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주나라의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주나라의 고사리를 먹는 일은 어찌된 일인가?
이에 백이와 숙제 두 사람은 고사리마저 먹지 않았고,
마침내 굶어 죽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 나오는 대목이다. 상나라 영주의 아들이었던 백이, 숙제 두 형제는 나라를 강탈당한 뒤 두 임금을 섬기지 않았고 주나라 산의 고사리마저 거부하다가 순절한 충절로 인해 의인의 표본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가 망하자 정온은 지리산의 고사리로 연명하였고, 구한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황매천은 고사리죽을 끓여 먹은 후 자결하기도 했다.

이처럼 절개와 충의를 상징하는 고사리는 고사리속 양치류의 총칭이다. 세계적으로 온대와 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1m 가량, 잎자루 높이 20-80cm 가량 자란다. 양치류를 영어로는 'bracken' 또는 'brake'라고 하는데 12변종이 있고 이 중 4변종은 북아메리카와 영국에서 자란다. 우리나라에서 생식하는 종은 라티우스쿨룸이다.

고사리의 뿌리줄기는 땅 속을 길게 기며 둥글고 어린 부분에는 갈색 털이 있다. 잎자루는 곧게 서며 굵고 털이 없으나, 그 기부(基部) 부근은 어두운 갈색을 띠며 같은 빛의 털이 있다. 다 자란 고사리의 잎 뒷면에는 포자낭이 있으며, 포자낭이 터지면 그 안의 포자가 땅에 떨어져 번식한다. 이후 땅에 떨어진 포자가 자라서 전엽체로 성장하는데 전엽체는 평평한 심장 모양으로 녹색을 띠며 지름은 5㎜ 정도이다. 이 전엽체 뒷면에 장정기와 장란기가 있다. 장정기 속에서 만들어진 정자는 장란기 속에서 생긴 난자가 있는 곳까지 헤엄쳐 가서 수정한다. 수정한 난세포는 전엽체의 장란기 속에서 싹을 틔워 생장하여 새로운 고사리의 몸이 되고, 전엽체는 시들어 버린다. 이처럼 고사리류에서는 포자를 만들어 번식하는 무성생식 시대와 난세포와 정자가 수정하여 새로운 고사리가 되는 유성생식 시대를 반복하는데 이것을 세대교번이라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고사리를 ‘궐채(蕨菜)’ 혹은 ‘궐기근(蕨其根)’이라고 한다. 고사리는 12경락(經絡) 중 간경(肝經)· 신경(腎經)에 작용하며, 습열(濕熱)을 없애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장을 윤택하게 한다. 차가운 성질이 있어 성욕을 억제시키며 정신을 맑게 하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공부하는 선비나 수도하는 사람에게 좋은 식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고사리 뿌리를 달인 물이 이뇨와 해열, 고혈압, 여성 대하, 황달, 치질, 야뇨증의 치료를 위해 복용되고 있다. 고사리 잎과 뿌리를 태워 가루로 만들어 복용하면 장염이나 설사 치료에 도움이 된다.

<본초강목>에서는 ‘오장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며 독기를 풀어준다’라고 쓰여 있다. <동의보감>에는 ‘갑작스럽게 열이 났을 때 섭취하면 좋다’고 나와 있다. <본초도감>에도 ‘장의 운동을 좋게 하며 감기로 인한 열이나 고혈압· 황달·이질에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과거 약이 귀하던 시절 고사리 뿌리는 기생충을 죽이는 구충제로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 고사리는 우리나라는 물론 영국,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등에서도 즐겨 먹고 있다.

고사리는 ‘산 속의 쇠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 칼륨 등의 무기질도 다량 함유되어 있다. 영양성분 함량은 단백질 23.7g, 탄수화물 44.6g, 회분 13.5g, 칼슘 225mg, 인 283mg, 철 9.5mg, 비타민 B1 0.13mg, B2 0.50mg 등이다. 고사리는 아미노산류인 아스파라긴(Asparagine), 글루타민산(Gluyaminic acid),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아스트라갈린(Astragaline) 등의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여 치아와 뼈를 튼튼해지게 하고 혈액을 맑게 하여 성장기 어린이와 각종 공해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궁합음식으로는 율무를 꼽을 수 있다. 율무도 면역을 증강시키는 작용이 뛰어난 식품이다. 율무로 밥을 지어서 고사리를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고사리의 향이 잘 배합되어 입맛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제사음식이나 비빔밥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고사리에는 면역계의 일부분인 보체계(complement system)를 활성화하는 기능성 다당류들이 들어있다. 특히 고사리에 들어있는 4종의 산성복합다당(PAⅡa-1, PAⅡa-2, PAⅡa-3, HPA-ⅠVa) 등이 모두 보체계 경로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in vivo에서도 보체계를 활성화 시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사리는 칼슘과 칼륨 등 무기질 성분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들에게 좋으며 고사리에 들어있는 산성다당류가 면역기능을 증가시켜 준다. 예로부터 봄비가 내린 후 새순이 돋을 때 채취한 고사리는 일반 채소에서 부족할 수 있는 단백질을 충분히 보충해 주기 때문에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식품으로 추천되었다.

고사리는 몸에 좋은 건강식품이지만 비타민B1을 파괴하는 분해효소인 아네우라제와 발암물질인 브라켄톡신이 있어 비타민B1의 결핍증인 각기병에 걸리거나 직장암이나 방광암 등에 걸릴 수 있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하지만 말린 고사리를 불린 뒤 다시 삶아 볶거나 무쳐 먹으면 별 문제가 없다. 이 성분들이 모두 열에 의해 파괴되거나 제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사리는 생으로 먹지 말고 꼭 조리하여 섭취하고 너무 자주, 많이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한방에선 고사리를 ‘음기(陰氣)’가 강한 음식으로 분류한다. 실제 남성 호르몬 작용을 약화시키는 성분이 소량 들어있으나 식용하는 보통의 양으론 정력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조리할 경우 이러한 성분이 제거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최남단 남해군 창선면. 해마다 4-6월이면 집집마다 고사리 말리는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계단식 밭에서 400가구가 넘는 농가가 연간 수확하는 양이 100톤에 이르러 국내 생산량 35% 이상을 차지한다. 1990년대 초, 포자가 잘 번식할 수 있도록 햇볕이 잘 드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 창선 고사리를 최대의 소득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자, 이제 창선 고사리로 나물을 만들어 그 맛을 보도록 하자.

1. 불린 고사리는 삶은 후 2일간 물을 교체하며 충분히 우려내고 체에 걸러 물기를 뺀다.
2. 불린 고사리를 억센 줄기는 들어내고 4~5cm 길이로 자른다.
3. 자른 고사리에 준비한 양념장으로 양념을 한다.
4.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양념한 고사리를 넣어 볶는다. 볶다가 육수 3큰술을 넣어 뜸을 들이면서 부드럽게 볶는다.
5. 불을 약하게 한 후 뚜껑을 잠시 덮어두어 익힌다.
6. 고사리 무친 것을 접시에 담고 통깨를 조금 뿌리면 한결 깔끔하고 먹음직스럽다.

고사리는 생명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산불이 난 후 제일 먼저 올라오는 식물이 바로 고사리라고 한다. 힘들고 지칠 때 고사리나물로 그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