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 정성희 약사가 성남시약사테니스모임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친분을 쌓고 있는 류석렬 약사를 추천했다.

친절과 실력으로 약국 불모지 개척

전라북도에 위치한 원광대학교를 졸업한 류석렬 약사는 졸업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80년 서울로 상경했다.

류 약사는 약대 재학 중에도 처음부터 하루 빨리 면허를 따 약국에서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주위 동기들을 보면 처음 사회에 진출할 때 제약회사나 연구직, 공무원 등의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약사면허는 약국에서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생각에 먼 길을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죠. 조직에 속해 흐지부지한 채 있기 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이 온전히 대가와 보상으로 이어지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확고한 의식 탓에 류 약사는 군복무 후 2년가량 근무약사로 일한 후 지난 82년 자신의 면허를 내건 약국을 열게 된다. 그의 나이가 채 서른이 되기 전의 일이다.

이곳에서 2년 가량 약국을 운영하던 류 약사는 84년 노원구 수락산 인근의 약국으로 이전하게 된다. 학교 선배가 운영하던 것을 이어 받았는데 약사로서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이라 남달리 느껴지는 곳이다.

“84년부터 10년간 이곳에서 약국 문을 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두 딸과 아들을 낳고 계속 이어 갈 약사로서의 삶의 근간을 잡은 곳이기도 하죠. 때문에 도중에 버스정류장이 이전에 경영에 타격을 입는 등 여러 곡절이 있었지만 정을 많이 들인 약국입니다.”

실제류 약사는 91년 수도권 신도시가 생겨날 무렵 분당으로 이사를 가게 됐지만 이후 몇 년 동안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을 하며 약국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 사이 아이들이 자라고 건강상의 이유로 살던 집이 있는 곳으로 약국을 옮기게 된 류 약사는 처음으로 직접 지은 이름을 내건 약국을 열게 된다.

“살던 동네 이름을 빌어 와 한솔약국을 열었습니다. 허허 벌판 위에 세워진 아파트 단지 안에 있던 약국이였죠. 막 생겨난 도시라 단골도 없었고 그야말로 노력하나로 승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였죠. 성심껏 환자를 대하다 보면 언젠가 보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정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정성이 통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어느덧 류 약사의 약국은 주위에서 친절과 실력으로 소문이 나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얼마 못가 의약분업이 시작되고 처방전 수용이 약국 경영에서 배제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그래서 현재 한솔약국은 야탑역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수년 전 흑 먼지 날리던 불모지(?)를 개척했던 경험은 류 약사에게 약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을 아우를 만한 교훈 하나를 던져줬다. 바로 뿌린 만큼 거둔다는 평범한 진리이다.

사진찍기로 스트레스 해소감성 충전

그가 약사로서 세상을 사는 것은 숨을 쉬는 일처럼 당연한 것이 됐지만 돌이켜 보면 약사이기 때문에 생긴 제약이 없잖아 있었다.

바로 늦은 시간까지 일터에 머물러야 하기에 가족과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 첫 번째 아쉬움이다.

또, 한 공간에 머물러 반복적인 업무를 계속하다 보면 일에 스스로가 함몰돼 자칫 ‘살아 있음’을 음미해 볼 만한 마음의 여유를 잃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류 약사는 꾸준히 취미생활을 이어오며 약국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나아가 자신 마음속 풍경을 펼쳐 내 보일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약국 경력과 정확히 겹치는 류 약사의 테니스 구력은 따로 취미라고 떼어 놓고 생각하기가 어색할 정도로 그에게는 당연한 것이 됐다.

현재는 지역 약사 테니스 모임에 가입해 매주 일요일 동료 약사들과 힘차게 라켓을 휘두르고 있다.

그에 반해 사진찍기는 류 약사에게 일상을 잠시 잊고 감성을 충전시키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류 약사는 사진과의 만남은 오랜 약국 생활에 따른 어떤 정신적인 빈곤감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약국을 20년 넘게 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약국을 빼면 내 생활이 없다는 것 말이죠. 약국 밖에서도 뭔가 보람과 즐거움을 느낄 만한 것을 찾아보자고 결심하게 됐죠. 그러다가 카메라 수집이 취미인 친구를 통해 사진에 대해 알게 됐고 막연히 사진으로 그러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그렇게 류 약사는 2003년 사진에 조예가 깊던 친구의 도움으로 사진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주말 마다 친구와 함께 전국의 산천을 헤매며 그림과 같은 풍광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사진 찍기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죠. 세상에 똑같은 사진은 없어요. 같은 대상을 놓고도 찍는 사람에 따라 사진은 천차만별이예요. 그 안에 찍는 사람의 습관과 당시의 기분, 멀리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도 묻어나게 마련이죠.”

현재 류 약사의 약국 곳곳에는 그림과 착각할 만큼 빼어난 질감을 지닌 사진이 여러 장 걸려있다.

또, 그동안 찍은 사진을 올려 놓은 블러그에는 매일 백 여명의 꾸준한 방문객을 확보할 만큼 쏠쏠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직은 배워나가는 단계이기 때문에 풍경사진에 그치고 있지만 실력이 늘면 인물사진도 찍어보고 싶어요. 사진의 깊이와 정수는 인물사진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창피함이 많이 사라지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내와 함께 작은 전시회를 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