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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⑭-강화도 국방유적‘근대화의 시련’ 상징하는 유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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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2.14  10: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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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까운 섬, 강화도는 섬 전체가 그대로 노천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곳이다. 고인돌과 첨성단으로 대표되는 선사시대의 유적에서 고려 대몽항쟁기의 유적, 강화학파로 불리는 조선시대 양명학의 학맥, 그리고 개항을 전후한 시기 외세의 침략에 맞선 국방유적 등 섬의 어느 곳에나 옛 시대의 흔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뭍에서 가까우면서도 땅이 기름져 사람이 살기 좋고, 서해에서 반도의 중심부로 들어오는 입구에 위치해 있어 국토를 방위하는 전진기지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요인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화에 남아있는 유적 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강화의 역사적 위상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대표적인 유적은 아마도 해변을 끼고 섬 전체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진(鎭), 보(堡), 돈대(墩臺) 등 이른바, 국방유적들일 것이다. 이 유적들은 특별히 19세기 말, 우리나라가 참으로 진하게 겪었던 ‘근대화의 시련’을 상징하는 유적들이기도 하다.

19세기 중엽, 이른바 서세(西勢)의 물결이 도도하게 이 땅을 덮쳐올 때, 우리나라는 그들 나라와 교류를 할 만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리가 상대해온 이웃 나라라고 해야 전통적인 사대(事大)의 예를 다하던 중국과 오랑캐로 여겨오던 일본, 유구, 여진 등의 나라나 족속들이 전부였다.

이들과도 그나마 극히 제한적인 관계만을 유지해 오던 조선에게 밀려오는 서양세력은 그 자체가 감당하기 벅찬 도전이었다. 나라의 문호를 열고 이들 서양세력과 교류를 할 자신이 전혀 없었던 조선의 지배층은 가장 간단명료한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나라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일체의 서양 것들을 배척하는 쇄국정책(鎖國 政策)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아가 서양의 문물을 일소(一掃)하기 위해 서양종교인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해 나라의 기강을 다잡으려 했다. 이를테면 시대를 거슬러 중세적 질서로의 회귀를 택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 한말의 풍운아 ‘흥선 대원군’이었다.

흥선 대원군은 나라 곳곳에 척화비를 세워 외세와의 타협을 엄중하게 경고하는 한편,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서양 세력들에 대해서는 똑 같이 무력으로 맞섰다. 이런 과정에서 빚어진 국지적인 전투가 1866년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이다. 병인양요는 대대적인 천주교 탄압에 대한 항의를 빌미로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했던 프랑스 군대와의 싸움이었고, 신미양요는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 대한 공격을 빌미삼아 역시 통상을 요구했던 미국 군대와의 싸움이었다.

이들 전투가 모두 강화도에서 벌어졌다. 오늘날 강화의 대표적이 국방유적으로 꼽히고 있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이 바로 그 현장이다. ‘진’ ‘보’ ‘돈대’는 거의 같은 기능을 가진 시설들이긴 하나 굳이 구분을 하자면, ‘진’은 말 그대로 군사적인 기지를 말하는 것이고 ‘보’는 해안에 세운 작은 규모의 성곽을 말한다.

돈대는 지형이 높은 곳에 세워 적의 동향을 감시하는 망루나 파수대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돈대는 별도로 세워지기도 하지만, 포대와 함께 보나 진에 속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광성보에는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등의 돈대와 광성포대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 국방유적은 강화도 해안을 빙 둘러 곳곳에 세워져 있지만, 일반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 돈대 등은 초지대교에서 강화대교에 이르는 해안을 따라 포진하고 있다. 그 옛날에는 그야말로 피로 얼룩진 전투의 현장이었겠으나, 말끔하게 복원된 요즈음에는 강화 해변의 낭만적인 정취와 풍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명소이기도 하다.

김포 대명리에서 초지대교를 건너와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을 둘러보고 강화역사관에 들러 전시물들을 살펴보면 알차고 흥미있는 답사가 될 수 있다. 강화 바닷가의 겨울 풍경이 을씨년스러우면서도 낭만 넘친다.

글, 사진/유정서(여행작가, 아하네역사체험학교 대표)<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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