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⑦

태백산맥의 중심부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차령산맥을 이루며 서쪽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지점의 첫머리에 우뚝 솟아있는 오대산은 설악산, 지리산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답고 친근한 산이다.

그런데 이 오대산이 지극히 불교적인 정신과 내력을 간직한 산이라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본래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에 있는 명산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청량산이라고 불린다. 이 산은 불교의 여러 보살 중 지혜의 化身으로 불리는 그 유명한 ‘문수보살’이 거하는 곳이라고 전해지던 곳이다. 서기 636년 경,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신라의 명승 자장율사는 이 산에서 수행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그때 문수보살이 자장율사에게 말한다.
“너희 나라 동북방에도 一萬의 내가 상주하고 있으니 그 곳에서 다시 나를 만나자”

이 말을 듣고 귀국한 자장율사는 우리나라의 오대산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는 수려한 산이 중국의 오대산과 너무나 흡사하다고 여겨 이 산을 오대산이라 이름짓고 그곳에 초막을 짓고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수도에 정진한다.

지금의 이름 오대산은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오대산의 정상인 해발 1,563m인 ‘비로봉’도 사실은 대승불교 최고의 경전인 화엄경의 主佛이자 끝없는 光明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오대산은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을 이어지는 광대무변한 화엄의 공간인 셈이다.

이 오대산에 있는 가장 유명한 사찰이 바로 월정사이다. 월정사는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때인 서기 634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서 문수보살을 다시 보기를 고대하며 수도에 정진하던 자장율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입적하지만 이후 오대산 월정사는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본산으로 명찰로서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가게 된다. 자장율사 이후 수많은 고승대덕이 이곳에서 배출됐으며 그러한 전통은 근대의 기라성 같은 名僧 한암선사, 탄허스님으로 이어진다.

또 수많은 국보급 유물을 간직한 불교문화의 보고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차례의 화재로 많은 유물이 유실된데다 결정적으로 6.25 전쟁 통에 전설적으로 전해지던 ‘칠불보전’을 비롯 영산전, 광응전, 진영각 등 17동의 건물이 모두 불타고 소장 문화재와 사료들도 모두 재가 되어버리는 비운을 겪게 된다. 결국 불에 타지 않는 너댓점의 문화재만 남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 이제 소개하고자 하는 국보 48호 ‘월정사8각9층탑’이다. 월정사의 법당인 ‘적광전’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이 탑은 우선 주변의 산세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자태가 일품이다.

‘8각 9층’이라는 수식어가 암시하듯 이 탑은 ‘4각’을 기본 형태로 하고 있는 ‘일반형 석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8각 모양의 2층 기단 위에 9층 의 탑신을 올린 뒤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 모습이다. 일반적인 석탑이 위층으로 올라 갈수록 급격히 줄어드는 모습과 달리 2층 탑신부터 거의 같은 높이를 유지하고 있어 안정감과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일반형 석탑에서는 지붕돌은 밑면에 5개의 계단 모양의 받침을 두었으나 이 탑에서는 부드러운 2단의 곡선으로 마무리했다. 지붕돌 위로는 상륜부라고 불리는 머리장식이 완벽하게 남아 있다. 아랫부분은 돌로, 윗부분은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이 화려함과 우아함을 뽐내고 있다.

통일신라 초기에 완성된 일반형 석탑 양식은 신라 말기에 이르러 장식적인 요소가 강해지면서 점차 화려하게 변형되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북쪽 지방을 중심으로 ‘4각 3층’의 공식을 벗어난 다각형의 다층석탑이 선보이게 되는데 바로 이 월정사8각9층석탑이 그렇듯 새롭게 변형된 고려 초의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탑이다. 고려사회의 지배층이었던 문벌귀족 세력의 화려하고 사치스런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석탑이다. 보통 탑은 사찰의 건립과 동시에 조성되는 것이 보통이어서 이 탑을 신라 탑으로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월정사는 암자인 상원사와 함께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매우 친근한 명소이다. 물론 그 수려하고 아름다운 풍광 때문이다. 특히 월정사의 일주문에서 사찰의 입구까지 약 1.2k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은 보성 차밭의 삼나무숲길,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 담양의 메타쉐콰이어길과 함께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아름드리나무 산책길로 유명하다. 사계절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정말 시원하고 아름다운 숲 속 길이다.

▲월정사8각9층탑(출처: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