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⑥

우리가 흔히 ‘삼국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절, 고구려·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벌였던 싸움은 궁극적으로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싸움이었다. 국토의 중앙을 흐르는 한강 언저리는 나라 전체를 종횡으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일 뿐만 아니라 서해의 뱃길을 통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길목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차지하는 것은 나라 발전의 가장 중요한 땅을 손에 넣는 일이자 삼국간의 싸움에서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 한강 유역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한강 줄기를 끼고 있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 일원이다. 이 지역은 다른 말로 ‘중원中原’이라고 불렸다. 문자 그대로 국토의 중심부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지역에 형성된 문화권, 이른바 중원문화권은 고대 삼국문화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 문화유적 벨트라는 점에서 역사문화 기행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코스 중의 하나다. 이를테면 고대 삼국이 서로 뺏고 빼앗기는 접전을 거듭했던 지역인 만큼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의 문화적 흔적들이 섞여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인 것이다.

오늘날 충주는 흔히 육지 속의 바다라고 불리는 충주호를 비롯, 휴양도시 수안보, 국립공원 월악산의 일부를 품에 안고 있는 중부권 최고의 관광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그러므로 비단 문화재 기행이 아니더라도 충주는 조용한 가족여행이나 휴양여행으로 꼭 다녀갈 만한 고장이다. 그리고 만약 이런 저런 이유로 충주를 찾았다면 앞서 말했듯 고대 삼국의 문화적 접점인 중원문화권을 대표하는 몇몇 유적은 꼭 만나고 가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중원문화권을 대표하는 유적으로는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유적은 충주시 가금면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와 ‘탑평리칠층석탑’이다. 앞의 것은 남한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고구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뒤엣것은 백제의 옛 땅에 남아있는 웅장한 규모의 신라탑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중원고구려비는 고구려의 전성기였던 5세기 무렵, 위대한 정복왕 광개토왕과 장수왕대에 걸쳐 백제의 영토였던 한강 유역의 여러 성들을 점령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서기 5세기경 이 땅이 고구려의 점령 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

한편 탑평리칠층석탑은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일반형 석탑’의 양식을 기본으로 옛 백제의 땅에 세운 거대한 탑이다. 현재 이 탑이 서 있는 곳은 남한강 줄기가 유장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강변으로 그 일대가 넓은 잔디밭과 조각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충주박물관, 술 박물관 등 충주시가 자랑하는 주요 박물관들이 들어서 있다. 강변에서는 갖가지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고 공원 내에는 호화로운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다. 탑이 아니더라도 충주에 왔으면 반드시 들러야할 명소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명소의 복판에 자리한 탑평리칠층석탑은 보통 중원탑평리칠층석탑, 혹은 국토의 중앙에 있다 해서 ‘중앙탑’이라고 불린다.

앞서 말했듯 이 탑은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세워진 석탑으로 전체적인 형식은 경주의 감은사 탑을 거쳐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완성된 ‘일반형 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여러 곳에서 양식의 변화가 감지되는 과도기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탑의 크기가 압도적이다. 일반형 석탑의 경우 표준 층수는 3층이고 후대에 나타난 탑도 5층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탑은 7층이다. 이러한 층수와 높이는 현재 남아있는 신라 탑 중에서는 가장 높은 것이다.

세부 수법에 있어서도 석가탑 등 통일 초기의 탑에 비하면 변화와 퇴조의 빛이 역력하다. 우선 강건하고 반듯한 균형의 미가 흐트러져 전체적으로 섬약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7층씩이나 되는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 지나치게 가늘고 높아 안정감이 덜하다.

석가탑에서 절정에 이른 신라탑의 정형양식은 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양식의 변화가 시작되는데 이 탑은 일반형 석탑의 변화를 예고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 시대적 의미로 인해 국보 제6호로 지정돼 있다.

아마도 이 탑은 사찰이 아닌 곳에서 볼 수 있는 탑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곳에 서 있는 석탑일 것이다. 탑을 둘러본 뒤 아름다운 강변을 산책하다 보면 유장하게 흐르는 남한강 푸른 물을 굽어보며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웅장한 석탑의 속뜻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도 같다.

글/서조(여행작가)

▲중원탑평리7층석탑(출처: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