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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30)‘단종애사’의 흔적을 따라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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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8.14  09: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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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소리에 잠 못 이룬 ‘영월의 밤’

천애의 유배지 청령포에서 두 달여를 보낸 단종은 그 해 여름, 큰 장마를 만나 강이 범람하고 거처가 몽땅 떠내려가는 바람에 거처를 급히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기게 된다. 단종은 이 임시 거처에 머물 던 중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게 된다.

단종이 최후를 맞았다는 관풍헌은 영월의 중심가인 영월읍 영흥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관풍루는 조선후기의 유명한 시인 김삿갓과도 인연이 깊은 곳이다. 본명이 김병연인 그가 ‘김삿갓’이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영월 땅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것이었는데, 그 백일장이 열린 장소가 바로 이 관풍루가 있는 영월 東軒이었다는 것이다.

관풍헌 건물은 단층의 화강암 기단 위에 전면 3칸, 측면 3간의 정사正舍를 가운데 두고 그 양옆으로 각각 한채의 익사翼舍가 딸린 일자형 건물로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한 형태를 짐작케 하는 유적이기도 하다.

관풍헌 왼쪽 앞으로는 ‘자규루子規婁’라는 아담한 정자가 한 채 있다. 단종은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 후 수시로 이 정자에 올라 깊은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단종의 능인 장릉의 내역을 기록한 <장릉지 莊陵誌>에는 이 무렵 단종이 이 정자에 올라 읊었다는 시 한수가 전해진다.

“원통한 새가 되어 궁궐을 나온 후로/외로운 그림자 산중에 홀로 섰네/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 못 이루고/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어라/두견새 소리 그치고 조각달 밝은데/ 피눈물 흘러서 지는 꽃이 붉구나/하늘도 하소연 소리 듣지 못하는데/어찌 시름 젖은 내게만 들리는고”

한치 앞을 헤아릴 수 없는 자신의 기막힌 운명 앞에서 소쩍새 소리에 밤잠을 못 이루며 시름에 젖었던 어린 임금의 고뇌가 구구절절 배어있는 절조다.

이 누각의 본래 이름은 ‘매죽루 梅竹樓 였으나 단종이 이 애끓는 ‘자규시 子規詩’를 지은 연유로 이후 ‘자규루’라고 불렀든, 단종은 이곳 관풍헌에서 2개월 여를 더 보내다 죽음을 맞게 된다. 실로 억울한 죽음이었으나 죄목은 이름도 어마어마한 ‘역모죄’였다. 당시는 이미 서인庶人으로 강등된 처지인데다 대역죄인으로 죽었으므로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될리 없었다.

<장릉지 莊陵誌>의 기록에 따르면 강가에 버려진 채 아무도 수습하는 이가 없던 단종의 시신을 당시 영월 戶長이었던 엄흥도嚴興道라는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습, 자신의 집에 있던 관에 모셔 인근 동을지산冬乙旨山에 몰래 매장하고 그 길로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그나마 한 하급관리의 의로운 충정이 묘소나마 남아있게 한 셈이다.

단종이 이 억울한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열린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훨씬 지난 중종 임금의 치세 때부터였다.

중종 11년인 1516년, 비로소 ‘노산군의 묘소를 찾으라’는 왕명이 떨어졌고 1541년에 이르러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에 의해 묘소가 단장되는 한편 제사가 봉행되었다. 그러다 숙종 24년(1698년) 마침내 단종이라는 임금의 묘호廟號를 되찾으면서 장릉莊陵이라는 능호를 갖게 된다. 승하한지 무려 241년만의 일이었다.

조선의 임금 무덤은 한양 도성에서 1백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 점에서 영월에 자리 잡은 장릉은 수도권에서 완벽하게 떨어져 있는 유일한 왕릉이기도 하다.

단종의 묘소인 장릉은 관풍루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영월읍 영흥리 외곽의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다. 약 0.32㎢의 넓이에 조성된 능역 내에는 시신이 안치된 묘 이외에 정자각, 단종비각, 흥전문, 배식단과 배식단사 등 단종과 관련된 각종 비각과 전각들이 들어서 있고 최근에 세워진 시설로 단종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한 단종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능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시대의 왕릉의 일반적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가파른 산비탈을 끼고 있는 지형적인 조건 때문에 전각의 배치는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런 배치상의 차이 이외에도 장릉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로 능의 주인공 말고도 비운의 임금에게 도리를 다한 올곧은 사람들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각과 배식단사를 꼽을 수 있다.

홍살문의 오른 쪽 옆에 있는 배식단사에는 단종과 고락을 함께 하다 죽은 충성스런 사람 2백6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밖에 2기의 정려각旌閭閣이 있는데, 그 하나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영월 호장 엄흥도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훗날 단종의 묘소를 제대로 꾸민 영월 군수 박충원의 것이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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