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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28)‘단종애사’의 흔적을 따라 -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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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7.07  14: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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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 서린 ‘천애의 벽지’ 청령포

강원도 영월은 산 깊고 물 맑은 아름다운 山村이다. 길게 꼬리를 늘인 東江과 西江 줄기가 곳곳에 아름다운 비경을 만들어 놓았고, 이른바 ‘김삿갓 계곡’ 같은 청정 계곡에는 시리도록 맑은 물이 줄창 흘러내리고 있다.

게다가 ‘책 박물관’ ‘민화박물관’ ‘김삿갓박물관’등 유익한 볼거리가 많기도 하다. 여름휴가를 어디로 떠날 것인가 고민 중이라면 강원도 영월을 후보에서 빠뜨리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나 이 수려한 고장 영월을 대표하는 으뜸가는 명소는 뭐니뭐니 해도 조선조 비운의 임금 단종과 관련된 유적들일 것이다.

영월 땅에 남아있는 단종 관련 유적으로는 귀양살이 할 때의 거처였던 청령포와 죽음을 맞은 영월관아, 그리고 그가 묻힌 장릉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단종의 유적’을 찾아 영월을 찾기도 하고, 다른 곳을 보려고 영월을 찾은 사람이라도 단종의 유적들은 반드시 둘러보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번호부터 2~3회에 걸쳐 영월 땅에 남아있는 단종 관련 유적들을 답사해 보고자 한다.
우선 답사의 기초 지식을 얻을 겸, 일국의 세자에서 대역죄인으로 전락, 고독한 유배지로 내몰리기까지 구슬픈 ‘단종의 哀史’를 간략하게 더듬어 보기로 한다.

조선왕조의 여섯 번째 임금인 단종의 죽음은 우선 조카의 왕위에 눈독을 들인 야심에 찬 숙부 수양대군의 욕심이 불러일으킨 비극이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단종을 보위하는 의정부 대신을 중심으로 한 관료세력과 수양대군으로 대표되는 종친세력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이 사건의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어린 단종은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이 기막힌 싸움에 휘말려 끝내 억울하게 희생되고 만 셈이다. 어쨌거나 단종의 아버지이자 병약한 임금이었던 문종이 즉위한지 2년만에 세상을 떠나자 왕실은 걷잡을 수 없는 권력다툼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된다.

그 결과 대세는 수양대군쪽으로 기울게 되고, 이른바 ‘癸酉靖難’으로 불리는 단종의 왕위까지 빼앗은 수양은 즉위 2년이 되던 해 上王으로 물러앉혔던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멀리 유배를 보내버리고 만다. 이때가 서기 1457년 6월 21일,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무렵이었다.

그때 어린 단종이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가혹한 시련에 눈물을 떨구며 유배된 곳이 바로 이곳 영월의 청령포였다.

부인은 물론 상궁이나 나인조차 거느리지 못한 혼자 몸으로 영월로 호송된 단종은 첩첩산중, 그 까마득한 유배지에서 세조의 허락도 없이 따라나선 대여섯명의 하인들과 함께 지내며 깊은 고독을 삭여야 했다.

하지만 이것조차 비극의 종착점이 아니었다. 어린 단종은 이 천애의 벽지에서 3개월여를 보내다가 홍수가 나는 바람에 영월관아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겨 머물다 그곳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승하했다. <세조실록>은 숙부 세조가 사약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단종이 스스로 목을 매 자살을 했다고 적고 있다.

1457년 10월 24일, 청령포에 유배된지 4개월만의 일이었다. 이때 단종의 나이 고작 17세. 실로 곱게 눈감기 어려울 만큼 억울하고 한 많은 최후였다.

청령포를 휘감아 흐르는 강자락 언덕에는 당시 어린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고 돌아오던 왕방연이라는 신하가 이 강가에 앉아 눈물로 읊었다는 시조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로 이어지는 이 구슬픈 시조에는 어린 단종의 억울한 죽음을 바라보는 당시 백성들의 비통한 심정이 구구절절 배어있다.

현재의 행정구역상 주소로는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에 있는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는 흡사 한폭의 그림처럼 물위에 떠 있다. 널찍한 백사장을 앞으로 두르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 절경이다.

그러나 청령포에 이르는 길은 남한강의 상류인 서강 줄기가 동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 삼면을 휘돌아 흐르고 나머지 한쪽은 깍아지른 듯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어 지금도 이곳엘 가려면 얄궂은 거리이나마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요즘에는 옛 운치를 살리기 위해 황포 돛대를 단 나룻배가 관광객을 실어나르고 있으나, 실은 황포 돛은 그저 폼으로 단 것이고 모터에 의해 잽싸게 물살을 가르는 ‘짝퉁 황포돛단배’이다.

어쨌거나 이 무늬만 황포돛단배를 타고 한 5분쯤 앉아있으면 청령포에 닿게 된다. 백사장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울창하게 하늘을 가린 키 큰 소나무들이 방문객을 압도한다. 그 송림 한 복판에 단종이 유배생활을 하던 거처가 자리잡고 있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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