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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⑮-천안 독립기념관민족의 ‘거룩한 항쟁사’ 일깨워주는 역사 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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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2.28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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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면 아마도 소설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흥미가 떨어져 끝 부분은 거의 읽지 않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론 뒤로 갈수록 소설의 구조가 느슨해지는 탓도 없지는 않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던 주인공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의리의 사나이 관우가 죽고, 용맹한 장수 장비가 죽고, 나아가 천하의 지략가 제갈공명까지 죽고 나면 더 이상 읽을 의욕마저 없어진다. 이들 영웅들이 죽고 난 뒤 이들이 세운 촉나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다 결국은 망해간다. 독자들은 이 가슴 아픈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다.

역사라는 것이 그렇다. 내 나라의 역사라 하더라도 웅장한 기세로 뻗어나가는 찬란한 시대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쇠약해져 가고, 침략자에게 패하고, 그래서 항복을 하는 등의 굴욕적인 이야기는 흥미도 없고 들여다보기도 싫은 것이 일반적인 심정이다.

나 역시 조선시대의 역사 중 정조 임금 이후의 역사는 아예 들여다보기도 싫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 정조 임금이 승하한 후, 정권은 다시 수구기득권 세력에게 넘어가 정조의 개혁정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몇몇 세도 있는 가문들이 정권을 농단하는 세도정권 시대가 이어진다.

왕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전국 곳곳에서는 민란이 줄을 잇는다. 설상가상으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들어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조선의 얼을 쏙 빼놓는다. 우리보다 겨우 한 발 앞서 대포를 앞세운 미국의 협박에 못이겨 나라의 문을 연 일본에 의해 조선은 힘 한번 제대로 못써보고 식민지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이렇게 시작된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수 천 년에 이르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욕스런 시대였다. 우리 문화를 말살하고 온 국토를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벌인 일제의 온갖 만행을 되씹는 일은 그 자체가 얼마간은 고통스런 일이다. 그래서 일제 침략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결코 흥미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영광의 역사만 역사는 아니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며,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치욕의 역사를 되짚어 볼 필요도 있다. 일제시대의 역사적 흔적을 찾는 일도 이런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를 오늘날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무능한 위정자들에 의해 나라를 잃기는 했지만, 일제가 지배한 36년 동안 압제에 대한 항거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쟁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역사는 식민지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민족의 ‘저항사’이자 ‘항쟁사’였던 것이다. 우리는 그 시대의 역사를 부끄러운 식민지의 역사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거룩한 항쟁의 역사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 거룩한 항쟁의 역사가 남긴 흔적들은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산발적으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36년간의 항쟁사를 체계적이고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많은 자료를 한 자리에 모아 놓은 곳은 단연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이다. 독립기념관은 개항을 전후한 시기의 변화에서 일제의 침략과정, 우리 민족의 치열한 항쟁, 해방과 독립, 그리고 새로운 정부의 수립에 이르기까지 한말에서 정부수립에 이르는 격동의 근대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종합 사료 전시관이다. ‘겨레의 시련’, ‘나라 지키기’ ‘겨레의 함성’ 등 모두 7개의 테마관으로 나누어 정교한 모형과 상징물, 풍부한 사료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시시설이 매우 훌륭할 뿐 아니라 영상체험관을 비롯한 각종 부대시설과 야외전시시설도 볼만하다. 또한 탁 트인 광장과 크고 깨끗한 연못, 울창한 숲 등 기념관 전체가 공원처럼 꾸며져 있어 한나절 상쾌한 나들이장소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독립기념관은 찾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연중 대체로 썰렁한 편이다. 다른 여러 가지 이유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무엇보다도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비록 치욕의 역사이긴 하나 그 시기는 우리 민족의 거룩한 항쟁기였으며, 독립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값진 피의 결과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독립기념관의 답사는 이렇게 무뎌진 우리의 역사의식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글, 사진/유정서(여행작가, 아하네역사체험학교 대표)<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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