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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
우리 땅 아름다운 숨결(31)‘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따라 - 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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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저항정신, 배들평에 솟다
전라북도 정읍시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인 내장산으로 오르는 널찍한 호숫가에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멋지고 우람한 기념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지난 19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된 때를 기념하여 세운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이다. 아마도 정읍 땅에 서 있는 여러 기념 조형물 중에서 가장 공 들여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탑에 새겨진 정성만 보더라도 오늘날의 정읍이 가장 먼저 내세우고 싶은 이력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읍은 그 무엇보다도 우리 근대사에 엄청난 무게로 기록된 동학농민전쟁의 불씨가 처음 지펴진 ‘혁명의 고장’인 것이다.
실로 동학농민전쟁을 빼놓고는 정읍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정읍 땅에 서린 역사의 숨결과 정서를 제대로 느끼려면 단풍철이면 발 딛을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 유명한 내장산의 절경보다도 그 땅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찾아보아야 할 일이다.
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은 우리나라 삼남 일대에 두루 남아있지만, 특히 이들 여러 고장 중에서 정읍은 농민전쟁의 도화선이 된 ‘고부민란’이 일어난 고장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호부터는 몇 회에 걸쳐 전라북도 정읍 땅에 남아있는 동학농민전쟁의 흔적을 함께 답사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 ‘동학농민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 역사적 사건은 지금까지도 용어조차 확실하게 통일되지 않고 있다.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는 ‘동학란’에서부터 ‘동학농민봉기’ ‘동학혁명’ ‘동학혁명운동’ ‘갑오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만 족히 대여섯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그 까닭은 물론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시대에 따라, 혹은 학자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초기의 시각이 지배층의 입장에서 농민의 항쟁을 ‘반란’으로 바라보았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농민전쟁의 주체인 민중의 역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해왔다는 점이다. 이제는 아무도 동학농민전쟁을 단순한 반란으로는 보지 않는다.
동학농민전쟁은 비록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피지배층인 민중이 시대와 사회적 모순을 자각하고 이를 저항을 통해 적극적으로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천명한 사건으로 이 항쟁의 가장 기본적인 에너지가 되었던 ‘민중의 각성’이야말로 이른바 ‘近代’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런 점에서 동학농민전쟁을 우리의 역사가 근대로 옮아가는 전환점, 이를테면 ‘근대의 출발점’으로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실로 동학농민전쟁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중대한 사건인 것이다. 본격적인 답사에 앞서 잠시 그 시대의 상황으로 되돌아 가 사건의 전모를 되짚어 보자.
1892년 고부군에 새로운 군수가 부임한다. 한양 조정의 세도가와 줄을 대고 있는 조병갑이라는 인믈로 조선 말 탐관오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부패한 관리였다.
그는 전라도에서 가장 기름진 들판으로 꼽혔던 ‘배들평’에 있는 만석보에 쓸모도 없는 새로운 보를 짓겠다고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부려먹었는가 하면 이를 핑계로 또 다른 세금을 만들어 어거지로 거둬들였다. 또한 인근 태인군의 군수를 지냈다는 제 아비의 碑閣을 세운다고 또 세금을 거둬들여 이를 착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살만한 고을 사람들을 수시로 잡아들여 불효를 했다는 둥, 음란한 행동을 했다는 둥 말도 안되는 죄목을 둘러 씌워 재물을 빼앗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고부 고을 농민들은 대표를 내세워 제발 이런 일은 거두어 주십사 하는 진정서를 써 올렸다. 그러나 포악한 조병갑은 폭정을 시정하기는커녕 고을 대표를 잡아들여 곤장을 쳐서 옥에 가두고 말았다. 어렵사리 올린 진정마저 이렇듯 무참한 보복으로 돌아오자 여기서 참았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한 고부 농민들은 그 고장에서 훈장을 지내고 있던 전봉준을 우두머리로 내세워 몽둥이와 죽창을 꼬나 쥐고 고부관아를 습격한다.
관아의 무기를 빼앗고 옥문을 열어 무고하게 갇힌 백성들을 풀어주고 내친김에 배들평으로 내달려 수탈의 상징이었던 만석보를 허물어 버리고 만다. 1894년 1월 10일의 일이었다.
보통 여기까지를 농민전쟁의 첫 단계인 ‘고부민란’ 혹은 ‘고부농민봉기’라고 부른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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