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생존일 뿐이었던 먼 선사시대에도 예술이란 것이 존재했을까? 지금으로부터 3~4만년 전에 살았다는 대표적인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이 남겼다는 그 유명한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만 해도 그렇다. 그것이 감상을 위한 예술이었다면, 횃불이라도 켜들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구석 가장 외진 곳에 그림을 그려 놓았을 리가 있겠는가.

아마도 그들은 사냥을 떠나기 전, 이왕이면 여러 날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들소 한 마리를 잡길 기원하며 정성껏 그림을 그리고 벽에 그린 들소를 향해 창을 던지며 경건한 의식을 치렀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 훌륭한 그림은 예술이 아니라 생존의 또 다른 양식이었던 셈이다. 원시예술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원시예술의 가장 대표적인 흔적을 꼽자면 아마도 ‘암각화’를 꼽아야 할 것이다. 암각화는 현재 우리나라 몇몇 곳에 남아 전하는데,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암각화가 바로 울산시 울주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이다. 이 유적이 있는 곳은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태화강 줄기가 산 속 깊숙이 치고 들어와 이루어 놓은 대곡천이라는 물가의 절벽이다. 이 절벽을 반구대라고 부르는데, 이 때문에 암각화의 이름도 ‘반구대암각화’라고 불린다.

반구대로 가는 길은 제법 외진 산길이다. 반구대 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암각화전시관 부근에 차를 대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은 여기서도 아주 한참을 걸어가야 반구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반구대로 가는 길은 정겹고 호젓한 산길이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의 풍경이 아름답고, 특히 사람의 발길이 그리 많이 닿지 않은 듯한 호젓함과 고요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반구대 입구에서 나무로 만든 다리를 건너가면 그때부터 산 허리를 휘감고 흐르는 태화강의 줄기인 대곡천의 풍경을 옆으로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산중을 흐르는 강변의 풍경은 이색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제법 먼 길이 결코 멀지 않게 느껴지는 멋진 길이다.

마침내 반구대 앞에 이르른다. 앞으로는 여전히 푸른 강물이 흐르고 건너편 산에는 수직에 가깝게 깎여진 암벽이 있다. 그 암벽의 가장 평평한 부분이 바로 원시인들이 그림을 새긴 캔버스이다. 혹 암각화가 없더라도 충분히 찾아와 완상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런데 그 암벽에 금쪽같은 선사시대의 흔적까지 남아있으니 가히 금상첨화라 할 만하다.

물가에는 건너편 암벽에 새겨진 그림을 잘 볼 수 있도록 고배율 망원경을 설치해 놓았다. 성능이 우수해 그 망원경을 통해 보면 암각화의 그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찬다.

감상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 질서 있게 그림이 배열된 것도 아니고 많은 부분 세월에 의해 훼손되어 정확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지만, 벽에 새겨져 있는 그림은 대부분 동물의 그림이다. 육지동물로는 호랑이, 멧돼지, 사슴 등이 그려져 있고, 바다 동물은 주로 고래가 그려져 있다. 그냥 그려진 것도 있지만, 창이나 작살에 맞거나 그물에 걸린 모습을 한 것도 있다. 또한 자신들이 사냥을 하는 장면을 그린 것도 있다. 이런 저런 그림을 모두 합치면 바위 위에 새겨진 동물의 그림은 총 75종에 200여점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그림은 어느 한 시기에 한꺼번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실로 수 천 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이곳 암벽에 자신들이 잡고 싶은 동물들의 모양을 새기고 사냥을 떠나기 전 그 앞에서 어떤 의식 같은 것을 치렀을 것이다. 암각화에 그려진 온갖 동물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아주 소중한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 아득한 시절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남긴 그림이 수 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낯선 후손들에 의해 이렇게 망원경을 통해 ‘관찰’될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역사 앞에 선’ 감회가 자못 남다르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