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③

지난 호까지 우리는 한국에 전해진 중국의 목조탑이 뛰어난 백제의 장인들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재료, 즉 석탑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그렇게 될 때까지 신라에서는 아무런 새로운 시도도 없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신라 또한 새로운 재료에 대한 시험에 나서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라의 경우는 과연 어땠을까. 이제 백제탑의 이야기에 이어 한국 탑의 주류를 이루는 신라의 탑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현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백제의 탑은 당분간은 볼 수 없는 ‘미륵사지탑’을 포함, 모두 2기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해 신라의 탑은 엄청나게 그 숫자가 많다. 통일을 이룬 후 불교는 더욱 융성했고 이미 양식이 완성된 석탑이 신라 땅 전역에 수도 없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가장 많고 우수한 탑이 세워진 곳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신라의 서울 경주다. 그렇다면 경주에 있는 탑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탑은 과연 무엇일까?

정답은 넓디넓은 황룡사 터 맞은편에 자리 잡은 분황사에 있는 거대한 모전석탑이다. 이 탑이 서 있는 분황사라는 절은 기록에 의해 삼국통일 이전인 선덕여왕 3년, 서기 634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古刹이다. 손꼽히는 명승 자장대사와 원효대사가 이곳에 머물었으며 특히 원효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금강삼매경론>과 <화엄경소>등을 여기서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절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문화재이지만 분황사의 명성을 더욱 높여준 것은 누가 뭐래도 그 안에 우뚝 서있는 거대한 탑이다.

이 탑은 언뜻 보아서는 수많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벽돌탑, 즉 塼塔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신라는 백제가 중국의 목조탑을 주목, 석재로 목조탑을 모방해 탑을 만든 것과는 달리 전탑을 주목해 전탑을 새로운 재료로 모방하려 했다. 이 탑은 벽돌탑이 아니라 안산암이라는 돌을 흡사 벽돌처럼 잘게 잘라 쌓은 석탑인 것이다. 그래서 ‘전탑을 模倣한 석탑’이라는 뜻으로 ‘模塼石塔’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 탑이 신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석탑이다.

돌을 벽돌처럼 잘라서 쌓는 것은 처음부터 벽돌을 구워내는 것보다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돌을 사용해 벽돌탑을 모방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벽돌로 지은 백제 무녕왕릉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경우 벽돌을 굽는 기술은 이미 삼국시태부터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후 모든 건축물에서 벽돌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아마도 벽돌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새로운 재료를 모색하고자 하는 창의성의 발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백제의 장인들이 목재로 짓는 것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석재로 목조탑을 모방한 것과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신라 또한 7세기 쯤에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우리만의 독자적인 탑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탑의 총 높이는 9.3m, 제일 넓은 탑신의 길이는 가로가 641cm이다. 그러나 현재 3층만 남아있는 탑의 총 층수는 체감비율로 보아 5층에서 7층으로 추정되므로 본래는 이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탑이었을 것이다.

현재의 모습은 크게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150cm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이 올라앉아 있고 1층 탑신의 사방에는 감실을 만들어 문을 해달고 문의 좌우에는 불법의 수호신인 인왕상(금강역사)를 새겨놓았다. 인왕상의 조각은 조각수법과 질감이 매우 뛰어난 편이다.

이 탑에 대한 인상은 훨씬 후대에 분황사를 찾은 조선조의 뛰어난 학자 김시습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싯귀에 잘 나타나 있다.
“우뚝한 돌탑 높기도 해라/우러러 볼 수는 있어도 오르기는 어렵네/층층이 봄 풀 자라나고 /이끼 꽃 피어났네”(원문 생략)

혹시 경주에 가서 석굴암, 불국사, 안압지, 대릉원 등의 유명한 명소만 둘러보고 터만 남은 황룡사나 비교적 외진 곳에 있는 분황사를 그냥 지나칠 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이제부터는 꼭 분황사를 들러보기 바란다. 가장 오래된 신라의 탑을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분황사와 그 앞에 휑한 공터로 남은 황룡사지는 사실 그 어떤 유명한 유적보다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고 있다. (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사진:분황사석탑(출처: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