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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우인약국 강찬구 약사“나누는 삶이 가장 큰 행복”
양우람 기자  |  tcw1994@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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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5.18  10: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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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릴레이인터뷰는 약사로 살아온 치열한 세월을 거쳐 함께 나누는 삶의 기쁨을 깨달아 가는 중이라는 우인약국 강찬구 약사(경희대 67학번)이다. 그는 이제 약사로서의 삶보다 더 큰 봉사를 생각할 나이가 아니냐고 스스로 묻는다.

<영업사원을 거쳐 ‘열혈’ 개국약사로>

학창시절부터 막연히 몸이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강 약사. 여기에 부모와 주위사람들의 권유가 더해져 67년 경희대학교 약학대학에 진학했다. 적성에도 맞았는지 공부가 술술 풀려 4년 후 강 약사는 유명 제약사에서 몇 년 간 일을 했다.

남은 인생을 함께 할 약국을 열기 전 잠시 사회의 ‘한 복판’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약국을 차리기 전에 왠지 세상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젊은 나이에 좀 더 활동적인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래서 졸업 후 종근당, 동아제약 등에서 일했죠. 여러 부서 중 영업직을 자원했습니다.”

당시 제약회사의 영업업무는 지금과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는 것이 강 약사의 설명. 접대나 향응제공 등의 풍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요즘과 달리 약의 전문가인 약사가 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다.

“저에게 약국이 실전이라면 제약 영업을 하며 했던 일은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죠. 약대에서 설익었던 지식을 끄집어내는 일이라 배우는 것도 많았고 보람도 있었어요. 나아가 영업을 하며 몸에 익혔던 사람을 대하는 요령이라든지 약에 대한 디테일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같은 것은 이후 개국약사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후 75년 강 약사는 아직 분가하기 전이라 당시 부모님이 계셨던 영등포 인근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늘 바래왔던 일이라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에 문을 닫는 생활을 해왔으니까요. 집 사람 역시 약사니까 가능했던 일이였겠지만 약국으로 성공해야 겠다는 욕심이 컸습니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을 빼 놓고 전부를 약국에 쏟아 부으니 돈도 많이 벌었고 약국에 대한 평판도 아주 좋아 지더군요.”

또, 당시는 의약분업 전이라 아픈 사람을 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이들에게 도움이 돼야겠다는 약사로서의 사명감이 커 약국에 ‘올인’하겠다는 강 약사의 결심은 더욱 굳건해 졌다.

“당시 약국은 병원보다 동네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1차 진료기관의 역할을 했죠. 아프면 일단은 동네약국부터 간다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아침 일찍 약국문을 열고 밤늦게 닫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몸이 아파 우리 약국을 찾았던 환자가 그냥 돌아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없잖아 있었어요.”

<강약사의 남다른 한약사랑>

이후 강 약사는 동대문 지역을 거쳐 87년 지금의 강남 대청역 인근으로 약국을 옮겼다.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90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생약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공부해야 해요. 매일 같이 새로운 연구결과가 쏟아지고 신약이 개발되고 하니까요. 특히 10년 넘게 양약을 위주로 약국을 경영하다 보니 어느 정도 한계를 보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자연에 가까워 인체에 부담이 적고 만성질환에 유리한 생약으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학부 시절 상대적으로 생약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한 것 같아 항상 아쉬움도 갖고 있었구요.”

그렇게 95년 강 약사는 박사과정을 마치고 약국 경영에 본격적으로 한약을 접목시켰다.

근무약사에게 처방 조제 및 일반약 판매 관리를 맡기고 자신은 상담실을 두고 한약을 위시로 한 환자의 건강 상담을 담당했다.

이처럼 업무가 효과적으로 분담되자 일의 능률도 오르고 환자들에게는 전문성이 있는 약국이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었다.

이렇게 한약에 대한 지대한 애정과 실력이 주위에 전해져 강 약사는 지난 2000년도엔 대한약사회 한약위원장을 맡게 됐다.

강 약사는 한의사들과의 조제권분쟁 후 약사들이 한약을 다루기 위해선 시험을 치러야 하게 됨에 따라 약사회 차원에서 마련한 교육 스케줄을 조정하고 직접 강의에도 나서는 등 많은 활동을 벌였다.

<환갑에 움튼 나눔의 기쁨>

나아가 강 약사는 오래전부터 약사생약연구회를 통해 만난 동료 약사들과 뜻을 모아 국내 최초인 온누리 약국 체인의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대학원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약사생약연구회를 통해 관심사가 비슷한 여러 약사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한약에 대한 공부는 물론 사회 속에서의 약사의 역할, 약국의 발전적인 모습 등 온갖 얘기들을 함께 나눴죠. 온누리 박영순 회장도 당시 멤버였는데 동료 약사들과 함께 약국이 보다 전문성과 편이성을 갖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 체계를 갖고 선별된 의약품이 취급돼야 한다는 점 등에서 뜻을 함께 했죠.”

이러한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져 현재 강 약사는 온누리 체인에 가입한 개국약사들의 모임인 ‘온누리약사복지회’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모임은 해마다 일정금액의 회비를 걷어 이를 노인을 위한 지팡이 지원사업, 청소년 장학금, 외국인 근로자 무료투약 등에 쓰며 약사로서 얻은 이익을 사회로 환원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 일을 맡으며 봉사의 기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는 강 약사는 앞날의 가장 큰 계획으로도 이를 꼽았다.

“부회장을 맡으며 전체적인 운영과 사업비 집행에 관여했을 뿐 봉사가 직접 이뤄지는 현장에는 많이 가보지 못한 것 같아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이 사라진다면 보다 개인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고 싶습니다. 약국이요? 힘이 닫는 데 까지 하겠지만 보다 큰 봉사를 생각할 나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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