘에 있음을 깜빡한 채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며 제도 자체를 몰라라 한다거나, 질병위험 수위 높은 사람들만 떼로 가입하게 된다면, 국민 상호 간 위험부담을 통해 의료비를 공동해결하겠다는 본래의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데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아름다운 표면은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는댔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가는 디지털 기술이 그런 것처럼, 공공복지를 표방하며 태어난 이 건강보험제도도 점차 업그레이드되어 가고 있다.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 고시된 이후 14년이라는 긴 준비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도가 ‘근로자 500인 이상의 사업장’ 한정의 직장의료보험제도다.

이 제도는 1979년 ‘공무원·사립학교 교직원 및 300인 이상 근로자 사업장’, 1981년엔 ‘100인 이상 사업장’, 1988년엔 ‘농어촌지역 및 5인 이상 사업장’, 1989년엔 ‘도시 자영업자’까지 확대되면서 전 국민의료보험 시대를 개척했으며, 1999년엔 기존의 의료보험법을 ‘국민건강보험법’으로 개칭하여, 2000년 드디어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과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근간으로 한 의약분업 시대를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약분업이란, 의사는 ‘환자를 진찰·진단하여 치료방침을 결정한 후, 이에 합당한 처방전을 발급’하도록 하고, 약사는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에 기록된 약이 다른 병원의 약과 중복되는 건 아닌지, 복용량과 복용횟수 등이 적절한지를 확인하고, 문제의 소지가 보이면 처방의사와 다시 논의한 뒤 조제’하도록 한다는 일련의 시스템, 다시 말해 양질의 진료와 양질의 투약을 위한 의·약사 협업이 중심 모토다. 도우미도 등장했다.

의약품 오남용 예방·항생제 등의 사용량 감소·지역 간 분업화에 따르는 서비스의 질 향상·환자의 알 권리 신장·질병의 조기발견 및 만성질환자의 지속적 건강관리·제약 산업의 발전 및 의약품 유통체계의 정상화라는 공공선을 내세운 대국민홍보는, 제도의 무사안착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저항 기운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타자와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면 정체성의 혼란이 뒤따르기 십상이다. 티격태격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벌어질 수도 있다. 급조된 의료서비스의 네트워크 속으로 혼입된 병원이라는 요양기관과 약국이라는 요양기관의 경계가 그러했다. 질병을 탐구하기 위해 약을 공부한 의사와 약을 탐구하기 위해 질병을 공부한 약사의 업무를 강제 규정하려는 데서 비어져 나온 삐꺽거림이었다.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사는 그 처방전에 따라 조제투약과 복약지도를 병행한다는 데는 함께 수긍했지만, 처방의약품을 상품명으로 표기할지 성분명으로 표기할지가 문제였다.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같은 성분의 의약품이라 해도 약효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상품명처방이 옳다는 게 의사 측의 주장인데 반해, 시험약과 대조약을 비교분석하는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으로 동일효능을 가진 의약품의 선별이 가능하고, 의약품을 생산하는 회사들의 그 많은 전문의약품을 모든 약국이 전부 구비해놓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처방빈도 높은 의약품을 온전히 구비해놓은 병원인근 약국으로만 처방전이 쏠리게 되는 불균형이 발생하게 될 수 있으니, 성분명처방이 옳다는 게 약사 측 주장이었다. 무엇보다 처방의약품의 잦은 교체에 따른 엄청난 금액의 약국불용재고의약품을 줄여 국가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의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부연설명까지 덧댔다.

결론은? 상품명 처방을 원칙으로 하되, 약사는 생동시험 통과 의약품 일부에 대한 제한적 대체조제를 한 후 처방병원에 팩스통보하는 것으로, 의사는 지역의사회를 통해 ‘지역처방의약품목록’을 지역약사회에 제공하여, 약사들로 하여금 그 내용을 공유하게 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건강보험제도 하의 의료서비스는 이렇게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보다 신속한 업그레이드가 기대될 만큼 태생적 결함은 여전하지만, 환자고유식별번호와 질병분류기호와 약품보험코드번호 등등은, 쉼 없이 요양기관에서 요양기관으로 흘러간다.

아름다운 소통이다. 환자의 아픔을 최대한 덜어내야 한다는 배려 깊은 사명감으로 어떻게 아픈지, 언제부터 그랬는지, 그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현재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묻고·듣고·살피고·만져보고·필요시엔 각종 임상검사까지 동원하여 면밀히 진찰·진단 후, 최소·최적의 약을 선택하는 의사!

처방전에 기재된 약이 혹시 알레르기를 일으킨 적 있던 제제는 아닌지, 이미 타병원에서 처방받아 복용 중인 약과 중복되지는 않는지, 복용 용량과 복용 횟수를 이겨낼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는지, 생동시험을 거친 동일효능의 저가의약품 대체조제로 조제료를 보다 탕감해줄 수는 없는지… 살피고· 묻고·듣고·복용방법과 보관방법과 생활보조요법까지 안내하는 약사!

이런 배려의 파트너십, 상호존중의 파트너십이 바로 환자가 중심이 되는 ‘의-약 투약 크로스 체킹(cross checking)’이다. 창조는 신선함과 기대를 동반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성분명처방이 증가하고 있다는 훈훈한 보도가 있었다(2016. 10. 27. 데일리팜). '2012~2016년 상반기' 건강보험 명세서 실적 자료를 인용하여, 안과의원·내과의원·치과의원·보건소… 등등의 요양기관에서 연 평균 27,000건의 성분명처방전이 발급되었음을 알려주는 뉴스였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온댔다. 휙휙 달려가는 멀미나는 트랜스시대일수록 의료서비스의 중심은 환자로 수렴되어가야 함을, 인간소외를 예견한 잡스가 인터넷에 인문학을 입혔듯,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는 온기로운 기사임을 새삼 알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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