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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24)고산 윤선도의 詩心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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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6.05  10: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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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기행 ①

뭍으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반도의 최남단 해남 땅끝 바닷가에 서면, 멈춰버린 여행객의 발걸음은 먼 바다를 향해 안타까운 숨을 고른다. 여기서 또다시 떠날 곳은 정녕 없는가 하고 말이다.

그럴 때, 땅끝 해변을 따라 펼쳐진 조그마한 항구 갈두항을 찾아가 보라.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여객선의 행선지 중 하나가 유난히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진다.

‘보길도-’

그렇다. 저 옛날 병자호란으로 난리가 났을 적에 조정의 중신을 지낸 천재시인 孤山 尹善道는 의병을 모아 북으로 향하려다 그새 임금이 남한산성에서 나와 오랑캐에 항복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낙심한 끝에 마음을 바꿔 먼 바다를 향해 배를 띄운다. 이 오욕의 땅을 떠나 어디 먼 섬으로 가자. 그렇게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로 가는 뱃길은 험했다. 풍랑을 피해 잠시 이름 모를 자그마한 섬에 배를 댔다. 그러나 그 조그만 섬의 그림 같은 풍광은 슬픔에 젖은 고독한 시인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고 만다. 제주도로 가려던 뜻을 아예 접어버리고 섬 복판으로 들어가 격자봉 밑에 집을 짓고 그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두어 연못을 만들곤 복잡한 세상사를 잊고 유유자적하며 노닐게 된다. 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 만년을 지내며 ‘어부사시사’를 비롯, 우리 문학사에 길이 빛날 주옥같은 시편을 쏟아낸다. 그 섬이 바로 보길도였다.

이렇듯 보길도는 조선조 최고의 서정시인 고산 윤선도의 빛나는 詩心이 찾아낸 낙원인 셈이다. 지금도 보길도의 명성은 그 태반이 이 작은 섬에 남겨놓은 고산의 옛 흔적에 힘입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보길도로 향하는 뱃길은 그 옛날 새로운 땅을 찾아 망망대해에 배를 띄운 고산의 심정을 그대로 느껴보는 사뭇 서정적인 여행이기도 하다.

이번 호부터는 두어회에 걸쳐, 고산 윤선도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남쪽 바다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답사하려고 한다. 본래 고산 윤선도의 유적은 보길도 말고도 그의 고향 마을 옛 집이기도 한 해남의 ‘녹우당’과 그의 묘소가 있는 금쇄동 등에도 진하게 남아있지만, 그의 생애에서 단연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유적은 역시 그가 보길도에 머물던 시절의 흔적들이다.

보길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하는 면소재지로서 보길면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포함된 아름다운 섬이다. 완도 본 섬에서 32km 떨어져 있고, 해남 땅끝에서는 12km 쯤 떨어져 있다.

이처럼 속하기는 완도군에 속하지만, 거리상으로는 해남에서 훨씬 가까워 보길도를 갈 때는 해남 땅끝의 갈두항에서 배를 타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떠나는 배는 전부 자동차까지 싣고 가는 ‘카페리’여서 자가용으로 여행하는데도 불편함이 없다. 배편은 하절기의 경우 아침 7시에서 저녁 5시30분까지 1시간에서 한시간 반 간격으로 있다. 이 시간표는 보길도에서 땅끝으로 나올 때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해남 갈두항을 떠난 대형 여객선은 크고 작은 섬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잔잔한 남해의 물살을 미끄러지듯 가르며 보길도로 향한다. 갈두항을 출발한 지 50여분, 뱃전에 기대 바다의 정취에 흠뻑 빠져있는 나그네의 시야에 어느새 정겨운 항구의 풍경이 들어와 찬다. 이곳이 바로 청별항. 보길도의 유일한 항구로서 보길도를 드나드는 모든 배가 정박하는 관문이자 관공서와 편의시설 식당, 상점 등이 자리잡은 보길도 최대의 번화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말이 번화가지 항구의 풍경은 여느 시골 소읍의 풍경처럼 한적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다.

우선 고단한 발걸음을 쉬며 한 숨 돌릴 겸 항구에 있는 한 찻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의 2층 창가에 앉으면 청별항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淸別’-문자 그대로 모든 것과 깨끗이 이별한다는 뜻의 항구 이름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커피를 마시며 보길도 답사의 플랜을 세워본다.

보길도 여행은 크게 두가지 테마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본래의 목적인 고산 윤선도가 이땅에 남긴 흔적을 답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일부이기도 한 보길도의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두루 돌아보는 것이다. 우선 고산의 유적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다음호에 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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