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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19)바다 향해 뒷짐 진 ‘우정의 山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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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4.26  11:3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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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발길을 따라서④ - 다산초당

강진에 도착한 이래 동문 밖 주막을 거쳐 우두봉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의 집 등을 전전하며 안정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다산은 47세가 되던 1808년 봄, 작으면서도 대단히 의미있는 변화를 맞이한다.

당시 강진읍에서 30리쯤 떨어진 만덕산 아래 ‘귤동마을’에 사는 윤단이라는 선비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단산정’이라는 가옥을 선뜻 다산에게 내 주었던 것이다.

이 단산정이 있는 귤동마을은 다산의 外家이기도 한 海南 尹氏의 집성촌으로 처사 윤단은 다산의 外曾祖父이자 조선 후기 화단의 우뚝한 거목 공재 윤두서의 손자이기도 했다.

스스로 벼슬길을 마다하고 시골에 묻혀 살아 ‘처사’라고 불렸던 윤단은 시골에 묻혀 살았을지언정 학식이 높아 실학에도 이해가 깊고 꼿꼿한 선비였다. 그는 뛰어난 학자 정약용이 공부하는 환경이 좋지 않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다 흔쾌히 자신의 산정을 그에게 내주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산정과 함께 그곳에 보관하고 있던 1천여권의 장서도 함께 내 주었다.

윤단 처사의 호의를 고맙게 받아들인 다산은 윤단의 아들 윤규로의 도움을 받아 산정 뜨락에 축대를 쌓고 물을 끌어다 폭포와 연못을 만들고 그 주위에는 대나무와 화초를 심어 아름답게 가꿨다. 그리고 산정에 있는 두 채의 별채인 동암(東庵)과 서암(西庵)에 천여권의 장서를 쌓아두고 공부와 저술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곳이 바로 다산 관련 유적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다산초당’이다.

본래 다산초당은 1900년을 전후해서 모두 무너져 없어지고 그후로는 주춧돌만 남아있는 폐허로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1950년대 말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해남 윤씨의 후손들이 힘을 모아 초당의 복원에 들어가고 이들의 뜻을 옳게 여긴 강진군청이 힘을 보태 1975년에는 초당 본채와 동암, 서암, 그리고 본래는 없었던 天一閣이라는 정자까지 완성해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의 초당은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후손들의 공경심이 담긴 새로운 건물인 것이다.

다산초당으로 오르는 만덕산 초입에는 기념품 상점을 겸한 아담한 전통찻집이 있다. 이곳에서는 그 옛날 다산에게 산정을 선뜻 제공한 윤단 처사의 후손 분이 초당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다산의 생애와 초당의 내력에 대해 친절하고도 자세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잠시 무거운 발길을 쉴 겸, 한잔의 녹차를 마시며 설명에 귀 기울이는 것도 좋다. 차 맛도 좋거니와 초당의 답사에서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찻집을 나와 초당으로 향하는 산길은 그리 멀지는 않지만, 제법 가파른 길이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난 산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10여분 쯤 오르면 다산초당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초당 본채의 오른쪽에 딸린 서암의 아담한 자태이다. 서암은 문자 그대로 본채의 서쪽에 있는 집으로 다산의 가까운 제자들이 거처하며 학문을 배우던 곳이다. 그 왼쪽으로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이 붙은 본채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에 붙은 ‘다산초당’이라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해서 모각한 것이다.

초당의 마루에 걸터 앉아 땀을 식히며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초당의 구조가 한 눈에 들어온다.

본채 옆으로는 다산이 직접 파서 조성했다는 ‘연지석가산’을 조촐하게 복원한 연못이 있고 연못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암’과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별채 건물인 ‘동암’이 자리 잡고 있다. 다산은 주로 이 동암에 산처럼 들어앉아 공부와 저술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암을 지나쳐 조금 걸어가 이르게 되는 산언덕은 다산초당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다. 산 아래로 잔잔한 강진의 바다 풍경이 아련히 펼쳐진 이 언덕에서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된 작은 형 약전과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했다. 1975년 강진군청이 이곳에 세운 정자 ‘천일각’은 이 산 언덕에서 먼 바다를 향해 뒷짐을 지고 서성이며 그리움을 달랬을 다산의 아픈 심사를 헤아리게 해 주는 상징적인 건물인 셈이다.

그러나 초당의 답사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눈에 쉽게 띄지는 않지만, 초당 언저리 여기저기를 잘 둘러보면 후대에 세운 이들 건물보다 다산의 체취가 훨씬 더 짙게 묻어나는 몇몇 정겨운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음호에 계속)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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