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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역사 ⑬-수원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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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11.23  14: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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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 있는 ‘화성’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도 이름을 올린, 그야말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지만, 정작 그 진정한 아름다움과 가치를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화성에 가서 우선 찾아볼 곳은 다름 아닌 성 안 옛 터에 새롭게 복원된 ‘화성 행궁’이다. 그 중에서도 정전인 봉수당의 오른쪽에 있는 ‘화령전’에 가서 그 곳에 봉안된 정조임금의 어진御眞, 즉 초상화를 만나볼 일이다. 정조 임금이야말로 화성의 ‘시작과 끝’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조 임금은 임진·병자 양란 이후 이미 생기와 힘을 잃은 낡아빠진 왕조, 조선왕조를 다시금 문화와 예술이 꽃피고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강한 왕국’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위대한 개혁 군주이다. 그가 승하한 이후 다시는 그처럼 분명한 철학과 지도력을 지닌 임금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조는 꺼져가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불꽃’이기도 했다.

정조 임금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 즉 오늘날의 수원으로 옮기고 그곳을 요즘 말로 치면 ‘신 개념 계획도시’로 가꾸었다. 마을을 정리하고, 대단위 수리시설을 확충해 농업기반을 강화하고, 시장을 활성화시켜 수도인 한양 버금가는 상업도시로 육성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장차 조선의 모든 고장, 나아가서 조선 전체가 힘써 벤치마킹을 해야 할 모범적인 도시로 가꿔나가려 했던 것이다.

정조는 조만간 임금 자리를 세자에게 물려주고 이곳 화성 행궁으로 내려와 화성유수부를 자신이 평생 추진했던 개혁의 거점도시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새로운 도시의 도성都城인 ‘화성’은 바로 이러한 원대한 도시계획의 중심지이자 심장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뜻을 채 이루기도 전에 정조 임금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화성은 또한 그런 점에서 화성은 위대하고도 고독한 개혁가 정조의 이루지 못한 꿈과 한이 서린 공간이기도 하다.

또 하나, 정조는 화성을 지으면서 전래의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작업방식과 기술을 택했다. 당대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에게 설계를 맡기고 새로운 건설 기기를 제작해 응용했는가 하면 백성을 억지 부역으로 노동을 시키는 대신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면서 일을 하게 했고, 공사의 전 과정을 세밀하면서도 방대한 기록으로 남겼다. 이 기념비적인 기록이 그 유명한 ‘화성성역의궤’이다. 이런 점에서 화성은 ‘정조의 시대’인 18세기 조선사회의 지적 수준과 역량이 총 집결되어 반영된 가장 의미 있는 기념물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의의와 가치를 알지 못하면 화성의 성벽 둘레를 수 십 번 돌아보아도 올바른 답사를 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성의 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설의 쓰임새가 어떻고, 건물의 양식이 어떻고 하는 것을 아는 일이 아니라 화성이 지니는 역사적 무게와 의의를 아는 일이다.

화성의 올바른 답사를 위해서는 무조건 성으로 올라가기 보다는 우선 근처에 있는 ‘화성박물관’을 들러 사전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 짜임새 있는 전시물을 통해 앞서 말한 화성의 의의와 가치를 이해하고, 축성의 과정과 방법 등을 미리 공부해 두면 훨씬 재미있고 의미있는 답사가 될 수 있다.

화성을 둘러보는 답사는 화성행궁을 먼저 둘러보고 곧장 팔달산 정상으로 올라 ‘서장대’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장대’는 이를테면 장수가 전투를 지휘하는 지휘대로 ‘서장대’는 서쪽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으므로 이곳에 오르면 행궁의 전경은 물론 화성의 전체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서장대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코스와 남쪽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있는데, 어느 쪽으로 가도 무방하지만, 북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무난하다. 볼만한 시설들이 이쪽에 많기 때문이다. 만약 한 바퀴 도는 일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성벽 길에서 내려 올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서장대에서 북쪽으로 이동을 하는 동안 ‘각루’ ‘포루’ ‘공심돈’ ‘적대’ ‘치’ 등의 주요 전투 시설을 만날 수 있고, 7개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진 멋진 다리에 세워진 문루인 ‘화홍문’과 그윽한 경치를 자랑하는 누각인 ‘방화수류정’ 등을 만날 수 있다. 걷기가 너무 힘들다면, 3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미니열차 ‘화성열차’를 타고 구경할 수도 있다.

글/유정서(여행작가, 아하네역사체험학교 대표)<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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