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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15)신화의 끝, 장엄한 노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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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3.24  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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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 기행 ⑥ - 관음포

충무공이 한산도 진영에 머문 기간은 1593년 7월부터 1597년 2월까지 약 3년 7개월 동안이었다.

이 기간은 한산대첩 이후 일본 수군이 노골적인 지키기 작전으로 들어간데다 참전한 명나라의 주도로 일본과의 화의가 진행되는 등 전쟁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든 시기였다.

모두 알다시피 바로 이 시기에 이순신은 억울한 모함에 빠져 하루아침에 관직을 박탈 당하고 조정으로 압송되어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가는 실로 통탄스런 고초를 겪게 된다.

그러는 가운데 1597년 2월, 이른바 정유재란이 터져 거대한 전란의 회오리가 다시금 몰려왔다. 이순신을 대신해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은 7월15일 거제도의 칠천량 해협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무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통제사 원균, 전라우수사 이억기를 비롯한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이순신이 공들여 키웠던 함대가 거의 전멸하는 최악의 패배였다.

사태가 이렇게 다급해지자 선조임금은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다시 불러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복직시키게 된다.

그해 8월 3일, 복직을 명하는 교서를 받은 이순신은 통한과 울분 속에서 또다시 전장의 한 복판으로 뛰어든다. 이어 진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그 유명한 명량해전에서 고작 13척의 배로 130척이 넘는 왜군함대를 격파하는 믿을 수 없는 승리를 거두며 조선수군을 기적적으로 부활시키게 된다.

이후 이순신은 불타버린 한산도의 진영을 버리고 강진 남쪽에 있는 섬 고금도로 근거지를 옮겨 통제영을 새롭게 재건하고 큰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역량을 다시금 회복하게 된다.

1598년 8월 1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일본군이 퇴각을 결정하면서 7년에 걸친 긴 전쟁은 종전으로 치닫게 된다. 이순신은 퇴각하는 왜군을 상대로 명나라 수군과 합세해 최후의 대회전을 준비한다. 이 싸움이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이자 명장 이순신이 장렬한 최후를 맞은 ‘노량해전’이다.

1958년 11월 19일. 이순신은 철수하는 왜군의 길목을 노량바다에서 차단하고 3백여척의 왜선을 상대로 치열한 공격을 퍼붓는다. 훗날 좌의정 이덕형이 현지를 시찰하고 조정에 올린 보고서는 왜적의 시체와 배의 파편이 뒤덮여 노량해협의 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적고 있다. 적선 200척 이상을 격파하고 수천명의 왜군을 수장시킨 대승이었다.

충무공의 마지막 싸움터인 노량바다는 경상남도 하동군과 남해도 사이를 흐르는 좁은 해협으로 현재 남해대교가 가로지르고 있는 바로 그곳이다. 하동 쪽에서 남해대교를 건너 남해 땅을 밟자마자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두 곳의 유명한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우선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충남 아산으로 운구를 옮기기 전 약 3개월 간 안치했던 장소에 세워진 장군의 사당 충렬사忠烈祠가 그 중의 하나다. 그 날의 격전지 노량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 자리 잡은 사당에 오르면 붉은 색 남해대교와 커다란 거북선 모형이 떠 있는 노량바다의 운치있는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당 뜰에 있는 ‘유명조선국삼도통제사 증시충무이공묘비’는 1660년 우찬성 벼슬을 하던 당대의 대유학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좌참찬 송준길이 글씨를 쓴 중요한 흔적이다.

충렬사를 나와 시내 쪽으로 조금만 가다 보면 설천면 노량리의 바닷가 숲에 있는 ‘이충무공 전몰유허’를 만날 수 있다. 충무공이 전사한 관음포 바닷가에 지어진 사당으로 흔히 ‘李落祠’라고 불린다. 문자 그대로 ‘이 충무공이 돌아가신 곳을 기리는 사당’이라는 뜻이다.

쭉쭉 뻗은 대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하게 뒤덮여 충무공의 사당 중 가장 비장미 넘치는 풍광을 느끼게 하는 사당이다. 이락사에서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참망대라는 자그마한 정자에 이르른다. 참망대 위에 올라서면 이순신 장군이 최후를 맞은 관음포 바다의 전경이 사뭇 서정적으로 안겨온다.

참망대에 이르른 때가 석양 무렵이라면 장엄한 남해의 낙조를 구경할 수 있다. 관음포의 장엄한 낙조는 어쩐지 충무공의 최후를 연상시킨다. 반도의 남해안을 누빈 이순신 장군의 웅장한 해전의 신화는 거제 옥포만에서 시작되어 이곳 남해 관음포에서 끝이 난다. 그의 흔적을 따라가는 답사 또한 여기서 끝을 맺는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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