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⑨

의성탑리 오층석탑

지난 봄, 경상북도 안동 지방 출장길에 어렵게 시간을 내서 일연스님의 체취가 서린 고찰 군위 인각사지에 들렀다가 서울로 올라오던 중, 마치 두고 온 물건을 찾으러 가듯 황급히 차를 돌려 의성 탑리로 향한 일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의성탑리오층석탑’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생각해 보니 ‘안동-의성-군위’로 이어지는 코스는 옛날 대학시절 3학년 봄 답사의 코스였던 것 같았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게다가 안동은 그 이후에도 몇 번 갈 기회가 있었지만 군위와 의성은 그 때 이후 갈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군위삼존석불과 의성탑리오층석탑과는 물경 25~26년만의 만남인 셈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감격스런 해후였겠는가. 다 늙어서 어린 시절 친구를 다시 만나듯 설레는 마음으로 인각사지를 돌아보고 삼존석불을 만났다.

완전히 행락지가 돼버린 군위삼존석불 근처는 桑田碧海를 실감할 만했지만 뜻밖에 의성 탑리의 풍경은 생각만큼 많이 변하지 않았다. 고즈넉한 시골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오층석탑은 전형적인 시골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찬 마을 복판, 옛 초등학교 자리로 추정되는 공터의 높직한 언덕에 저녁햇살을 받으며 참 쓸쓸하고 고독하게 서 있었다. 탑 주위를 둘러친 철제 울타리는 낡았고 근처를 서성이는 사람조차 한 명 없었다. 보물도 아닌, 명색 ‘국보 77호’라는 월계관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의성탑리오층석탑의 가장 큰 가치는 우리나라의 탑파 특히 신라의 탑이 전탑 양식에서 석탑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양식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신라 탑의 역사는 중국의 벽돌탑(塼塔)을 본받은 ‘모전석탑’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 삼국통일을 이룩하면서 스스로 확립한 모전석탑의 전통에 백제가 완성한 화강암 석탑의 양식을 절충한 새로운 탑의 형태를 모색하게 된다. 이를테면 전탑을 모방한 신라탑과 목탑을 모방한 백제탑이 양식상의 절충을 통해 제3의 양식을 창조하게 됐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바로 이 의성탑리오층석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탑리오층석탑에서는 전탑의 특징과 목탑의 특징이 다같이 발견된다.

탑의 외양을 보면 1층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이 올라앉아있고 1층의 몸돌에는 ‘감실’이라 불리는 큼직한 공간이 확보돼 있다. 이 감실은 불상 등을 안치하는 공간으로 분황사모전석탑에서 보듯 전탑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옥개석은 위아래 모두 계단 모양의 층급으로 돼 있다. 이 또한 전탑의 잔재이다. 반면 기단과 1층 탑신에는 목조탑의 기둥을 간략화한 우주와 탱주가 표현돼 있고 특히 모서리 기둥에 해당되는 초층의 우주는 무량수전과 같은 목조건물의 기둥에서 볼 수 있는 배흘림수법(entasis)까지 표현돼 있다. 그리고 우주의 꼭대기에 목조기둥의 끝에 올라앉아있는 주두(柱頭)가 조각돼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목조탑과 목조탑의 전통을 이어받은 백제계 석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탑은 분황사모전석탑에서 이 탑리오층석탑을 거쳐 신라탑의 정형이 된 감은사지삼층석탑으로 이어진다. 쉽게 말해 신라탑의 계보는 ‘분황사모전석탑→의성탑리오층석탑→감은사지삼층석탑→불국사석가탑’으로 이어지며 완성된다. 이처럼 의성탑리오층석탑은 신라탑, 더 나아가 우리나라 석탑의 계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절터조차 남아있지 않은 휑한 공터에 홀로 서 있다보니 국보급 문화재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예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탑리오층석탑과 가까이에 있는 또 다른 문화유산으로는 멀리 삼한시대 小國의 하나였던 조문국의 임금 경덕왕의 능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조문국은 서기 185년 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복속됐다고 한다. 이곳 탑리리 일대는 그 당시 조문국의 도읍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는 경덕왕릉 이외에 약 40여기의 고분이 흩어져 있다. 현재는 이 일대가 드넓은 고분공원으로 가꾸어지고 있어 의성의 또 다른 명소가 될 전망이다.

사실 필자 역시 최근까지도 ‘조문국’이라는 소국이나 ‘경덕왕릉’의 존재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었다. 그런 점에서 25년여 만에 다시 찾은 의성탑리오층석탑은 대단히 많은 것을 선물해 준 셈이다. 의성 언저리를 지날 일이 있으면 꼭 한번 들러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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