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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29)'단종애사'의 흔적을 따라-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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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8.10  17: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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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恨’ 서린 천혜의 유배지>

우거진 송림 한 복판에 있는 단종의 거처는 사실 옛 유적이 아니다. 단종이 살았던 집은 오래 전에 홍수로 떠내려가고 아무 것도 없는 허허로운 터에 ‘바로 이 자리가 그 곳’임을 알려주고 있는 이끼 낀 돌 표지석만 있었는데 최근 들어 옛날 살았던 집이 말끔하게 복원되어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지난 2000년 4월 새로 지어진 이 御家는 <承政院日記>의 기록에 따라 나름대로 고증을 거쳐 복원되었다고 하나 아직도 위치 및 주거 형태 등 몇 가지 논란거리를 안고 있다. 어쨌든 1자 형태의 기와집으로 복원된 이 거처는 단종이 머물었다는 본채와 궁녀 등 나머지 식솔들이 묵었다는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고 각 방에는 당시의 살림살이를 그럴싸하게 복원한 마네킹과 가재도구들이 들어차 있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러나 그 옛날 섬처럼 외진 이 울창한 숲 속에 대역죄인을 ‘모시기’ 위해 기와를 올린 이렇듯 ‘괜찮은 집’을 새로 지었을런지는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담장 한쪽 켠에는 이 언저리가 단종이 머물던 곳임을 알려주는 端廟遺址碑(단묘유지비)가 서 있다. ‘유지비’란 지금은 없어졌으나 어떤 것이 남아있었던 터에 이를 알리고 기념하여 세우는 비석이다.

유지비의 앞면에는 ‘端廟在本府時遺址(단묘재본부시유지)’ 즉 ‘단종이 우리 부(영월)에 머물었던 터’라고 씌여져 있고 후면에는 ‘皇命崇貞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泣涕敬書 令原營燧石’이라고 새겨져 있다. 즉 영조英祖39년(1763년) 가을, 어명에 따라 울면서 받들어 쓰고 원주 감영이 세웠다는 것이다. 바로 이 기록, ‘울며 받들어 썼다’ 기록으로 미루어 세월이 꽤 흐른 영조 임금 당시에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단종에 대한 추모의 정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단종과 관련된 또 하나의 비석이 서 있다. ‘금표비禁標碑’가 바로 그것이다. 비바람에 깎여 남아있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돌판에는 ‘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이라는 글씨가 남아있다.

‘동서로 3백척, 남북으로 4백9십척 안은 임금이 계신 곳이므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시이다. 말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었지만, 실은 임금도 출입이 금지된다는 말일 터이다. 남도 못들어오고 나도 나가지 못하니 이게 감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독하기 이를 데 없는 숙부 세조는 이 천혜의 감옥에 가둔 것만으로도 모자랐는지 거처 언저리에 군사를 붙여 밤낮으로 감시하는 것은 물론 일반인들은 청령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단종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옥에서도 이처럼 철저하게 감시당했던 것이었다. 창살만 없었을 뿐, 옴짝달싹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이나 진배없었던 단종의 고초를 가슴 아프게 전해주는 또 하나의 흔적이다.

발길을 돌려 청령포의 오른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 언덕을 올라가 본다. 있는 곳이 이미 언덕이어서 그리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급경사를 이룬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한 5분쯤 올라 마침내 언덕 꼭대기에 이르면 아찔하게 현기증을 느낄만한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발길을 가로막는다. 아득히 발아래로는 쪽빛 서강 줄기가 유장하면서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청령포의 풍경이 여간한 장관이 아니다. 천혜의 유배지일지언정, 천혜의 비경이기도 한 것이다.

절벽으로 오르는 언덕 한켠에는 작은 돌을 쌓아 만든 낮으막한 탑이 있다. 이름하여 ‘망향탑望鄕塔’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단종은 이 언덕에 올라 멀리 한양의 궁궐과 그곳에 두고 온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하나 둘씩 돌을 쌓았다고 한다. 단종을 무엇보다도 괴롭혔던 것은 아마도 어린 나이로는 좀처럼 삭이기 힘들었던 이토록 깊은 고독이었을 것이다. 혹시 풀려나게 될지, 혹은 언제 죽음을 당할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밤마다 소리 죽여 통곡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청령포의 송림 숲을 조용히 거닐다 보면, 깊은 물이 앞을 흐르고 험준한 절벽이 뒤를 막아서는 이 아득한 심처深處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밤을 지샜을 어린 임금의 몸서리쳐지는 고독이 오백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지금도 전해오는 듯하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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