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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혜 서울특별시약사회 정책이사"패러다임 전환해야 약국미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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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25  17: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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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해야 약국미래 보인다"

약사서비스의 '필요성' 및 '공익성' 증명해야

 

현업에 종사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2008년 약대 증설 과정에서 약사 인력 수급의 적정성 문제와 약학교육의 질 보장 측면에서 약대 증설에 반대 의견을 개진했었다. 2012년,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허용을 반대하고, 심야공공약국을 주장했었다. 2014년, 영리법인약국 허용이 환자 중심보다는 수익 중심으로 나아갈 것이 우려되어 전국을 누비며 반대하기도 했다. 수많은 반대 행동에 참여하며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앞으로의 10년이 또 다시 반대의 10년이 되지 않기 위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약계를 둘러싼 내·외부적 조건을 정리해 보았다.

   
 

‘브렉시트’로 표현되었던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 중국의 경기 부양 정책에 의한 효과마저 사라질 국내 경제 위기 국면, 하반기에 있을 원격의료, 원격화상투약기 허용 등 의료산업화 정책들과 대대적 노동개혁도 결코 약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거시적인 조건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찬반을 떠나 국내외 경제적 위기들이 축적될수록 ‘의료 시장과 전문직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의 명분과 추진 강도는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고, 자본을 상대로 약사의 필요성을 증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눈여겨 볼 조건은 인구 고령화, 의료비 증가, 다제 약물 복용으로 인한 약물 사고 예방의 필요성이다. 이는 선진국의 약사 역할 변화와 확대에도 하나의 큰 배경으로 작용했다. 보건의료 비용 지출의 증가로 정부는 비용을 통제하면서도 최적의 약물 치료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해졌고, 그 동력이 약사들에게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약사의 새로운 역할로 자리매김 한다면 자동화, 인공지능은 보다 전문적인 약료 서비스를 행하는 데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약사 서비스의 발전 없이는 현재의 약사 영역을 잠식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

● 미국 약사의 능동적 역사

약사가 가장 신뢰받는 직업으로 꼽힌다는 미국 역시 전문직 정체성의 위기를 계속해서 겪어왔다는 것은 놀랍다. 미국 약사의 개략적인 역사를 살펴보자. 1960년대 약사들의 필수 역할은 ‘의사 처방에 의한 조제’였고, 대체조제, 리필은 물론 약에 대해 환자들과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주로 병원 약사들을 중심으로 임상약학(clincal pharmacy) 운동이 일어났고, 의약품 정보 제공 센터를 운영하는 등 보다 전문적인 업무로 약사의 역할을 확장해 갔다. 더불어 약학 교육자들 역시 약사의 새로운 모델로서 ‘의약정보 제공자’이자 ‘약물치료 상담자’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를 시행할 병원의 일자리는 한정적이었고, 대부분의 약사들은 약국에서 일하면서 처방조제만을 계속해야 했다.

1980년대에 비로소 더글러스 헬퍼(Douglas Hepler)에 의해 약료(Pharmaceutical care)의 개념이 도입되었고, 약사들은 처방 조제를 넘어 약물치료의 결과에 대한 총체적인 책임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1990년, 미국 연방 정부에서 정부의 예산 적자를 감소시키기 위해 Omnibus Budget Reconciliation Act(OBRA'90)를 제정하였다.

이에 따라 약사가 환자에게 투약 시 과거의 약력에 기초하여 ‘복약지도를 의무화’하는 지침이 마련되었다. 약사들에게 환자에게 보다 나은 Health care를 제공하여 불필요한 중복투약, 부작용 발생을 예방하고, 환자의 복약 인식과 이행도를 높이도록 하는 역할이 부여되었다.

그 목적은 Health Care에 필요한 예산을 절감하고, 그 절감한 예산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것이었다. 더불어 약학교육에 있어서도 1991년 11개 대학, 1994년 20개 대학 그리고 2004년에는 미국의 모든 대학이 Pharm-D 학위를 수여하며 전문성 향상에 발맞추어 갔다.

미국의 사례에서 약사들이 보였던 ‘능동성’과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자세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현장과 교육계가 함께 발맞추어 왔다는 것도. 이러한 약계의 능동적인 변화를 토대로 정책 변화가 맞물리면서 약사 직능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로써 약사의 역할이 단순 조제가 아닌 보다 나은 환자 케어를 위한 전문직으로 인식되게 되었고, 종래의 단순 처방 조제를 넘어 약물 사용의 최적화를 목적으로 하는 Pharmaceutical Care 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미국약사회와 미국약학회를 중심으로 면허 취득 자체를 넘어 ‘전문가로서의 사회화’ 과정(가치, 태도 등)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 역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미국 약학대학 협의회는 약사의 사회화 과정 중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으면 그들의 행동이 강력한 타자들(예: 고용주, 의사, 환자 등)에 의해 심각하게 흔들릴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역시 영역 확장의 근저에 ‘라이센스의 근본적 의미’와 ‘전문가로서의 윤리와 소명의식’과 같은 기본적 가치들이 집단적으로 지탱될 때 국민들의 지지 속에서 장기적 발전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 건강증진과 만성질환 관리에서의 약사의 역할

이미 세계적으로 ‘건강증진/예방 영역’과 ‘만성질환 관리에서의 약사의 역할’ 확대가 요구되고 있다. 1997년 WHO에서 개최한 제 4차 건강증진 국제회의에서 ‘자카르타 선언’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기존의 건강증진의 주체였던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즉, 약국/의원 등) 역시 건강증진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첫 발표를 하기도 했다.

WHO는 '만성질환 예방 : 핵심적 투자‘라는 보고서에서 약사는 지역사회에서 가장 접근이 용이한 보건 전문가로서 만성질환과 건강에 나쁜 생활습관을 조기에 발견하는 등 만성질환으로 인한 문제 해결에 약사들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서울특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세이프약국’이 이러한 방향을 모두 담고 있다. 세이프약국은 미국의 MTM(Medication Therapy Management), 영국의 MUR(Medication Use Review)과 같은 포괄적 약력관리와 함께 금연서비스, 자살예방서비스 등을 보건소와 연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차후에 이러한 서비스들의 사회적 편익이 증명되면 제도적인 약사 서비스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크다.

또한 제주도에서 처음 시행되었던 ‘심야공공약국’ 역시 대표적인 지자체와 민간 기관의 협력 사례로써, 도민들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 공익적 기관으로서의 약국의 역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더욱 확대하여 약국의 사회적 필요성과 공익성을 증명해 나가야 한다. 그 결과로 정부의 공공성 체계 내로, 그리고 보건의료 시스템 내에 공식적 서비스로 들어가야 한다.

●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현재는 지금까지 해온 처방조제와 복약지도를 더욱 잘하는 것을 넘어서서 패러다임 자체의 전환을 요구하는 시기이다. 이미 기존 약사의 역할을 더욱 잘 할 수 있는 기계와 인공지능 개발이 눈앞에 있고, 동시에 약사 전문직이 자율성보다는 자본에 종속될 수 있는 위기 역시 앞두고 있다.

문제는 현상 유지의 함정이 아닐까. 그리고 개별 약국 차원의 각자도생도 필요하겠지만,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한 중장기적 비전을 실현해 가야만 한다는 측면에서 개별 약사만큼이나 대한약사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고령화와 의료비 상승으로 인한 약물 최적화 사용의 필요성 증대, 약물 오남용 사고 증가, 예방과 건강증진의 필요성 증대 등의 기회를 미국과 같이 주체의 노력으로 극대화 시켜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을 위해 요구되는 전문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에 대한 공식적 인증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당장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지역사회의 건강 증진에서 약사의 역할이 크다는 근거들을 현장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이 과정은 혹독할 수 있지만 라이센스를 통한 ‘독점’의 의미는 바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10년 후 약국의 모습은 지역사회에서 ‘약물의 안전하고 효과적인 사용을 돕는 동시에 건강 증진과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적 민간 기관’으로 인식되기를, 그리고 그 역할을 잘 할수록 국민에게는 안전과 건강이, 약사에게 더 많은 보상이 갈 수 있는 선순환의 시스템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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