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이 가진 옛날 이름 중에 ‘임영臨瀛’이란 게 있다. 글자 그대로 ‘바다에 임하여 있다’라는 뜻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임하여 있는 고장은 한 둘이 아닐 터인데 강릉은 무엇이 남달라 이런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확실히 강릉의 바다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여느 고장의 바다가 자연 경관인 바다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면, 강릉의 바다는 그 절반쯤은 그 곳에 서린 사람의 숨결로 인해 더욱 아름답다. 이를테면 강릉과 크고 작은 인연을 맺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 그리고 강릉의 아름다운 바다를 동경한 숱한 시인묵객詩人墨客의 작품 속에서 강릉의 바다는 더욱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강릉의 바다는 이렇게 사람의 흔적과 이야기가 있어 아름답다.

경포해변을 향해 가는 길과 그 언저리에서 우리는 율곡 이이와 사임당 신씨, 매월당 김시습과 교산 허균, 난설헌 허초희 남매의 체취와 만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경포 바다와 호수를 벗 삼아 지어진 수많은 가옥과 정자도 만난다. 그 모두가 강릉의 바다를 유난히 아름답게 하고, 강릉을 ‘바다에 임하여 있는 고장’으로 만든 공로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경포 호수를 마주보고 앉은 ‘고래등 같은’ 옛 집 선교장은 특별히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선교장을 처음 만난 것은 한 여행잡지의 햇병아리 기자로 일하던 1986년경의 가을이었다.
앞쪽으로는 경포호수의 정경이 아스라이 펼쳐지고, 뒤 쪽으로는 낮으막한 산언덕이 포근히 둘러싼 가운데 수묵화에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림 같은 노송군락이 기와지붕 뒤로 솟아있는 명당 터에 장중하면서도 산뜻하게 앉아있는 거대한 기와 가옥의 멋진 모습이란...

20여년의 세월은 그 고즈넉하고 한적한 가옥을 늘상 사람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강릉의 으뜸가는 명소로 만들어 놓았지만, 그 잊을 수 없는 운치와 그림 같은 자태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세손으로 조선 후기에 살았던 선비 이내번(李乃蕃 1703∼1781)이 처음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다. 경포 바다 가까운 곳에 집 지을 터를 고르던 중 느닷없이 나타난 족제비 무리를 따라가다 발견한 명당 터에 처음 지은 후, 서너 번의 증축을 거치며 장장 9대 250여년 이상을 이어온 집이다.

총 대지는 3만평을 넘고, 건물은 사랑채와 안채를 포함 10여동이나 된다. 한옥의 규모를 말할 때 쓰는 단위인 ‘간’(間)으로 표현하면 선교장 가옥의 칸수는 120칸에 이른다. 흔히 가장 큰 민가를 표현할 때 쓰는 상징적인 용어가 ‘아흔아홉칸집’인 것을 생각한다면 선교장이 얼마나 고래등같은 집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전통 사대부 가옥이 그러하듯, 선교장 역시 바깥주인이 주로 머무는 사랑채와 안주인의 생활공간인 안채, 그리고 별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 바깥으로는 운동장처럼 넓은 뜨락이 있고 뜨락 오른쪽으로는 온갖 초화와 연꽃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연지와 연지에 접해 있는 누각인 ‘활래정’이 있다. 연꽃이 만개한 여름 활래정의 풍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장관이다.

선교장은 여느 전통가옥에 비해 가로로 길게 이어진 것이 큰 특징이다. 이것은 행랑채가 무척이나 크다는 걸 의미하는데, 실제로 선교장의 행랑채는 무려 23칸이나 된다. 길게 이어진 행랑채가 주는 깊은 원근감도 선교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멋이다. 행랑채와 마주보고 있는 사랑채인 ‘열화당’도 활래정과 함께 선교장에서 가장 이름 난 건물 중의 하나이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함의 미학’이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사대부 가옥 사랑채의 백미라 할만한 건물이다.

대부분의 옛 가옥이 단아하고 짜임새가 있으면 규모가 좀 작은 듯하고, 규모가 크면 뭔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선교장은 큰 규모에도 불구하고 격조와 짜임새, 운치와 실용성을 두루 갖춘 아름다운 옛 집이다.

글·사진/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