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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땅, 아름다운 숨결(14)‘고독한 영웅’의 근심 서린 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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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6.03.22  09: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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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 기행 ⑤ - 한산도

남해의 손꼽히는 美港인 통영항에서 한산도로 가는 배에 올라 한 30여분 물살을 가르면 사적 제113호로 지정된 한산도 충무공유적지의 입구에 도착한다. 한산도의 충무공유적지는 보통 ‘제승당’이라고 불리는데, 이 곳에는 제승당 건물뿐만이 아니라 ‘영당’ ‘활터’ ‘수루’ 등 여러 유적들이 한꺼번에 자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여수에 있던 전라좌수영을 이곳 한산도로 옮긴 것은 한산대첩의 승리로 남해안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1593년 7월의 일이었다. 당시 전라좌수영이 자리 잡은 여수는 남해안 전체를 보았을 때 호남 쪽에 많이 치우쳐 있어 이순신 함대는 전투가 있을 때 마다 먼 거리를 출정해 근거지 없이 장기간 바다 위에 머물러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수군기지를 물색하던 충무공은 한산도가 지닌 여러 가지 장점에 주목, 이곳으로 鎭을 옮길 것을 결심, 임금의 허락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아울러 그해 8월, 조정에서는 충무공이 거둔 그간의 혁혁한 전공을 치하하고 수군의 명령체계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충청·전라·경상 3도의 수군을 통괄하는 새로운 직책인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고 이순신을 전라좌수사겸 초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한다. 이렇게 해서 한산도의 수군기지는 명실상부한 조선수군 최고의 사령부라 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역할도 하게 된다.

당시 장군이 이끌던 수군 병력과 그를 따라나선 백성들의 숫자까지 합치면 한산도 진영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진영의 규모와 구조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게다가 정유재란으로 진영 전체가 불타버려 이순신 장군 당시의 유적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제승당을 비롯, 현재 남아있는 한산도유적지의 건물들은 거의가 최근에 새롭게 지어진 상징적인 유적들이다.

‘제승당’은 한산도 진영의 중심 건물로 통제사 이순신의 집무실이자 그가 참모들과 작전을 수립하던 곳으로 정유재란으로 한산진영이 불타 폐허가 된지 142년이 지난 1739년,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충무공의 뜻을 기려 처음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은 유적지 내의 다른 건물과 마찬가지로 박정희 정권 시절인 지난 1976년의 대대적인 ‘정화사업’ 당시 새롭게 중수된 것이다. 문자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집’이라는 뜻의 堂號가 막강 이순신 함대의 위용과 썩 어울린다.

제승당 왼편에는 ‘수루’가 복원돼 있다. 화려한 팔작지붕에 사방이 탁 트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장방형 누각건물이다. 물론 여기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던’ 그 자리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한산만의 바다풍경이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수루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보면 갖은 모함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싸워야 했던 고독한 영웅의 비애가 제법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한편 제승당 오른편으로는 충무공의 사당인 ‘영당’이 있고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당대의 名弓이기도 했던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활터가 있다. 물론 이곳 역시 옛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아, 정말 이곳이 그 활터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射臺와 과녁 사이에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풍경이 썩 아름답고 이채롭다.

보통은 이 제승당 일대의 유적만을 돌아보고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왕 한산도엘 왔으면 차를 타고 섬을 한바퀴 도는 것이 좋다. 섬 자체도 매우 아름답거니와 그래야 한산도를 새로운 수군진영 터로 주목한 충무공의 깊은 뜻을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승당을 나와 차를 몰아 섬을 한바퀴 돌다 보면 바다낚시꾼들이 제법 모여드는 ‘문어포’라는 조그만 마을에 다다른다. 그 마을의 산 정상에는 지난 1976년의 대대적인 성역화 작업 때 세워진 웅장한 규모의 ‘한산대첩비’가 자리잡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적적하기 이를 데 없는 산길을 따라 정상에 올라 대첩비 앞에 서면 한산대첩의 현장이었던 한산도 앞바다의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게 눈앞에 펼쳐진다. 앞서 보았던 견내량 해협의 자연조건과 비교해 보면 어째서 충무공이 왜군을 이 바다로 유인해냈는지를 금방 이해할 수 있다.

한산도는 충무공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화려한 시절을 보낸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옷깃을 흔드는 비릿한 바닷바람에서도 그 옛날 이곳에 서서 망망한 바다를 굽어보았을 영웅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다음호에는 ‘충무공이 싸운 바다’의 마지막 회인 ‘남해 관음포 바다의 장엄한 노을’편이 이어집니다)

글/서조(여행작가)< 저작권자 © 약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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