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⑤

지난 호까지 우리는 백제와 신라 두 나라에서 각각 중국의 목조탑과 벽돌탑을 텍스트로 양식상의 실험이 계속되던 우리나라의 석탑이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계기로 절충을 이뤄 마침내 경주 감은사지3층석탑에 이르러 전형적 양식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봤다. 감은사지3층석탑에서 완성된 한국 석탑의 양식상 특징을 요약하자면 2층의 높직한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얹은 형태에다 기단과 탑신에는 목조건물의 기둥에 해당되는 우주와 탱주를 양각으로 새겼다. 또 날렵한 기와지붕의 형태를 따른 옥개석 밑에는 5개 층급의 각을 이룬 계단 모양의 옥개받침을 새겼다. 그래서 이런 특징들을 갖추고 있는 탑들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탑의 양식이라 해서 ‘일반형 석탑’ 혹은 ‘정형석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감은사 동서 쌍탑에서 확립된 양식은 이후 더욱 세련된 형태로 가다듬어져 미학적으로 한결 원숙하고 뛰어난 작품을 창조하게 되는데 정형석탑의 양식미가 절정에 이른 최고의 걸작이 그 유명한 불국사의 석가탑이다.

불국사는 아마도 우리나라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찰일 것이다. 평지에 지어진 황룡사 등의 거찰에 비하면 규모는 대단한 편이 못되지만 불경에 묘사된 극락, 즉 불국토의 형상을 조형적으로 재현하려한 세련되고 아름다운 건축미는 가히 우리나라 전통 예술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통일신라의 예술의 난숙기인 8세기의 예술 감각을 대표하는 걸작이기도 한 불국사는 감은사의 전통을 이은 남북선상의 쌍탑식 가람배치를 기본으로 자신감 넘치는 갖가지 창의적인 조형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 중의 하나가 사찰의 중앙에 동서로 자리 잡은 2기의 탑인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법당을 향해 바라보았을 때, 왼쪽의 탑이 석가탑이고 오른쪽의 탑이 다보탑이다. 이 두기의 탑은 모두 한국 석탑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뛰어난 조형물이다. 석가탑이 감은사에서 완성된 이른바 ‘일반형 석탑’의 최고 걸작이라면 다보탑은 일반형 탑과는 다른 계보로 발전해온 이른바 ‘異形塔’의 최고봉이다. 우리나라 석탑의 2대 양식의 정점을 이루는 보물이 한 장소에 나란히 서 있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감은사의 경우에서 보듯 법당 앞에 나란히 서 있는 2기의 탑은 모양이 쌍둥이처럼 같고 그 둘을 구별하는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고작 東塔, 西塔 정도로 부를 뿐이다. 그러나 불국사의 경우는 2기의 탑이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뿐더러 별도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탑의 이름인 ‘석가’와 ‘다보’는 둘 다 불경에 나오는 부처의 이름으로 두 탑은 두 분의 부처를 상징하고 있다.

석가여래가 대중에게 설법을 하고 있는데 다보여래가 나타나 설법의 옳음을 증명하며 그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앉혔다는 불경의 내용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불상에도 두 분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있는 형식이 있는데 이것을 두 부처가 나란히 앉아있는 형상이라 해서 ‘이불병좌(二佛竝坐)상’이라고 부른다. 다보탑과 석가탑의 이름은 물론 그 배치 또한 바로 이러한 불경의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기의 석탑 중 다보탑은 앞서 말했듯 일반형의 계보에서 벗어난 ‘이형탑’의 걸작이다. 이형탑파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우선 왼쪽에 있는 석가탑을 주의해서 보자.

석가탑은 형식에 있어서는 감은사탑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2층의 기단과 3층의 탑신, 5개의 옥개받침, 一자형에 가까우면서 살짝 반전된 옥개의 단면 등 모든 형식이 감은사탑과 같다. 그러나 우선 크기가 대폭 축소됐고 경쾌한 질감, 적절한 체감비율에서 오는 완벽한 균형미 등 전체적인 면에서 훨씬 우수한 조형미를 과시하고 있다.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原型이었던 목조탑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롭게 탄생한 석탑 나름의 양식을 가장 세련된 형태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석탑 중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걸작이다.

경주에 갔을 때 불국사를 들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위대한 예술품 앞에서 그저 사진 찍기에만 바쁠 뿐 그 면면을 자세히 살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무관심 앞에서는 천하의 걸작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다시 경주를 찾을 일이 있어 불국사에 간다면 이젠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석가탑을 살필 일이다. (계속)

글/유정서(여행작가)

▲사진:불국사삼층석탑(출처: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