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②

지난 호에는 인도에서 처음 불탑이 탄생, 그것이 불교의 전파와 함께 이웃 여러 나라로 전래되는 과정까지를 알아봤다. 거기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안치하는 장치로서 인도에서 탄생될 때는 보통의 무덤처럼 둥근 산소 형태였으나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파돼서는 중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과 결합, 다층누각 형태의 목조탑으로 거듭났다. 중국에서는 이와 함께 벽돌로 만든 塼塔도 많이 건축됐다.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나라는 이 목탑과 전탑, 두 가지 종류의 탑을 모두 받아들였는데 그 중 먼저 받아들인 것은 목조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우리나라 전역에는 수많은 목조탑들이 건립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슬기로운 우리의 조상들은 탑의 재료로서 나무 대신 우리 땅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돌, 그 중에서도 화강암을 주목하게 된다. 화강암을 이용, 새로운 탑을 짓겠다는 획기적인 생각을 해낸 것은 삼국 중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앞선 백제의 장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구상이 현실로 나타난 결과가 지난호에 사진으로 소개한 ‘익산 미륵사지탑’이다.

이 탑은 현재 남아있는 석탑 중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탑이자 한국 석탑의 원형으로 간주되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반쯤 무너진 형태로 일제 시대 때 시멘트로 땜질된 채 오래동안 버텨오다 지난 1997년 해체 복원작업에 들어가 현재까지도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 현재는 익산 미륵사지에 가더라도 그 웅장한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이 탑은 가장 초기에 지어진 석탑으로 마땅히 참고할 만한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목조탑의 형식을 그대로 본받은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재료만 돌을 사용했다 뿐이지 완전히 목조탑을 그대로 재현하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몸집은 多層樓閣 형태의 목조탑처럼 웅장하고 외양 또한 목조탑을 그대로 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뛰어난 조형감각을 지닌 백제의 장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목조탑을 그대로 베끼는 단계를 뛰어 넘어 돌이라는 재료가 지닌 특성을 잘 살린 새로운 석탑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른다. 이 결과 나타난 탑이 현재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 옛터에 남아있는 국보 제9호 ‘정림사지5층석탑’이다.

무엇보다도 이 탑은 목탑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 석탑 고유의 양식미를 창조하려는 백제 장인들의 예술적 고뇌의 흔적이 서린 걸작이다. 돌이라는 새로운 재질의 특성에 순응, 규모가 훨씬 작아지면서 목탑을 이루는 각종 부재들을 나름대로 생략, 상징하는 기법들을 사용해 목탑과는 전혀 다른 조형미를 창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안정감 있는 기단부, 얇고 넓어 경쾌한 느낌을 주는 옥개석(지붕돌), 그리고 상하층부 간의 적절한 체감비율 등 백제 장인들의 천재적인 조형감각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탑은 불교의 전래지인 중국이나 화려한 목조탑을 많이 세운 일본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창적인 탑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백제의 석탑은 이 이후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7세기 중반부터 몰아친 통일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가장 먼저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 그럴만한 겨를을 가지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 탑에서 확립된 석탑의 양식은 통일신라로 전해져 훗날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완성된 한국탑의 전형적인 양식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초석이 됐다.

이래서 현재 우리 땅에 남아있는 백제시대의 탑은 앞서 말한 익산미륵사지석탑과 이 정림사지5층석탑 단 2기 뿐이다. 그나마 하나는 현재 기약 없는 복원공사에 들어가 있으므로 우리가 현재 만날 수 있는 백제시대의 탑은 이 정림사지탑 하나뿐이다.

이 탑이 서 있는 정림사지는 백제의 고도인 충청남도 부여시의 중심가인 동남리의 한 복판에 있다. 평지에 세워진 백제시대의 평지가람으로 현재는 다른 전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오직 이 탑과 시대가 훨씬 내려오는 석조불상 1구만이 허허로운 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여에 있는 모든 유적과 유물을 통틀어 이 정림사지5층석탑에 비견될 만한 가치를 지닌 문화재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백제의 고도 부여를 찾았다면 3천 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약수로 이름 높은 고란사 등이 자리잡은 부소산 언저리만 구경하다 올 것이 아니라 산 밑으로 내려와 반드시 ‘정림사지’를 찾아 이 위대한 백제의 탑과 마주 설 일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정림사지에는 전혀 볼거리가 없었는데 이곳에 ‘정림사지박물관’이 세워져 축소 복원된 정림사지의 모형을 비롯, 백제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올 휴가를 이용, 어딘가를 지나는 길에 잠시 부여에 들러 백제의 옛 향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서조(여행작가)

<▲부여정림사지오층석탑, 출처 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