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 한국화학연구원 이선경 박사(서울대 약학과, 80학번)가 이번 인터뷰 대상자로 동아제약 연구소에서 천연물을 소재로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손미원 박사(서울대 제약학과, 80학번)을 추천했다.

<자연에서 태어나는 의약품>

신약과 천연물이라는 언뜻 섞이기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천연물신약.

손미원 박사는 현재 동아제약 연구본부 신약연구부에서 자연 그대로의 것을 끌어와 효능과 효과가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양약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인 40~50년대에만 해도 대부분의 의약품들은 자연에서 소재를 찾았습니다. 선조들의 오랜 지혜가 녹아 있는 전통한의학과 맥락을 같이하는 약들이죠. 그러다가 서구의 약이 유입되면서 80년대 말까지는 화학물이 기반이 된 의약품이 대세를 이뤘죠.”

그러한 화학의약품들은 작용기전 연구가 명확해 약효는 커졌지만 인공적인 물질인 만큼 부작용도 비례해 커졌다는 것이 손 박사의 설명이다.

더불어 손 박사는 ‘웰빙 문화’ 등에서 보이듯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제약업계도 약물의 효과를 키우기 보다는 독성을 줄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동아제약은 천연물의약품이 국제경재력을 갖출 수 있는 무기라는 생각에 그녀의 연구 개발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자연의 오묘함이 깃들어 있는 천연 의약품이 만들어질까?

“천연물 하나에는 수천 개의 일반 화학의약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성분들이 함유돼 있습니다. 이중에는 약효가 있는 성분, 약효에 반대되는 성분, 나아가서 독성을 지니고 있어 흡수해서는 안 되는 성분이 있을 수 있는 것이죠. 이들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 어떤 성분을 강화하고 제거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천연물 의약품 연구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천연물신약은 자연을 젖줄로 태어나기 때문에 피치 못할 어려움이 따른다. 바로 연구 단계부터 자연의 예측불허 함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연물 의약 개발이 어려운 까닭은 원료규격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예요. 화학약의 경우 인위적으로 함량이나 구조 등을 조절해 약물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원료를 만들어 낼 수가 있죠. 하지만 자연이 원료인 천연물신약은 이러한 과정이 불가능하죠. 같은 버드나무인데 해마다 아스피린 함량은 달라지거든요. 무엇보다 원료를 예측하고 규격화하는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손 박사와 천연물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 동아제약의 첫 천연물신약 ‘스티렌’이다.

스티렌은 민간에서 널리 사용되던 쑥에서 추출한 생약성분으로 만든 위염치료제로 출시 7년 만에 지난해 매출 700억을 내다보는 회사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또한, 손 박사는 동아제약에서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의 후보도출 작업을 총괄하기도 했다.

후보도출은 전임상연구에 돌입하기 전의 과정으로 천연물에 함유된 수많은 성분 중 사용 목적에 맞고 독성이 없는 물질을 분리해 내는 작업이다.

<연구원 생활은 딱 맞는 맞춤옷>

현재 손 박사는 1~2년 사이에 발매를 앞두고 있는 동아제약의 세 번째 천연물신약을 개발 중이다.

“아직 원료를 공개할 단계는 아니지만 복합적인 효과가 큰 위장운동 촉진제를 개발 중에 있습니다. 현재 삼상에 들어간 상황인데요, 제품이 성공적으로 발매되면 그동안 단순 소화제로는 치료가 어려웠던 만성 질환자에게 큰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거예요. 또, 생약성분이 주원료라 위배출, 위순응, 위의 운동성 부족 등 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환을 한꺼번에 잡아 낼 수 있는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91년 졸업과 동시에 입사한 후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켜오면서도 손 박사는 오랜 연구원 생활이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우리 같은 연구원들에게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창출해 내는 일이예요. 또, 매일 매일 보고 배우는 것이 많은 것도 이 일의 매력이죠. 사회인이 되어서도 학문적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해 가며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성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입사한 동료들 중에 스트레스로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른 직역보다 더더욱 결과물이 명확히 드러나 보이는 세계이기 때문이죠. 남과 비교해 위축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다면 이 일을 계속해 나가기는 힘들 것 같아요.”

손하늘에서 내린 옷처럼 연구원 생활이 몸에 착 붙는다는 손 박사. 그는 특히 연구 실험을 통해 잠정적으로 내렸던 결론이 결과와 맞아 떨어지면 더 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국내 천연물신약의 위상과 가능성을 보다 널리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개발 기간이 길고 제품화 과정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그동안 천연물의약품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왔어요. 하지만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유효성보다는 안전성에서 유리한 천연물신약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천연물신약에 보다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 일에 보다 열심히 뛰어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