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④

지난 호에 말했듯 각황전은 대웅전과 함께 화엄사 가람배치의 핵심을 이루는 중요한 건물이다. 보제루 쪽에서 정면인 대웅전을 바라보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 양쪽에 탑을 둔 ‘쌍탑식 가람배치’처럼 보이지만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각황전 쪽을 바라보면 서쪽 탑과 석등 각황전이 일직선으로 서 있는 또 다른 ‘일탑식 가람배치’ 사찰이 하나 더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로 절묘하면서도 입체적인 배치가 아닐 수 없다.

각황전이 대웅전보다 약 70년 뒤에 세워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이러한 효과를 미리 염두에 두고 각황전의 위치를 잡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本殿인 대웅전의 위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각황전의 당당한 위상을 강조한 설계자의 안목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각황전은 대웅전보다 더 높은 웅장한 석축 위에 위엄 있게 서 있다. 그런데 계단을 통해 올라가 보면 그보다 먼저 좀처럼 보기 드문 큰 덩치의 석등을 만날 수 있다. 그 유명한 ‘각황전 앞 석등’이다.

앞서 말한 바 있듯 신라 시대에 정립된 우리나라 석등의 전형은 상대석, 중대석, 하대석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팔각의 화사와 옥개가 올라앉은 이른바 ‘8각원당형’이 기본이다. 이 석등 역시 기본적인 형태에서는 그러한 전형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伏蓮으로 이루어진 하대석과 仰蓮으로 이루어진 상대석, 그리고 그 위에 8각의 火舍와 屋蓋가 올라앉아 있는 형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높이가 6,4m에 이르는 압도적인 크기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큰 석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 큰 크기에 걸맞게 통상 얇게 한일자로 조성되는 중대석은 가운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장고 모양의 굵직한 기둥으로 조성됐고 옥개의 처마 부분은 큼직한 귀꽃으로 장식돼있다.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조형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석등이다. 국보 12호라는 월계관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이 석등이 이렇듯 크고 우람하게 조성된 것은 무엇보다도 그 뒤에 자리 잡은 각황전과의 조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전으로서는 유례가 드물게 2층으로 조성된 웅장한 불전 앞에 조그만 석등이 서 있었다면 참으로 왜소함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이 커다란 석등은 그 아래 쪽에 있는 서오층탑의 당당한 자태와 어울려 각황전의 위용을 한껏 드러내 주고 있다.

각황전은 이 석등 뒤에 웅장하고 장엄한 자태로 서 있다. 본래 이 자리에는 3층이나 되는 거대한 ‘장육전’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조선 숙종 연간에 새로운 불전을 짓고 이름을 ‘각황전’이라 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잘 다듬어진 널찍한 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5칸의 웅장한 규모에 2층으로 지붕을 올려 한층 위엄을 갖춘 장중한 불전이다. 규모에 걸맞게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둔 화려한 다포계 양식이다. 오랜 풍상에 씻겨 단청은 거의 벗겨진 상태이지만, 그 빛바랜 단청이 오히려 장중함과 위엄을 배가시켜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건물은 바깥에서 볼 때는 重層이라 하더라도 안에서 보면 위 아래가 터져 있는 단층이다. 다시 말해서 2층이나 3층, 혹은 그보다 높은 층수라 해도 지붕만이 높을 뿐 실제로는 단층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이러한 중층의 불전을 지었던 것은 그 안에 ‘장육불상’과 같이 키가 큰 立像 불상을 안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각황전이 이러한 모습을 한 것도 그 전에 있었다는 ‘장륙전’의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안에는 그리 큰 규모의 불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은 지붕은 서까래가 보이지 않도록 판자를 막고 화려한 문양을 그린 이른바 ‘우물천장’이고 그 밑에는 화엄의 主佛인 비로자나 여래를 중심으로 3구의 부처가 나란히 앉아있다. 3존불 형식이지만 각 부처 사이에는 협시 보살이 서 있다.

당호인 ‘覺皇’은 부처님을 ‘깨달음의 황제’에 비유한 말이라고 하며 현재의 편액은 건물을 지을 당시의 임금이었던 숙종이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각황전의 이모저모를 둘러본 다음 언덕 아래쪽을 향해 서면 山中巨刹 화엄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도 이 부근이 화엄사의 전체적인 면모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이제 남은 것은 화엄사가 자랑하는 또 다른 국보급 문화재인 ‘사사자석탑’을 비롯한 몇몇 문화유적들이다. 우선 대웅전 뒤편에 있는 원통전 앞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석조 조형물을 먼저 만나보자. (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사진: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 문화재청><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