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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불법행위 '소멸시효' 배제해야13가지 죽음:어느 법학자의 죽음에 관한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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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14  13: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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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법학전문대학교 이준일 교수

군에서의 죽음

1984년 4월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육군 제7사단에서 휴가를 하루 앞둔 병사가 M16 총탄 세 발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유족은 자살하기 위해 머리와 가슴에 세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없어 타살이라고 주장했으나 군의 그의 죽음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는 경비소대장인 김훈 중위가 사망한 채 발견된다. 오른쪽 머리에 총상을 입은 김 중위의 사망을 두고 군은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유족은 동기가 불분명하고 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군대 내에서 사망한 사람은 총 10,970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자살한 사람은 4.088명이라는 통계가 있다. 징병제로 운영되고 계급에 기초한 폭력에 익숙한 한국 군대의 특성상 군내 가혹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군기강화를 목적으로 자행되는 이른바 ‘얼차려’도 이런 집단적 폭력을 부추기고 있다. 폭력적 군대 문화는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내는 계기로서 ‘남성성’으로 상징화되기도 한다.

의문사 사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군은 여론을 의식해 갖가지 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자백과 가혹행위에 의존하는 수사관행, 억압과 폭력으로 유지되는 군대 문화가 근절되지 않는 한 의문사는 계속될 개연성이 크다.

이처럼 특별히 군대에서 발생한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2005년 7월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군의문사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에 따라 2006년 1월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위원회는 군의문사와 관련된 진정의 접수, 조사대상의 선정, 진상조사, 고발.수사의뢰, 피해구제 및 명예회복 요청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유족이나 군의문사에 관하여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었고, 진정은 시행일부터 1년 이내에 이뤄져야 했다(동법 제 15조 제1항 및 제2항). 위원회는 진정이 각하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지체 없이 필요한 조사를 해야 했다(동법 제18조 제1항)

이어지는 판례는 대법원에 제기된 국가배상 소송으로 군의문사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A는 신병훈련을 마치고 1991년 1월 25일에 보병부대로 배치되었다. 부대에서는 군기를 잡으라는 지시가 중대장과 소대장 등으로부터 하달되었다. A는 일명 군기조 선임들로부터 매일 수시로 복장단정,군가암송,서열암기 등의 군기교육을 빙자한 갖은 구실로 곡팽이 자루로 매질을 당하고, 전투화로 걷어차이고, 주먹으로 가슴을 가격당하고, 뺨과 머리를 얻어맞고, 머리를 땅에 박고 기합을 받는 등 온갖 신체적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다.

결국 A는 전입한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2월 3일 오후에 부대 철조망 인근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 2009년 3월 군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의 조사 결과 이전부터 소속부대 지휘관들은 일상적인 구타와 가혹행위가 행해지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묵인하였고, A의 사망 후에는 병사들에게 A에게 일어난 사실을 비밀로 할 것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비록 군 당국이 국가배상청구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방해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도, A의 자살이 부대관계자들의 관리.감독 소홀 등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임이 진상규명을 통해서야 밝혀졌고, 군 당국의 사고원인 은폐 내지는 부실한 사고원인 조사로 결과가 나오기까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없는 객관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았다.

대법원 2011.10. 13 선고 2011다36091판결

 

위 사건은 유족들이 A의 사망일로부터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을 훨씬 넘겨서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피고인 국가는 소멸시효가 지났음을 항변했으나 대법원은 국가의 항변을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보고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군의문사위원회는 2006년 1월 1일부터 2008년 12월31일까지 2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기구로 발족했다. 군의문사위원회는 조사를 개시하기로 결정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조사를 완료하여야 했다.

다만 이 기간 내에 조사를 완료하기 어려운 때에는 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최대 6개월 이내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동법 제23조 제1항 및 제2항). 하지만 2년이라는 시간제한 때문에 많은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채 묻히게 되자 유가족의 항의로 활동기간을 1년 연장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진정된 사건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군의문사위원회는 수많은 의문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하고 말았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 소멸시효와 성역 없는 수사

의문사는 국가의 불법행위가 발생한 시점과 그것이 밝혀진 시점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 경우가 흔하다. 진상규명으로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의문사임이 밝혀졌다면 유족은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럴 경우 시간이 훌쩍 지나 청구시기를 놓치게 된다.

소멸시효는 일정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법률관계를 다투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국가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소멸시효가 인정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취지로 거창양민학살사건의 국가배상청구권 소송에서 대법원은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한 바 있다.1951년 경남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지리산 공비들이 경찰 등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육군 제 11사단은 1951년 2월 9일부터 11일까지 그 지역의 주민 수백 명을 사살하였다. 국회는 1995년 거창사건 특별법을 제정해 사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에 관한 사항, 합동묘역관리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에 관하여 규정하였으나 희생자나 유족들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도 두고 있지 않았다. 이후 2004년 3월 거창사건 희생자와 유족에 대하여 보상금 등을 지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률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전쟁 중에 일어난 민간인 희생의 보상에 대해 아직 사회적 곰감대가 폭 넓게 형성되지 않았고, 거창사건에 대한 보상이 향후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으로 적용할 것이 예상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유족들은 소송을 제기해 국군에 의하여 자행된 거창사건으로 인하여 희생자들이 사망함으로써 희생자들 및 그 유족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입었으므로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는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은 시효기간이 지나 소멸했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거창사건 특별법이 사망자 및 유족들의 명예회복 등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일 뿐, 관련자들에 대한 금전지급 등에 관한 규정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법원은

또 보상금 지급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다고는 하나 그 사실만으로 국가가 시효기간이 다했음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2008.5.29.선고 2004다33469 판결

 

국가배상청구권의 경우에도 소멸시효가 인정될 수 있고,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신의칙이나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불법행위에도 소멸시효가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주장은 커녕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환경이었다면, 더욱이 국가가 그런 환경을 조성했다면 예외적으로 소멸시효를 인정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문경양민학살 사건의 국가배상청구권 소송 사례가 대표적이다.

1949년 공비소탕작전을 수행하던 군인들은 전투능력은 물론 공비 활동에 가담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어린이,노약자, 부녀자들을 포함한 문경군 석달마을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했다.

이른바 ‘문경학살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전에 채권자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거나, 그러한 조치가 불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행동을 하였거나,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일단 시효완성 후에 채무자가 시효를 원용하지 아니할 것 같은 태도를 보여 권리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신뢰하게 하였거나,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같은 조건의 다른 채권자가 채무의 변제를 수령하는 등의 사정이 있어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11.9.8.2009다66969 판결

 

이어지는 판결문은 사건의 정황과 이에 대한 법원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공비 소탕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군인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알기 어려워 희생자들의 유족이라도 국가에 의하여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는 국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점, 문경학살 사건에 대하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한 진실규명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해자가 소속된 국가가 진상을 규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건 초기 국군을 가장한 공비에 의한 학살 사건으로 진상을 은폐.조작하였던점, 유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만으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유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되었다고 볼 수 없는 점, 전쟁이나 내란 등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게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사실상 달성하기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던 때까지는 객관적으로 유족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고, 여기에 어떠한 경우에도 적법한 절차 없이 국가가 보호의무를 지는 국민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다는 점을 더하여 보면,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조차 게을리 한 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문경학살 사건의 유족들이 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에 따라 진실을 알게 된 다음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에 대하여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여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

국가불법은 가해자가 국가이기 때문에 국가가 사건의 진상을 고의적으로 은페하거나 진상규명 노력을 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국가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민사회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의 진상규명을 끊임없이 촉구해야 한다. 비록 상당한 시간이 흘러 시효가 완성됐다 하더라도 국가를 압박해 진상규명을 약속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가 소멸시효를 들어 배상을 거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하는 것만이 의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특히 정권 차원에서 발생한 의문사의 경우에는 최고책임자까지 처벌함으로써 권력에 의한 살인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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