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 이무남 약사가 지역 약사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친분을 쌓아 온 바다약국 전 성남시약사회장 김정옥 약사에게 바통을 건넸다.

약국 종업원을 거쳐 어엿한 약사로

약대 6년제 시행으로 일선 약국이 실습을 위한 교육현장이 되는 이때 무려 30여년 이전에 이 같은 체험(?)을 한 약사가 있다. 성남시 바다약국 김종옥 약사는 61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홀홀단신으로 서울로 상경해 스스로의 힘으로 진로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친구 자취방이나 학원 아르바이트를 통한 댓가로 숙식을 해결하며 틈나는 대로 책을 펼쳐본 끝에 한양대 기계과, 중대 화학과 등에 입학했으나 번번히 중도하차 했다.

막연히 생각했던 스스로의 적성과 실제 수업과의 괴리가 컸던 탓이었다. 그러던 중 부친이 약대가 아니라면 입학금조차 대주지 않겠다는 엄포에 못이겨(?) 64년 경희대 약대에 진학하게 된다.

사실 특별한 결심을 갖고 약대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공부에만 파고드는 모범생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약대 시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고 한다.

집안 형편상 스스로 학자금을 마련했기 때문에 친구들 하고 어울려 놀 기력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늘 피로에 쌓여 있었다고.

“약국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번 돈으로 학교를 다녔어요. 당시 서울대학교 생약연구소장 한병훈 박사가 경영하는 약국이었는데 평화시장 2층에 있던 조그마한 곳이었죠. 그곳에서 먹고 자고 일하면서 제 힘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약국 물정을 보고 겪은 탓인지 김 약사는 졸업 후 일찍이 자신의 간판을 내건 약국을 열게 된다. 특히 70년대 초반 마포와 용산 사이 8평짜리 서민 아파트에 살림과 함께 들인 약국은 그의 표현대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질 정도의 호황을 누렸다.

“밤늦도록 밀려드는 환자를 겨우 맞이하고 잠깐 눈을 붙이고 뜨면 또 약국 밖으로 줄이 생길 정도였어요. 그때가 신혼 초였는데 세끼 식사는 물론 씻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제약이 생길정도였죠. 돈도 많이 벌고 약사로서 책임감 같은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살다가는 제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김 약사가 살인적인 호황(?)을 피해 달아난 곳은 성남.

안정된 환경에서 몇 년간 묵묵히 약사로서의 삶에 매진하던 김 약사에게 한 가지 목표가 생겼다. 전국에 이름이 날 정도로 크고 유명한 약국을 지어 보겠다는 것이다.

“30년 전쯤 성남시청 앞 214평 금싸라기 땅이 매물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자주 얼굴을 보던 동료 약사들에게 질환별 전문약사가 있는 초대형 약국을 만들어 보자고 얘기를 꺼내봤죠. 저를 포함한 총 7명의 약사가 뜻을 같이 하고 자금을 만들어 땅을 매입했죠.”

유수의 건설업체가 공사권을 따기 위해 연락해 왔지만 그래도 같은 지역에 있는 업체를 선정해 시공권을 넘겼다. 결국 이것이 화근이 돼 돌아왔다.

지역 업체는 경험부족을 드러내며 여러 사건을 일으켜 공사는 장시간 중단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은행 대출로 끌어 모은 공사비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건물이 올라왔을 때는 수익을 전혀 보장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처음 땅을 매입할 때 김 약사가 믿고 자금을 대준 일원 중 한 명이 행방을 감춰버리는 일까지 생겼다.

결국 건물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후 김 약사를 빚을 앉고 현재 성남 중원구청 앞에 있는 약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남약사회장 시절 ‘면대전쟁’ 선포

최고의 약국을 만들어보겠다는 계획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후 30년 이상 김 약사와 함께 해온 바다약국은 그에게 약사로서의 본분을 일깨워준 공간이다.

특히 한 자리에 발이 오래 머물자 약국가의 여러 폐단이 눈에 들어왔고 그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몸소 결심하게 됐다.

“당시는 표준소매가 제도였는데 몇몇 약국은 이를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약국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면 국민들이 약사나 약국을 믿고 따를 수 있을까요? 주위에서 보이는 난매 약국들을 그냥 두면 큰일이 나겠다는 생각에 약사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김 약사는 30대 후반의 나이에 약사회에 처음 발을 들이고 성남시약사회 약국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특히 이전의 결심대로 난매 약국 문제를 잡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이러한 김 약사의 열정이 소문나 당시 보건사회부가 주기적으로 실시한 전국 단위의 표준소매가 현지 조사에 대한약사회 대표로 선정돼 전국을 돌며 약국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가격질서를 어지럽히는 난매 약국을 색출하는데 앞장섰다.

91년 성남시약사회장으로 활동하게 된 김 약사는 면대약국 퇴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당시 성남지역의 면대는 특히 치밀하고 조직적이었습니다. 여러 면대 약국이 계조직을 만들어 단체로 행동했죠. 우두머리가 모대학 유도학과 출신이었는데 갖은 로비로 단속을 피가하고 주위 사람들을 끌어 모아 약사회를 협박하던 일도 부지기수였죠.”

특히 한 면대업주가 근무하는 여약사를 성적으로 유린한 사건이 발생하자 김 약사는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영광’이라는 각오로 행동에 나섰다.

“수원 지방검찰청을 혼자 찾아가 담당 검사를 물고 늘어진 끝에 수사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이후 관련 임원들과 함께 밤낮을 뛰어 다니며 증거를 수집하고 정황상 면대가 확실한 27개 약국을 검찰에 통보했습니다.”

결국 약국당 2명의 경찰이 파견돼 불시에 현장 기습을 벌였다. 8명의 면대업주가 구속되고 나머지는 소식이 새나갔는지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했다.

“보조원제 도입해야 약사위상 제고돼”

이러한 김 약사의 추진력이 입소문을 타 그는 91년 설립된 대한약사회 정책위원회의 초대 위원장 자리를 지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김 약사는 약사사회에서 현안에 대해 관심이 깊다. 끝으로 김 약사는 올 초 약사사회의 화두가 됐던 약사 보조원제도에 대해서 의견을 펼쳤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의사의 업무를 보조해 주듯이 약사를 보조해 줄 수 있는 보조원을 합법화 시켜야 합니다. 약국 업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교육을 거친 이들에게 국가에서 공인하는 자격을 주고 이들에 대한 관리를 약사회에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조제나 복약지도와 같은 약사만의 영역은 보호하고 정확한 업무 분장을 전제로 한다면 전문성 약화, 일반약 슈퍼판매와 같은 역효과도 없을 것이구요. 이로 인해 약국의 업무 부담이 줄고 전체적인 약사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