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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44)의상대사가 머문 우리나라 화엄종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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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1.29  15:5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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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①

전국의 유명한 사찰은 거의 다 답사해 온 필자가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그 많은 사찰 중에서 그래도 가장 멋지고 마음에 드는 사찰이 어디냐는 질문이다. 유서 깊은 명찰들은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데다 사람의 취향이란 저마다 달라 내가 좋은 곳이 남에게도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난감함을 무릅쓰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찰을 꼭 한 곳만 꼽는다면 필자는 매우 고심 끝에 결국은 경상북도 영주시에 있는 ‘부석사’를 꼽을 것이다. 영주 부석사야말로 유구한 연륜과 그에 걸맞는 거찰로서의 위용, 그리고 수려한 주변 풍광과 미학적으로 대단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공간구조,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 없이 명찰로서의 품격과 덕성을 갖춘 훌륭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우선 부석사는 한국 불교의 발전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한 華嚴宗의 法燈이 처음 밝혀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신라의 고명한 승려로 당나라에 유학, 화엄학을 전수받은 의상대사가 귀국 후 터를 잡고 화엄종을 널리 펴며 입적할 때까지 머물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런 점에서 부석사는 한국 화엄종의 요람이자 고향인 셈이다.

이런 유서 깊은 내력에 걸맞게 부석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 중의 하나인 그 유명한 ‘무량수전’을 비롯, ‘조사당’, ‘석등’, ‘소조여래상’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은 山中寺刹로서는 좀처럼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아름다운 구조와 공간배치이다. 이제 곧 본격적인 답사를 하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부석사의 공간배치와 조형미는 古美術을 공부하는 학자들은 물론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건축을 하는 많은 건축가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을 만큼 빼어나다.
마지막으로 부석사의 아름다운 풍광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부석사가 자리잡은 곳은 소백산맥의 자락과 연이어 있는 봉황산 중턱이다. 소백산맥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에 멀찍이 둘러싸여 있어 사찰의 정상인 무량수전 근처에 서면 주변 산세들이 흡사 한 폭의 실경산수화처럼 펼쳐진다. 작고한 어느 유명한 미술사학자의 책 이름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니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석사는 꼭 한번은 찾아볼만한 좋은 여행지이다.

기록에 의하면 부석사가 처음 세워진 것은 신라 문무왕 16년, 서기 676년이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거찰의 위용을 지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석사의 창건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가 <송고승전>과 같은 문헌에 전해지고 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의상대사가 중국에 유학할 때 그곳에 살던 善妙라는 여인이 그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상은 승려의 신분으로서 그녀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상이 급히 신라로 귀국하게 되었을 때, 선묘는 법복이며 일용품 등을 담은 상자를 전달하려 했으나 이미 의상은 신라로 향하는 배에 오른 뒤였다. 그러자 선묘는 주문을 외우고 바다로 뛰어들어 용으로 변해 의상 대사의 험난한 뱃길을 호위했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이 부석사에 터를 잡고자 했으나 먼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소승 잡배들이 이를 방해했다. 그러자 선묘는 넓은 반석으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올라 이들을 위협해 내쫓아 버렸다. 선묘의 도움으로 의상은 그곳에 자리를 잡고 화엄경을 강의하게 되었는데, 부르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부석사는 이렇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로맨틱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창건설화는 그저 이야기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석사 경내 곳곳에는 아직도 창건설화의 단서가 되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우선 ‘공중에 뜬 돌(浮石)’이라는 뜻의 절 이름 자체가 선묘가 변해서 되었다는 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선묘가 변해서 되었다는 그 거대한 ‘부석’은 지금도 부석사 한 모퉁이를 수호석처럼 당당하게 지키고 있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내 외진 곳에는 선묘의 플라토닉한 사랑을 기리는 ‘선묘각’이 있다. 선묘각 안에는 탱화의 형태로 그려진 선묘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렇듯, 부석사는 수려한 경관과 빼어난 공간미, 그리고 역사적 전통과 로맨틱한 설화가 한데 어우러져 숨쉬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다음 호부터는 본격적인 부석사의 답사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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