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반약 48품목 의약외품 전환과 의약품 약국외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 등으로 약사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있다. 비록 정부당국이 안전성보다 접근성·편의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발단이 됐지만 약사들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민들이 일반약 등을 구입할 때 일반 슈퍼와 약국간의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의약분업 이후 약사들이 처방·조제에만 치중하면서 전문적인 정보에는 소홀했을 뿐만 아니라 관성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국외 판매가 약사사회의 바람대로 무산된다고 할지라도 의약분업 하에서 약사직능의 역할이 올바르게 정립되지 못하면 이 논란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약사·약국 위상 재정립
인천시약사회 송종경 회장은 “슈퍼판매의 저지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약사직능의 존재이유에 대한 자각과 실천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전문약·일반약의 복약지도, 약국관리 등에 대해 변화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비자들이 약사·약국에서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인식을 각인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약사·약국의 대국민 위상은 약의 안전성이라는 당위성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약사들의 현장실천에서 있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설령 슈퍼판매가 이번에 저지되더라고 약사사회가 약의 전문가라는 자긍심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슈퍼판매가 다시 불거졌을 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래서 인천시약사회는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약사직능의 재정립을 위한 약사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가동할 계획이다. 비록 지금 약국외 판매의 대응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제도적 장치가 확충돼야 한다는 게 송 회장의 소신이다.

송 회장에 따르면 특위에서는 약사법과 의료법간 상충되는 점, 약사법 내 모순점 발굴, 건강한 사회를 위한 약사역할 등에 대한 연구와 정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특히, 그는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올바른 약사직능의 방향성이 약사회원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해서 무조건 넘어가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약사회가 회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단체라고 주로 말하지만 이보다 앞선 것이 약사직능의 보호이기 때문이다.

일반약 안전성 근거는 없다
송 회장은 “의약분업 도입시 의료부분의 의약품 사용이 공개되면서 약사직능의 수준이 크게 향상됨과 동시에 의약품 분야에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약국들이 처방전에 매몰되면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를 방치할 수 없는 일. 대한약사회가 외부 용역을 주더라도 분업 하에서 약사직능을 재정립할 수 있는 교육, 제도, 법 등의 연구에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표적으로 시약사회가 진행하고 있는 약물부작용모니터링 시범사업은 약사역할의 한 측면을 구성한다. 전체 회원이 참여하는 이 사업은 일반약의 안전성에 대한 평가가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송 회장은 “약물부작용모니터링은 2008년에 이르러서야 병의원 중심의 상시적 시스템이 갖춰졌지만 대부분이 처방약의 데이터로 일반약에 대한 부작용 보고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일반약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 의문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약물 부작용에 대한 책임이 소비지에게 있을 뿐 국가차원의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일반약의 약국외 판매는 국민건강을 걸고 벌이는 위험한 도박인 셈이다.

만약, 시민들의 자발적 부작용보고 참여와 시스템이 갖춰지면 일반약의 부작용 사례보고는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으며 이 안에서 안전성과 편의성이라는 두 개념이 상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슈퍼판매 본질적 해법 제시
이에 따라 시약사회는 현재 보건의료제도 하에서 국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과 제도개선에 필요한 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세 차례의 설문조사를 기획했다.

최근 접근성에 초점을 맞춘 1차 설문조사에서 시약사회는 시민들이 야간에 몸이 아플 경우 1차 선택기관이 병·의원이라는 점과 밤10시 이후 약국이용이 1%에 불과하다는 데이터를 얻었다.

송 회장은 “분업은 의료에 약이 접목되는 것이 때문에 의료의 접근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안전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서는 각 지역거점별로 공공의료센터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두 번째 설문조사에는 정부차원의 공공의료·심야약국 등 제도적 장치 마련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게 초점을 두고 있다. 3차 설문에서는 국민의료비 절감을 위한 처방전 재사용, 의약품 재분류 등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어진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정부의 약국외 판매는 ‘편리성’이라는 개념만 부각시켰지 분업이후 달라진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송 회장에 따르면 분업이전 약국들은 지역에서 나름대로 1차 의료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병의원이 전적으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의 문제는 이틀에서 고민돼야 하며 1차 설문조사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국가차원의 공공의료시스템의 확충으로 풀어갈 문제이지 기본적인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국외 판매는 잘못된 정책이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송 회장은 “설문조사로 얻은 데이터를 통해 국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회원들에게 알리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면 정책 입안자나 정부, 국회, 시민단체 등에도 결과물을 제공해 올바른 보건의료제도가 마련되는 데 유용한 자료로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