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확신으로 ‘현실의 벽’ 뚫어

회사 경영도 ‘좁고 깊은’ 전략적 관점으로 승부

▲ 에리슨제약 동을원 대표

▲ 제약사에 입사하게 된 동기는?

아이들을 길러보면 어려서부터 좋아하는 부분과 재능이 매칭이 되면서 서서히 진로가 정해지기 마련인데, 저는 약대에 진학하고도 분명한 저의 진로를 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또 약사라는 직업에 대한 투철한 소명의식을 갖고 있지도 못했다.(웃음) 오히려 대학교 입학 후 진로에 대해서 고민했고, 학교에서 과대표 및 대의원 부의장을 하면서 내 성격에 맞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 같다. 학교에서의 경험들과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내가 가장 원하는 방향을 올바르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졸업 후 병원약사로 잠시 근무한 적이 있고, 의약분업 이후에 1년 동안 친구와 동업형태로 회사를 다니면서 약국을 운영한 적이 있다. 요즘에는 병원약사가 학술적인 백그라운드도 굉장히 많아졌고, SIG(Special Interest Group) 모임도 활성화 돼 있지만 40년 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병원근무가 나쁘지 않았지만 처방전이 나오면 처방전대로 조제하는 업무가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웃음) 병원근무는 도전적이고 학술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던 나의 욕구를 충족 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병원약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성을 찾기 시작했다.

의약분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 친구와 동업형태로 약국을 1년 운영했는데, 남들과 다르게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다. 복약지도도 세심하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 당시 생소한 스킨케어 분야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봤다. 우리나라에 약국 화장품이라는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때라 어려움이 있었지만 재미도 있었고, 나름 성과도 있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약국운영을 넘기고 제약회사 쪽에 매진했다.

▲ 마케팅 부문에서 일하게 된 계기라면?

명문제약의 창립멤버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회사 설립 후 회사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규모가 커지면서 파트도 세분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회사 상황은 나에게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명문제약에 근무한 16년 동안 영업을 제외한 모든 파트에서 일을 해본 것 같다. 공장의 생산과정 및 품질관리, 임상실험, R&D, 마케팅 등 다양한 업무를 했다.

여러 파트 중에 마케팅이 저에게는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만 해도 마케팅 틀이 덜 잡혀 있던 시기였는데 내가 생각한 부분을 영업부에 전달하고, 정책을 마련하고, 시장조사를 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때의 성취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그 당시 중소 제약회사 대부분이 R&D가 전무했던 상황이었고, 대부분 라이센스를 받아오거나 제네릭으로 운영이 됐다. 당시에는 수액을 병으로 생산했는데, 명문제약에 근무할 당시 처음으로 수액을 팩으로 제품화하는 기획을 했고, TASK FORCE TEAM의 책임을 맡았다. 기계 설비부터 마케팅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진두지휘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좋은 반응을 얻으니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내 자신의 능력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됐다.

▲ 제약사에 입사해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제약회사에 입사할 때 약사 면허가 큰 도움이 됐다. 약사 라이센스 소지자로 약간의 우대도 받았고, 약학에 대한 배경지식은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됐다고 본다.

그럼에도 어려웠던 점은 인간관계다. 회사생활도 중요하지만 가족들과의 관계도 무척 중요하다. 남편의 외조와 믿을 수 있는 가사도우미가 육아 및 가사에 상당한 도움을 줬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가정과 직장의 균형을 잘 유지했다고 본다. 가정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있다면 사회생활에 100% 몰입하기 어렵다.

제약업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업이 필수인데, 그 당시 여성이 영업부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케팅은 영업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바탕으로 개발하는 것이 기본인데, 영업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영업부서에서 올라 온 정보로 시장상황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케팅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는 반드시 영업을 경험해 보라고 조언한다.

▲ 여성에게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약사 대표까지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 있는데 한번 일을 맡으면 끝까지 완벽하게 해야 하는 성격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스터디가 있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다시 하라고 한다면 못할 것 같다.(웃음) 난 단지 우직함과 열정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 같다.

창립멤버로 일을 시작하다보니 사장님께 직접적으로 대면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장님께서는 제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나 열정, 성실성을 많이 인정해 주셨다. 요즘도 항상 회사에 7시에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한다. 제약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다. 똑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했다면 지루 했을 텐데, 새로운 일을 계속하다보니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에 몰입하면서 생활습관이 된 것 같다. 또한 어느 정도 위치에 서면 내 이익보다는 회사와 직원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도 굉장히 중요하다.

▲ 여성들에게 육아는 가장 큰 고민거리다.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후배들이 가끔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물어보는데 월급 모두 주더라도 믿고 맡길 만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 본인의 능력이나 지위는 올라가게 되고, 힘든 시기도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된다. 이 시기를 참지 못해 아이들이 눈에 밟히고 불안하면 사회생활은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직장맘으로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하는 부분이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 부분은 아이들과 서로 자연스럽게 타협을 한 것 같다. 저는 운 좋게도 가사도우미가 참 좋은 분이어서 많은 부분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래도 엄마가 해야 하는 영역이 분명 있기 때문에 마음의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엄마가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결국은 이해하고, 배려를 해주는 것 같다. 한참 일하던 대리, 과장 시기에는 프리젠테이션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집에서 거의 매일 준비를 했다. 적절한 시간배분을 위해 발표연습도 하고 자료정리를 했는데 이 모든 과정을 아이들이 지켜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엄마의 열정을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면 아이들은 절대 잘못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결혼은 꼭 필요한 것인가?

결혼을 해서 가족을 얻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무늬만 가족이 아닌 건강한 가족이 필요하다. 건강한 가족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밑바탕이 된다. 건강함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포함되는 것인데 결혼이 이 모든 것을 충족하는 필요조건은 아니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있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가정에 소홀하고, 이혼을 선택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 에리슨제약의 경영 슬로건은?

R&D는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TWO INCHES WIDE TWO MILES DEEP’라고 한다. 작은 회사의 경우 좁은 영역을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이 중요하다. R&D의 성과는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회사 안에 차곡차곡 축적되는 경쟁력과 기술력은 마케팅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R&D 과정에서 일어나는 학술적인 치열한 긴장감이 있다. 전공분야는 아니지만 공부하고 경험해 가면서 전략적 관점(strategic focus)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다.

예전에는 라이센스 파트너를 찾으면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마련됐지만 요즘은 라이센스 계약 자체가 쉽지 않다. 본인들이 직접 진출해서 판매를 하거나 라이센스를 상호 교환해서 계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국내 제약사들은 R&D에 집중을 해서 경쟁력 있는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특정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특화된 제품을 개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R&D이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다.

▲ WMM(Woman Marketer Meeting)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나?

창립멤버로 활동했지만 3년 전부터 활동을 쉬고 있다. 워낙 출중한 후배들이 많이 등장해서 현재는 고문단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여성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할 만큼 여성의 지위가 낮았고, 마케팅 분야의 대부분이 남성들 차지였다. 그렇지만 현재는 외자기업의 70%는 여성이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오히려 남성 마케터 단체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다.(웃음) 단체가 커지다 보니 결속력이 느슨해지고, 현재 WMM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의 위치가 한참 일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같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성공적 약국 경영은 다각화보다 ‘전문화’에 달려

‘100세 시대’에 맞춘 정신적 건강 매우 중요

▲ 약사사회가 약국경영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약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안을 한다면?

40년 전에는 약사의 권한이 많았지만 현재는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약사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데, 이런 상황일수록 소비자가 원하는 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는 방향성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약국을 1년 운영하면서 제일 핵심으로 생각한 것은 ‘돈을 어디서 벌 것인가?’하는 타깃의 설정이었다. 전문의약품, 건기식, 화장품, 의료기기 등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약국경영의 전략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예측 관련 기사를 보면 약사가 없어질 직업으로 나오는데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약사직능의 밝은 미래는 없다고 본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의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해 소비자들의 NEEDS를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사회 차원에서 TASK FORCE TEAM을 구성해 새로운 패러다임 연구와 구체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 현재 하시는 일 또는 취미활동 중에 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꼽는다면?

시간이 나면 트래킹을 즐긴다. 숲속을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전에는 걷는 것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걷는 것이 사람을 굉장히 편안하게 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100세 시대’에 가장 성찰이 필요한 부분은?

태어나고 늙고 죽는 것은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병은 우리가 유일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병들지 않기 위해서는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데, 육체적인 건강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신건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면서 인간의 욕심도 접하는 정보만큼 커지는 것 같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과한 욕망은 정신건강을 지키는데 큰 적이다. 자신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는 정신을 힘들게 한다.

▲ 다소 엉뚱한 질문이긴 하지만 정신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100세시대’ 진짜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이 서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100세 진짜약이 아닌가 생각한다. 바뀌는 것에 대해 집착하지 말고, 바뀌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최선을 다하면 좋지 않을까? 정신건강은 틀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어려운 것 같다.

종교에 의지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불교에는 無材七施(무재칠시)라는 말이 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7가지가 있다는 뜻이다. 살 수 있는 동안은 사람에게 베풀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무재칠시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삶이 의미 있고, 베품으로 인해서 나의 마음도 풍성해지고 정신건강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 無材七施(무재칠시): 1.화안시(항상 얼굴에 화색을 띠는 보시) 2.언사시(말에 친절을 담는 보시) 3.심시(따뜻한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보시) 4.안시(눈에 호의를 담는 보시, 웃는 눈빛으로 상대를 보는 보시) 5.지시(물으면 친절히 이것저것 잘 가르쳐주는 보시) 6.상좌시(앉은 자리를 남에게 양보하는 보시) 7.방사시(가족이나 남에게 잠자리를 깨끗하게 해주는 보시)

▲ 동을원 대표는 다음 인터뷰 상대로 엔지캠생명과학 김혜경 부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