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릴레이 인터뷰의 주인공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계정 박사(서울대 제약학과·80학번)가 다음 인터뷰 대상자로 한국화학연구원 이선경 박사(서울대 약학과·80학번)을 추천했다.
 

최근 한국화학연구원 의약화학연구센터장에 임명된 이선경 박사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빛이 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이는 단지 그가 이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여성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제약산업과 신약개발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와 주위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 넣어주기 때문이다.

‘꿈을 밀고나가는 힘은 두뇌가 아닌 심장이다’라는 말이 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여야 한다는 말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을 법도 하지만 이선경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이 말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와닿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대학 졸업후 대학원을 진학한 이 박사는 한학기 만에 돌연 학업을 접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웃으며 “공부가 재미없었다”고 말했지만 공부를 할 거면 발전이 더딘 국내보다 선진국에서 해야겠다는 마음이 그를 이끌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시작한 첫 직장에서 2년을 근무했고, 결혼 후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2년을 함께했다. 두 번째 아이를 출산한 이듬해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를 부모님 손에 맡겨 놓고, 남편과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뜨거운 열정이 없었다면 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지금의 한국화학연구원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거친 이선경 박사는 스스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마침 기회가 생겨요. 취업을 원했을 땐 대기업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고, 유학을 간 미국에서는 남편과 떨어지지 않고 같은 대학에 입학하는 행운을 누렸죠. 한국에 돌아온 98년도에는 IMF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불구하고 바로 화학연구원에서 근무할 수 있었어요. 또한 연구원으로 활동할 수 있던 지난 시절이 있었기에 현재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러하니 어찌 운이 좋다고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가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모를리 만무하지만 그의 긍정성이, 겸손함이 그를 더욱 빛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화학연구원 신물질연구단 산하 의약품화학연구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는 의약화학, 약효, 물성, 독성 등의 최적화 연구를 바탕으로 특징 및 장점 있는 후보물질개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그에게 제약기술에 대해 묻자, 우리나라 제약산업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한다.

이선경 박사가 첫 번째로 지적한 한국 제약산업의 한계는 ‘어디를 둘러보나 똑같은 제약사의 경영방침’과 ‘정보의 비공유’.

“같은 분야에서 경영방침이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각자가 가진 특장점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물리적 통합이 아닌 연대형식의 M&A를 이뤄 각자의 파이를 키우고, Win-Win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약산업에 있어 정보의 평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정보는 공유해야 하는 것이지 독점되어서는 안됩니다. 각 회사마다 정보를 감싸 쥐고 있는 것은 한국 제약산업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 때문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죠. 정보의 공유는 한국 제약산업과 신약개발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이 박사는 덧붙여 취약한 제약기업의 구조가 한국제약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제약산업은 불과 10년전과 비교해도 놀라울 정도로 발달됐어요. 하지만 아직도 제약기업의 구조는 취약한 편입니다. 대부분 제약사의 주력제품이 기업당 한두개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예요. 제약사마다 이들 제품에 의존해 한품목이 급여에서 빠지기만 해도 경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제약사의 취약한 제품구성은 제약사의 존립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이 제약사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