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의 탑을 찾아서 ①

우리가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자주, 그리고 쉽게 마주치는 문화유적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이 땅 곳곳에 서 있는 석탑, 즉 돌로 만든 탑일 것이다. 통계 숫자상으로도 땅에 고정되어 있는 문화유산 중 가장 많은 것이 석탑으로 집계돼 있다.

물론 그것은 불에 타거나 어지간해서는 부서지지 않는 재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만큼 많이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가리켜 흔히 ‘석탑의 나라’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지간한 절에는 모두 탑이 있고 절이 없는 산간 외딴 곳에도 탑은 고독하게 서 있다. 옛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탑을 세운 것일까? 그러나 정작 그토록 자주 탑을 만나는 우리들은 별 생각이나 감흥이 없는 것 같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우리가 탑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탑에 대해 안다면 말없이 서 있는 그 석탑은 참으로 재미있고 많은 사연을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는 우리나라의 석탑 중 많은 사연과 의미를 간직한 국보급 탑을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나보고자 한다. 어떤 이는 누가 탑 하나를 보러 여행을 떠날까 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이러한 테마 여행을 잘못 이해한데서 오는 오해다.

우선 석탑을 테마로 한다 하더라도 그 석탑이 서 있는 곳엔 다른 볼거리도 많고 그 인근에는 훌륭한 여행지 또한 많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자 하는 석탑은 하나의 기준일 뿐 결코 우리의 여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필자는 탑 여행을 하는 동안 탑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그 탑에 얽힌 옛 이야기, 그리고 탑을 중심으로 가 볼만한 인근의 볼거리와 명소들을 꼼꼼히 소개해 볼 것이다. 아마 이 여행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여행의 새로운 재미를 새삼 일깨워 줄 것이다.

우선 이번 호에는 본격적인 탑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탑에 대한 필수적이고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앞서 사찰 기행에서도 잠깐 언급한 바 있듯이 탑은 일차적으로 석가모니가 입적한 후 그의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身骨을 봉안하기 위한 장치이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신골을 안치한 일종의 ‘무덤’인 셈이다. 그러므로 탑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부처의 신골을 안치하기 위한 장치이다. 사리가 없으면 그것은 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도에서 처음 선보인 佛塔은 흔히 볼 수 있는 둥그런 산소 형태의 조형물이었다. 이런 원시적 형태의 탑은 아직도 인도에 남아있는 ‘산치탑’ 등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후 불교가 널리 퍼져 부처에 대한 신앙심이 깊어지자 여기저기서 부처의 신골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기를 원했고 그 결과 신골은 인도 전역은 물론 불교가 전파된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게 됐다. 부처의 신골은 흔히 ‘사리’라는 말로 불린다. 어쨌든 그렇게 퍼져나간 신골을 정성스레 모시기 위해 여러 나라에도 제각기 탑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탑들에 모두 신골이 안치되어 있는 것일까? 석가모니가 수퍼맨이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그럴 수는 없다. 대부분의 탑은 진짜 사리 대신 호박이나 마노와 같은 보석, 혹은 불경을 베낀 寫經이나 작은 탑, 심지어는 깨끗하게 씻은 모래 따위를 신골 대신 안치했다. 부처의 진짜 신골을 흔히 ‘眞身舍利’라 하고 이러한 대용품들을 ‘法身舍利’ 혹은 ‘應身舍利’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런 모조품 사리, 즉 법신사리라 하더라도 대부분 금은과 같은 보물로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넣었다. 옛 불탑들이 끊임없이 도굴꾼들의 표적이 되어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불교를 수입한 여러 나라는 탑을 만들 때 꼭 인도식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 나라만의 독특한 재료와 미적 감각에 따라 다른 형태의 탑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벽돌을 많이 사용한 중국은 塼塔, 나무를 많이 사용한 일본은 木塔, 그리고 우리나라는 우리 땅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화강암 재료를 사용한 石塔을 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절에서나 흔히 보는 화강암 불탑은 실상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조형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불탑이 처음부터 이런 모양이었던 것은 아니다. 대륙을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多層樓閣 형태의 木塔을 만들었다.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황룡사 9층탑’이나 ‘미륵사지 동탑’이 모두 거대한 규모의 목탑이었다. 현재 목탑은 남아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으나 고대 목탑의 형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유물로 법주사의 ‘팔상전’ 정도가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창의성 뛰어난 우리의 선조들은 중국의 목탑을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우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새로운 탑을 창조하기에 이르른다. 석탑은 이렇게 해서 창조됐다.(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익산미륵사지석탑(출처 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