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 릴레이인터뷰 주인공 고정철 약사가 같은 약사인 아내의 늦깎이 동기생인 (주)조은건강 조민성 대표를 추천했다.

파란만장한 약사 면허 따기

약사가 되기 전 조민성 대표(삼육대약대 89학번)의 삶은 상당부분 굴곡 많던 한국 현대사와 궤적을 같이하고 있다. 유신정권의 막바지 78년 한양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던 조 약사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멋도 모르고’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독재타파를 외치는 데모대에 합류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입학 후 겨우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집회에 참석하면 학교 선배들이 막걸리도 사주고 밥도 사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사람들이 시위하는 자리에 여러 번 드나들다 보니 어느 새 겉멋이 들었나 봐요.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무리의 선두에 서서 가장 격렬하게 구호를 외치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더군요.”

하지만 조 대표의 이런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갓 스물의 치기로 불합리에 덤벼들던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어느 날 학과장은 조용히 그를 불러 관계 기관의 압력이 잠잠해 질 때까지 군대에 가 있기를 권유했다. 그러한 경로로 입대를 하는 경우 ‘준사망’이라는 선배들의 말에 따라 그는 우선 학교를 쉬다가 그래도 학업을 지속해야겠다는 생각에 지방의 건축학과에 학교를 옮기게 된다.

“그곳에서 얼마간 학교를 다니다가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멋모르던 새내기 시절의 행동이 군대에까지 절 따라 오더군요. 병적기록카드에 빨간 도장이 찍혀 자대에 배치를 받았는데도 별도의 보직이 없는 ‘000’이였죠. 이유 없이 부대도 여러 번 옮겼고 첫 휴가는 상병을 달고 겨우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대도 남들보다 수개월 늦어졌죠.”

군복을 벗고 부푼 마음으로 사회에 나섰지만 조 대표의 수난사는 계속된다. 그가 군에 가 있는 사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문제’ 학생들의 복학을 금지시켰고 조 약사는 하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막노동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바람이 일었고 이십대 중반의 조 약사는 막연히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던 중에 나라에서 해외 파견 인력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일종의 직업 훈련소 같은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6개월 정도 공부해 거푸집 보조기능사 자격을 따게 됐죠. 그런데 거기까지 학창시절의 빨간줄이 따라올 줄 몰랐습니다. 파견 순번이 정해질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데 좀처럼 순서가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조 대표는 파견 기관을 찾아가 허드렛일이라도 좋으니 보내만 달라고 간청해 지금의 한양건설 팀에 합류에 이라크에서 1년 6개월, 사우디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다.

맡은 일을 똑 부러지게 해내는 모습을 눈여겨 본 한양건설 임원이 귀국 후 그에게 일자리를 제의했지만 그 안에 보이지 않은 차별이 있다는 것을 내다본 조 약사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진지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영향을 많이 준 것이 귀국 후 함께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는 지금의 아내.

“아내가 집안이 건실한 제약사를 갖고 있었는데 그래서 제 장인과 처남이 약사입니다. 그 집안 사람들이 약사가 되면 최소한 끼니를 걱정할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저의 경우는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가장으로서 식구들 밥을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약사가 된 겁니다.”

그렇게 조 대표는 서른을 눈 앞에 둔 나이에 약대 진학을 목표로 1년 6개월간 발품을 팔아가면서 입시 학원을 전전했다. 그 결과 89년 열 한살 터울의 급우들과 함께 십년 만에 다시 대학 교정을 밟게 됐다.

뚝심있는 건기식 공급자로

졸업 후 10년 이상 개국약사로서의 무난한 삶을 이어가던 조 약사. 하지만 약사로서의 역할을 상당부분 축소시킨 의약분업은 그가 지닌 특유의 활동가적 기질을 일깨웠다.

조 대표는 여전히 용인 지역에서 손꼽히는 대형약국을 경영하고 있지만 약국 경영은 대부분 근무약사에게 맡기고 있다.

대신 조 대표는 2006년 뜻이 맞는 동료 약사 여럿과 함께 ‘좋은피부’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첫 활동은 당시 유행처럼 들끓었던 아토피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일본의 제품을 국내에 수입한 것이었다.

조 대표는 상품성에 대한 확신을 갖고 3억 6천 만원 가량의 자금을 투입해 이 제품을 국내 시장에 선보였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홍보의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 패인이었다.

“제품을 실제 약국 등에 유통시켜 보니까 여러 반응들이 나오더군요. 상당수가 제품 효과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접근 방식이 잘못됐다는 점을 얘기했죠. 피부트러블을 진정시키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아토피 치료 쪽으로 너무 세게 광고를 했다는 거예요.”

회사 설립 후 1년 만에 쓴맛을 보게 된 조 대표지만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바닥을 딛고 일어날 무언가를 찾아 서성일 때 조 약사의 시선을 잡은 것이 ‘장누수 증후군’. 2000년대 들어서 미국의 학자들이 갖가지 질병과 알러지의 기저 원인으로 지목한 증세이다.

“장속 점막은 사람 몸에 필요한 영양분과 독소물질을 구분해 걸러주는 거름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식습관이나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등의 오남용은 이 거름망을 느슨하게 만들죠. 이 상태가 계속되면 단순한 알러지를 시작으로 여러 자가면역질환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조 대표는 관련 연구와 이에 대한 제품화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나라별로 허용 성분과 수치가 달라 국내 식약청 기준에 맞춘 제품을 현지에서 직접 제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 대표는 활동 영역을 넓히며 회사 상호를 ‘조은건강’으로 바꾸고 관련 이론을 기반으로 한 강의를 전국 약사들을 상대로 직접 해나가고 있다.

조 대표의 이론에 충실하면서도 걸걸한 ‘입담’은 소문이 자자해 그의 시간표는 일주일 평균 3차례 이상의 강의 스케줄로 짜여져 있다.

현재는 국내 대표적인 약사 커뮤니티 ‘대한약사통신’에서 요청이 들어와 강의 동영상 촬영을 진행중이다. 이러한 강연을 통해 매일 수십명의 약사들을 만나지만 조 대표는 뚝심있게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강좌를 공식적으로 이수한 약사들에게만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한이 사라진다면 취급하는 약사들조차 정확한 내용을 몰라 제품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또,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되면 소위 ‘난매 문제’로 약국과 회사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이죠(웃음).”<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