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⑤

화엄사의 원통전(圓通殿)은 주불전인 대웅전의 왼쪽 약간 뒤편으로 서 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원통전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보물 300호 ‘사자탑’이지만, 말이 나온 김에 먼저 원통전을 포함한 몇몇 전각들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이야기를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원통전은 관음보살을 안치한 전각을 말한다. 그렇다면 보살이란 또 무엇인가. 菩薩이란 간단하게 말해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와 번뇌에 허덕이는 중생 사이에 있는 거룩한 존재이다. 아직 부처가 되지는 못했지만, 높은 법력으로 인해 다음 세상에는 부처의 자리를 약속받은 미래의 부처이다. 위치로 보면 부처의 다음에 있는 존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들은 위로 부처님의 법을 구하며(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下化衆生)이 주된 임무이다.

불교에서는 무수히 많은 보살을 인정하고 있지만, 불상의 형태로 조상되는 보살은 ‘미륵보살’ ‘관음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세지보살’ 정도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삼존불 등에서 부처의 양 옆을 호위하는 협시보살로 조성되는 것이 보통이고 단독으로 조성되어 불전에 안치되는 보살은 미륵보살, 관음보살, 지장보살 정도이다.

미륵보살이 안치된 전각은 ‘미륵전’ 지장보살이 안치된 전각은 ‘지장전’ ‘명부전’ 등으로 불리며 관음보살이 안치된 전각은 ‘관음전’ 혹은 ‘원통전’이라 불린다. ‘원통’은 관음보살의 별명으로 중생을 제도하느라 ‘세상을 두루 통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보통 관음보살을 主佛로 모실 때 ‘원통전’이라는 당호를 쓰고 여러 전각 중 하나일 때는 ‘관음전’이라고 하나 화엄사의 경우처럼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자 이제 그 앞에 있는 이상한 모양의 탑을 살펴보자. 이 탑은 조금 뒤에 만나 볼 ‘사사자석탑’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탑과는 모양이 사뭇 다른 이색적인 탑이다. 지난번에 간단히 말한 적이 있듯 우리나라 석탑의 ‘정형’ 혹은 ’일반형‘은 불국사의 석가탑을 닯아있다. 바로 아래에 있는 동서오층탑만 하더라도 층수만 5층일 뿐, 기본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석가탑의 외형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어떤 규칙이나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만든 탑도 상당히 많다. ‘정형탑’과는 완전히 다르게 자유롭게 조형된 이런 탑들을 통틀어 ‘異形塔’이라고 부른다. 그 이형탑파의 출발점은 불국사의 석가탑 옆에 있는 다보탑을 꼽는다.

원통전 앞의 사자탑은 이름 그대로 탑의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로 만든 것이 특이하다. 2층의 기단 중 위쪽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상으로 조성하고 그 위에 사각형의 몸돌을 얹은 형태이다. 그러나 이 조형물을 ‘탑’으로 부르고 있기는 하나 법당 앞에 놓이는 탑과는 달리 사리를 안치하는 용도는 아니다. 아직 정확한 용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형태가 특이한 데 비해 사자상의 조각도 그리 정교한 편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사자를 소재로한 탑의 진수는 각황전 뒤쪽 산기슭에 있는 ‘화엄사 사사자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각황전 왼쪽으로 난 오솔길 언덕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소나무 군락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평지가 나온다. 국보 35호, 거찰 화엄사가 자랑하는 숱한 국보급 문화재 중에서도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화엄사 사사자석탑’은 잔디로 뒤덮인 그 평지 한 가운데 서 있다.

탑의 전체적인 모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인데, 이중 위쪽의 기단을 네 마리의 사자로 만들었다. 네 마리의 사자는 네 귀퉁이에서 밖을 향해 앉아있고 중앙에는 합장을 한 스님의 상이 조성되어 있다.

그밖에 아래 층 기단에는 4면에 돌아가며 천인상(天人像)을 조각했다. 천인상은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노래하는 역동적인 모습이다. 1층 몸돌의 4면에는 감실을 상징하는 門扉를 조각하고 그 양옆에는 인왕상(仁王像), 사천왕상(四天王像), 보살상을 조각해 두었다. 네 마리의 사자가 머리에 이고 있는 3층의 탑신은 5층급으로 이루어진 옥개받침, 귀퉁이에서 살짝 반전을 이룬 지붕의 형태 등 여러 면에서 신라 정형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정형탑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미, 놀랍도록 새로운 느낌을 주고 있는 탑이다. 이빨을 드러낸 사자들의 안정적인 자세, 기단과 1층 탑신을 화려하게 장식한 세련된 조각 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이형탑파의 계보에서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라 할 만하다. 아마도 신라의 석조미술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던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까지 답사를 하면 화엄사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은 거의 다 살펴본 셈이다. 발길을 되돌려 각황전 쪽으로 내려와 다시 각황전 석등쯤에서 화엄사를 한 눈에 내려다보라. 석양에 비낀 거찰의 위용이 정말 늠름하면서도 아름답다. (끝)

글/서조(여행작가)

<사진: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