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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우리땅, 아름다운 숨결(32)‘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따라 - 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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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목장터엔 핏빛 역사의 흔적이…
기록에 의하면 고부민란 당시, 우두머리 전봉준은 말목장터로 군중을 끌어모아 봉기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사자후를 토해냈다고 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주소로는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이평면 면사무소가 자리 잡은 호젓한 삼거리가 그 유명한 말목장터 자리다. 이름 그대로 말목장터는 일찍부터 정읍 사람들이 생필품을 사고팔던 5일장이 열리던 시장터로 장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거리였다.
전봉준은 이 번화한 거리를 택해 군중들을 선동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목장터는 동학농민전쟁의 불씨가 피어오른 최초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재 말목장터 자리에는 이곳이 바로 그 역사적인 자리였음을 일러주는 유지비와 이를 기념하는 아담한 정자, 그리고 당시 전봉준이 그 밑에서 열변을 토했다는 아름드리 감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수령이 1백80년 쯤 된다는 이 감나무는 아마도 그날의 우렁찬 함성에 몸을 떤 기억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 말목장터에서 전봉준의 사자후에 한껏 고무된 농민들은 그길로 고부관아를 향해 내달아 동헌과 객사 등을 뒤지며 탐관오리 조병갑을 찾았으나, 영악한 조병갑은 이미 다른 고을로 달아난 뒤였다. 관아가 불타고 무기고와 창고가 부서졌다. 창고에서 쏟아진 곡식은 즉시 굶주린 마을사람들에게 배분되었다. 그때 농민들에게 기습을 당한 고부관아가 있던 곳은 고부면 고부리, 현재 ‘고부초등학교’ 자리라고 한다. 물론 관아 건물은 흔적도 없고 다만 지난 1997년 교정 한 켠에 세워진 표석만이 이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고부관아에서 어지간히 분풀이를 한 농민들은 내친김에 말목장터에서 한 3km 쯤 떨어진 만석보로 달려가 한맺힌 만석보의 신보를 허물어버리고 만다.
말목장터에서 만석보가 있었다는 배들평으로 향하는 길은 우선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는 가을을 맞은 벼이삭들이 일렁이고 동진강의 지류인 정읍천은 이 넓은 벌판을 감싸 안듯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다. 한눈에 참으로 넓고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임을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옛 기록에 따르면 고부 지역은 조선 땅에서 쌀농사로 으뜸가는 지역으로 개항 이래, 이른바 ‘무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봉건적 수탈이 가장 심했던 지역의 하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쌀이 넉넉히 나고 장사하기도 좋아 무얼 빼앗아 가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누런 벼들이 일렁이는 들판을 가로질러 들판 가운데에 이르면 만석보의 옛자리를 기념하는 ‘만석보 유지비’가 넓고 기름진 배들평을 굽어보며 서 있고 그 옆에는 양성우 시인의 서사시 ‘만석보’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들리는가, 친구여/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만석보 허무는 소리가/들리는가, 그대 지금도/ 그 새벽 동진강머리 짙은 안개 속에/푸른 죽창 불끈 쥐고 횃불 흔들며/ 아비들은 몰려갔다/굽은 논둑길로.
근처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배들평을 내려다 보며, 원수같은 만석보를 허무는 농민의 심정을 비장한 어조로 읊어내린 이 시를 읽어가다 보면 한없이 평화로운 이 들판에 새겨진 핏빛 역사의 흔적이 자못 가슴을 저려온다.
한편 고부 땅에서 큰 난리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보고되자 조정에서는 난리의 원인을 제공한 조병갑을 잡아올려 국문토록 하는 한편, 용안 현감을 지내던 박원명을 새 고부군수로 임명해 사태를 진정시키도록 했다.
새롭게 고부 군수로 부임한 박원명은 비교적 온당한 수습책으로 성난 민심을 가라앉혀 일단 농민들을 해산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어쩌면 이 단계에서 고부 농민봉기는 끝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진정국면에 접어든 고부 봉기에 재차 불씨를 붙여 심각한 무장항쟁의 단계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얼마 뒤, 사태 수습의 임무를 띠고 조정에서 파견된 안핵사 이용태의 무자비한 진압 행태였다.
그는 사태의 전후사정을 따져 합리적으로 난리를 수습하는 대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살육과 약탈, 방화와 같은 끔찍한 방법으로 농민군을 가혹하게 닦달했던 것이다. 당시의 한 기록은 ‘온 고부군 백성들의 고통이 골수에까지 미친’ 지경이었다고 적고 있다. 봉기의 우두머리 전봉준의 집도 이때 불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평면 장내리 마을 초입에 남아있는 ‘전봉준 고택’은 불탄 이후 폐옥이 되다시피 했던 가옥을 지난 1974년 대대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흙담으로 된 4칸짜리 ㄱ자 형의 초가집으로 전통시대 가난한 시골 농민들의 전형적인 가옥형태이다. 이런 가옥의 모양으로 미루어 당시 전봉준의 살림살이 또한 일반 농민들의 궁색한 처지와 별반 다름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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