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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우리땅, 아름다운 숨결(34)‘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따라 - 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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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현에 ‘除暴救民’거친 숨결이…
농민전쟁의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황토현 싸움에 대해서는 남겨진 기록의 내용이 조금씩 달라 당시의 전투 상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하기는 어렵다. 어떤 기록은 선제공격에 나선 감영군을 농민군이 매복 작전으로 격퇴했다고 하는가 하면, 또 어떤 기록은 감영군이 대오를 갖추기도 전에 농민군이 먼저 공격을 퍼부어 크게 승리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농민군과 정부군의 첫 전투인 이 싸움에서 농민군이 크게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무기에서는 열세였다고 하나 전봉준, 손화중 등의 영민한 지휘하에 ‘제폭구민除暴救民’의 대의로 무장,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했던 농민군에 비하면 보부상까지 동원해 급조되다시피한 전주감영군은 오합지졸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날의 치열한 전투에서 정부군은 무려 7백5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고 무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농민군으로서는 정부군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첫 승리였다.
이날의 싸움터인 황토현은 오늘날의 주소로 덕천면 하학리 산 2번지에 펼쳐져 있는 널찍하고 야트막한 벌판이다. 명색에 재(峴)라고는 하나 높이가 고작 30여 미터에 불과해 눈으로 보아서는 거의 평지나 다름이 없다.
그 옛날 수천의 군중들이 천지를 뒤흔들 듯한 함성 속에 한데 얽혀 뒹굴었을 이 역사적인 싸움터는 현재 사적 295호로 지정되어 ‘황토현전적지’라는 이름으로 보존되고 있다. 대부분 황량한 벌판인 채로 남아있는 전적지의 중앙에는 1980년대 초부터 조성된 황토현유적지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중앙에 농민군의 수장이었던 전봉준의 동상이 우뚝하게 서있고 그 왼편으로는 혁명전쟁을 이끈 핵심 인물이었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세 사람의 위패를 모신 사당 ‘구민사’가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시설은 농민전쟁 관련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 전시하고 있는 전시관이다. 이 전시관에는 황토현 전투를 상상해 그린 대형 기록화를 비롯, 당시 농민군이 입었던 전투복, 무기, 관련 서적 등이 전시되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관심을 두고 살펴보아야 할 자료로는 ‘사발통문’을 꼽을 수 있다.
‘통문’이란 어떤 사건을 모의할 때 가담한 사람의 이름을 적어 두루 돌려보는 통지문을 말하는 것인데, 나중에 주모자가 발각될 것을 우려하여 순서를 알 수 없도록 사람의 이름을 사발(沙鉢)모양의 원형으로 적어놓았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전시관에 있는 ‘사발통문’은 지난 1968년 처음 공개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중요한 사료로서 동학농민전쟁이 결코 우발적으로 폭발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주동자에 의해 사전에 사뭇 치밀하게 모의된 ‘계획된 거사’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일부가 유실된 것으로 보이는 통문의 내용은 모의 참가자의 연명과 거사 모의의 배경, 행동강령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내용에 따르면 통문이 작성된 때는 고부민란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1893년 11월이며 서명자는 전봉준을 포함해 모두 20명이고, 모의 장소는 서명자 중 가장 연장자(당시 65세)였던 송두호의 집이었다고 한다.
서명자 20명은 모두 동학교도들이었으며 연령층은 15세부터 65세까지 다양했으나 전봉준을 포함한 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 서명자들은 항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절반 이상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사발통문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 일각에서는 ‘위작僞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통문의 진정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사발통문이 작성되었다고 전해지는 송두호의 집은 아직까지 남아 주민이 살고 있으며 그 집이 있는 고부면 신중리 주산마을 언덕 위에는 서명자의 후손들이 지난 1969년에 세운 ‘동학혁명모의탑’이 서 있다. 이 탑에는 서명자 20명의 생몰연대와 후손들의 거주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시관을 나와 그 뒤편으로 발길을 옮기면 한적한 언덕 위에 지난 1963년에 세워진 ‘동학혁명기념탑’이 서 있다. 아마 이 탑은 정읍에 있는 동학관련 기념조형물 중 가장 오래된 흔적일 것이다. 탑의 왼쪽에 서있는 부조물에 새겨진 역사학자 김상기의 명문이 사뭇 격정적이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고양시켜 뒷날 3.1운동의 선구를 이루었다. 이 갑오동학농민혁명의 거룩한 업적과 숭고한 정신을 뉘라서 추앙치 아니하며 찬양치 아니하랴”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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