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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57)‘山紫水明’지리산 화엄 대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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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6.15  13: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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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①

흔히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는 이름난 절, 아름다운 절들이 참으로 많다. 3개 道, 5개의 郡에 걸쳐 있는 엄청난 덩치가 말해주듯 지리산 자락을 품고 있는 고장들의 대표적인 사찰은 거의가 지리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웅장한 규모의 거찰로서 하동의 쌍계사, 구례의 화엄사가 있고 유서 깊은 禪門으로 남원의 실상사가 있는가 하면 정감 넘치는 아름다운 사찰로 구례의 천은사, 산청의 대원사가 있다. 그밖에 국보급 문화재가 남아있는 절터로 연곡사지, 단속사지 등도 있다. 그래서 지리산은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나 우리 역사를 전공하는 학생들의 문화유산답사처로도 유명하다.

지리산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도 참으로 아름답고 청명한 산이다. 그래서 사찰을 비롯한 우리의 많은 문화유산들은 거의가 山紫水明한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특별히 지리산의 사찰들은 지리산에 안겨 있음으로 인해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

지리산에 있는 많은 사찰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많은 추억이 서려 있는 사찰은 구례의 화엄사이다. 화엄사는 답사하기에도 좋지만 그냥 여행하고 피서하기에도 참 좋은 절이다. 특히 화엄사 옆을 따라 흐르는 웅장한 계곡은 한 여름 피서지로 정말 최고이다.

화엄사 계곡은 계곡이 워낙 깊고 커서 어지간히 많은 피서객이 몰려들어도 그렇게 붐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장마철이 지난 뒤엔 물의 양도 풍부하고 그늘이 깊어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도 그만이고 시원하게 발을 담그고 족탁을 하기에도 그 이상의 곳이 없다.

필자는 아이들이 크기 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南道로 피서여행을 떠났는데 그 때마다 화엄사를 빼놓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화엄사를 찬찬히 둘러본 다음 더위를 식힐 겸 계곡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물에 들여보낸 다음 아내와 함께 물가에 돗자리를 깔고 발을 담그고 앉아 과일이라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여름의 긴 낮이 언제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다. 해가 뉘엿뉘엿해 지면 계곡을 빠져나와 근처의 전통 찻집에 터를 잡고 녹차를 한 잔 마시면 금상첨화이다.

그러니 올 여름 피서 갈 곳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 지리산 화엄사를 꼭 염두에 두기 바란다. 특히 화엄사가 있는 구례는 섬진강 맑은 물이 휘돌아 흐르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 지역이어서 사방팔방 갈 곳도 많고 경치도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이번 호부터는 여름 특집으로 지리산에 있는 아름다운 절 몇 곳을 돌아보기로 하고 먼저 그 첫 번째 순서로 거찰 화엄사를 함께 답사해 보기로 한다.
화엄사가 자리 잡은 곳은 행정구역상의 주소로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로 지리산 노고단의 서쪽이다. 최근에는 지리산의 곳곳에 도로가 잘 깔려 화엄사 역시 자가용을 타고 쾌적하게 코 앞 까지 오를 수 있다.

화엄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전하지 않으나 사찰의 내력을 기록한 ‘사적기’에 따르면 서기 554년 신라 진흥왕 때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불교의 본고장인 인도의 승려가 세운 절이라고 전한다. 그러나 사찰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중반 당대의 명승 의상대사가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화엄학을 펴며 전국 각지에 화엄 도량을 세울 때, 이른바 ‘화엄 10찰’을 불법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부터였다.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院에 암자가 81곳에 이르는 대사찰로 문자 그대로 ‘화엄불국토’를 이루었다는 전설같은 기록이 전한다. 이로 미루어 창건 당시부터 화엄사는 대단한 규모를 자랑하는 거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말에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국사가 다시 중수한 이래 고려시대까지 네차례의 중수를 거듭하며 거찰의 면모를 이어왔으나 조선조 임진왜란 때 전각이 거의 불타버렸다고 한다. 그 후 17세기 초 조선 인조 연간에 벽암대사가 7년에 걸쳐 중수, 폐허가 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다고 한다.

현재의 사찰 구조와 가람배치의 기초는 조선조 효종 연간 계파 선사에 의해 ‘장육전’이 중건된 이후 확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육전이 웅장한 규모로 중건 되자 당시의 임금인 숙종은 친히 ‘각황전’이라는 편액을 내렸다고 한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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